장량의 처세
유방이 팽성전투에서 항우에게 대패합니다. 도망치기 바쁜 중에도 유방은 장량에게 묻지요. 내가 천하를 차지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장량은 초나라 맹장 경포(주 : 원 이름은 영포, 죄를 지어 얼굴에 죄목을 문신하는 경형을 받은 후 경포로 불림)가 항우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 경포를 끌어들이고, 분봉시 대우를 못 받은 수적 출신의 팽월을 장군으로 삼으라고 하지요. 또한 한신을 중용하라고 조언을 하자 이를 충실히 따릅니다.
한신이 북벌을 나가있는 상황에서 유방은 항우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든 항우의 공격을 줄여보고자 마침 옆에 있던 참모 역이기에게 방책을 묻습니다.
역이기는 주 무왕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무왕이 은나라를 무찌르고 제후들에게 봉읍을 주어 국가가 안정이 되고 도덕이 바로 섰다며, 6국의 후예들을 다시 제후로 세우면 군신과 백성들이 대왕의 은덕에 감동하여 천하가 귀속될 터이니, 그 자리에서 천하의 패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초패왕 항우는 공손하게 대왕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라고 진언을 하지요.
유방은 크게 기뻐하며 당장 6국의 옥새를 파라고 명합니다. 외지에 나갔다가 들어온 장량과 식사를 하던 유방이 기분이 좋아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장량이 놀라서 ‘누가 그딴 소리를 하였느냐’고 대놓고 나무랍니다.
지금 항우를 제압할 수 있으면 제후를 봉해도 그들이 유방을 따르겠지만 현재 항우의 힘이 더 센데 가당치도 않다며, 7가지의 이유를 댑니다. 요약을 하자면 고향을 떠나 유방을 따르며 온갖 고생을 하는 무리들은 나중에 천하를 통일하면, 땅 한 뼘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데, 갑자기 제후를 봉해버리면 누가 남아서 고생을 하겠느냐고 했습니다. 뿔뿔이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는 이야기지요. 유방은 놀라 만들던 옥새를 당장 부수라고 말합니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고, 팽월은 장군으로 삼았습니다. 북쪽의 한신과 후방의 팽월이 수없이 도발을 하자 항우도 결국은 지쳐서 천하를 양분하자고 유방에게 제안을 하지요. 제안을 받아들여 합의를 한 유방은 돌아가는 항우를 뒤에서 쳤다가 오히려 크게 패합니다.
또다시 위기에 몰린 유방은 한신과 팽월에게 긴급히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참전을 안 합니다. 장량의 계책으로 한신의 봉토를 크게 늘려주고, 팽월도 왕으로 삼아 봉지를 하사한 후 즉시 참전을 하라고 합니다. 한신과 팽월을 포함한 모든 군사가 해하에 결집하여 치른 마지막 초한대전에서 유방은 항우를 죽이고 천하의 주인이 되지요.
전쟁이 끝난 후 유방은 장량에게 가장 큰 땅을 내립니다. 제나라에서 3만호를 선택해서 갖도록 하였지요. 그러자 장량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유방과 처음 만났던 인연이 있는 유현(留縣,약 3천호)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고 합니다. 나라를 하나 주겠다고 하는데 현이나 하나 달라고 한 셈이지요. 그래서 장량은 한나라 건국 후에 유현의 제후 즉 유후(留侯)가 됩니다.
또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신하들이 반란을 모의하자 장량은 유방이 가장 미워하는 옹치에게도 땅을 하사하게 하여 불만을 무마시킵니다.(대만이야기 35, 논공행상)
도읍지를 선택할 때도 대부분의 신하들은 자기 봉읍지나 고향으로 가기가 수월한 낙양을 선호하였지만 장량은 외부의 적을 막고 배후에서 물자 공급이 원활한 관중(함양, 현 서안)을 주장하여 수도로 정합니다.
유방은 천하를 얻자 대부분의 공신들을 의심합니다. 유씨를 제외하고 왕으로 삼았던 한신, 팽월, 경포 모두 제거됩니다. 동서간이면서 전쟁의 선봉에 섰던 장군 번쾌도 죽이려 했고, 승상 소하도 의심을 피할 수 없어 구속되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내면에는 엄청난 권력욕을 가진 유방의 부인 여후도 한 몫 합니다. 그 여후마저도 유일하게 장량만은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지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장량은 입신양명이 목적이 아니었고, 천하를 갖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넉넉한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상국(제상)으로 나라를 평화스럽게 다스렸는데 갑자기 진시황이 쳐들어와 나라와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지요.
장량은 복수만을 꿈꾸며 유방을 도와 진의 수도 함양을 함락시켰고, 어렵게 한(韓)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항우가 한나라 후예를 또 죽입니다. 그래서 유방에게 달려가 항우를 치는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유방의 신하라기보다는 친구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욕심도 안 부렸고요. 그게 고마워서 유방은 더 큰 땅을 주려고 하였지만 작은 유현으로도 만족하니 주변의 모든 신하들이나 일반 백성들까지도 최고의 현자로 생각하고, 모두가 신선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유방이 여후와의 소생인 태자 유영을 폐하고 후처인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고 하여 유방과 여후 사이에 갈등이 심했고, 여후는 크게 불안했지요. 대부분의 군신들이 말려도 첩에게 마음을 뺏긴 유방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장량은 몸도 쇠약하고, 도교에 심취하여 일선에서 물러나 양생법을 수련 중이었습니다. 여후는 유방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장량을 설득하여 유영이 태자 자리를 지키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유방 사후 여후의 섭정과 공포정치도 중국역사의 한 장을 차지합니다. 여후는 태자로 삼으려던 여의를 독살하였으며 유방의 사랑을 차지했던 척부인도 참혹하게 죽입니다. 차마 여기서 필설로 옮길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장량은 천수를 다 누렸으며 그의 후손들도 역사에 다수 등장을 합니다. 사후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을 하였다는 전설 말고 실제로 장량을 어디에 매장하였는지 아직도 일치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후의 농단이 극에 이르자 병을 핑계로 현재의 하남성 란고현 백운산에 은거한 후 그곳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지금도 그곳에는 장량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당나라 때 지은《괄지지(括地誌)》에 장량의 봉읍지였던 유현 가까이에 있는 서주 폐현에 장량의 사당이 있고 그곳에 묘가 있다고 기술합니다.
세 번째로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후 장량이 유방에게 속세를 떠나 적송자의 뒤를 따르겠다고 한 것으로 보아 도교에 심취하여 수행을 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장량이 선계를 찾아 나섰고, 선계와 가장 흡사한 장가계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면서 후손이 늘어나 장량의 후예인 장씨 가문의 마을이란 뜻으로 장가계(張家界)란 이름이 생겼지요. 《선석지(仙釋志)》와 《능묘지(陵墓誌)》에는 호남성 장가계의 청암산에 장량의 묘가 있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장가계에 살고 있는 장씨들은 장량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지요.
장량의 삶은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교훈으로 삼을만합니다. 장량의 책략을 보면 큰 어려움에 처하면 유연하게 물러나고 도망을 칩니다. 싸우기보다는 가능하면 주변 형세를 이용하고, 그 형세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변화를 시킵니다. 무엇보다 멀리 내다보고 그 상황이 변하게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결국 조급한 항우는 천하제일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장량의 상대는 아닙니다. 전쟁의 신 한신도 물욕이 없는 장량과 비교할 수 없지요.
어떤 이는 장량이 유방을 부렸다고도 합니다. 유방이 실은 장량의 손바닥위에서 놀았다는 이야기지요.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유방이 세운 제국은 400년으로 끝났지만 장량의 후손이 사는 장가계는 몇 천 년이 흐를지 모르겠습니다. 5000년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삶을 산 인물로 저는 주저 없이 장량을 꼽습니다.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로부터 자유로웠던 인물.
대만이야기 2화 제나라 환공을 최초의 패자로 만든 관중에 대한 이야기부터 사마천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였고 이번 장량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역사와 인물위주의 글을 썼다면 앞으로는 언어 위주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으려는 집의 형태를 역사 혹은 경험이 결정한다면 그 집을 짓는 하나하나의 벽돌은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 집의 크기와 견고함 혹은 아름다움은 벽돌에 달려있듯, 그 인간의 됨됨이는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구분되어집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은 ‘생각도 언어’라고 하였지요. 또한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도 하였습니다.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하고, 의미 있는 단어 하나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그런 의미 있는 언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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