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교총) 회장이 무자격교장공모제가 ‘나쁜 정책’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 ‘무자격교장공모 전면 확대폐지’를 청원했다. 교총이 청원한 것은 ‘무자격교장’이 아니라 ‘무자격증교장’이다. 교총이 얼마나 급했으면 전국 17개시도에 11,000여개의 분회까지 두고 회원 수가 무려 20여만명에 상근자만 4,500명을 둔 거대 교원단체가 ‘무자격증 교장’을 ‘무자격 교장’으로 거짓청원까지 했을까?

▲ 사진출처 : 한국교원단체총연합

사랑하는 자녀를 자격이 없는 교장에게 맡길 학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다. 교총의 논리대로라면 전체 중등의 34.5%가 사립인 학교에 70% 가까운 교장과 교감은 무자격자들이다. 자격증이 없으면 모두 나쁜 교장인가? 자격증이 있는 교장들 중에도 훌륭한 교장이 많지만 학부모의 66%는 자격증 없이 공모를 통해 교장직을 수행하는 내부형공모제 교장을 선호하고 있다.

학교는 참 이해 못할 일이 많다. 민주주의를 체화시켜야할 학교에는 학교자치가 없다. 학교에서 법적인 자치기구는 유일하게 학교운영위원회 하나다. 학생회도 교사회도 학부모회도 법적인 기구가 아닌 임의단체다. 유일한 법적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대표가 참여하지 않는다.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운영에 반영해야할 교사대표도 교사가 아닌 교감인 학교도 수두룩하다. 학교에 따라서는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하는 운영위원회도 많지만 형식만 갖춘 운영위원회가 더 많다.

어디 그뿐인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체화해야할 학생들은 교칙을 그들 스스로가 만들지 않는다.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칙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이 지켜야 할 학생생활규정은 민주주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엽기적인 교칙이 수두룩하다. 아직도 여학생의 머리카락은 ‘귀밑 5cm’를 고수하고 있는가 하면 추운 겨울날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외투는 절대 착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은 학생인권조례에 발목 잡혀 신체의 자유를 유보 당하고 있다.

교장자격증이 있어야 교장을 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독일은 '교장은 교사'라는 기조 아래 교사협의회가 교장 선출의 중심이 되고 학교자치위원회의 최종 승인 절차를 거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 역시 유능한 교장 유입을 위해 일정 수준의 교육경력을 가진 교사들에게 교장 지원 자격을 준다. 의사자격증만 있으면 병원장도 할 수 있고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검사도 판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교장은 자격증이 따로 있어야 하는가?

교장 자격증제는 폐지해야 한다. 전교조는 수십 년 전부터 학교경영을 하는 교장은 자격증이 아니라 선출보직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같은 직장에서 가장 신뢰받고 존경 받는 교사가 교장이 되어 학교를 경영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교장 자격증을 얻기 위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뒷전이 된다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승진점수를 모으기 위해 도서벽지를 찾아다니고 교장의 근무평가점수를 잘 받기 위해 학교장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 온 사람이 교장이 되면 소신을 가지고 학교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 이미지 출처 : 교육희망

전교조가 제안하는 교장선출보직제를 살펴보면 학교장이 가진 권한을 교직원회, 학생회,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자치 기구에 배분한 뒤 교장은 학교자치를 촉진하고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해 수업하는 교장의 위상과 보직을 갖게 된다. 교육경력 10년 이상의 교사라면 전체 교사와 직원회, 학생회 대표단으로 구성된 교무회의에서 선출하고 학교자치위원회가 이를 승인하는 절차를 밟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출된 학교장과 수십 년 동안 점수 모으기로 살아 온 사람 중 누가 더 자격이 있는 교장이겠는가?

교장공모제 논란은 이제 그쳐야 한다. 교총은 이제 ‘무자격증’이 아닌 ‘무자격 교장 반대’라는 꼼수를 중단하고 어떤 사람이 교장이 되면 더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격증 하나로 군림하는 독선적인 교장이 아니라 단위 학교 교사들과 학교 구성원이 교장을 선출한 뒤 교장 임기를 마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 교장선출보직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학교를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드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김용택 시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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