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에 마라톤 42.195km 도전기

길고 긴 한 생을 살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몇번이나 찾아올까?

 2018년 필자 나이 만오십세이니 공자가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지천명이다. 그러나 지천명은 언감생심! 짧지않은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내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놈이 무슨 하늘의 명을 알 수 있으랴...2500년전 공자가 깨우친 지천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우치기는 능력 밖의 문제 같아서 접어두고, 그래도 반백년을 살아온 동안 어떤 의지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 우연한 찾아온 마라톤 풀코스 도전기를 시간되는데로 소개하고자 하고 먼저 첫회로 전체적인 스케치를 적어본다.

이게 실화야!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4년 춘천시에서 개최된 조선일보반대마라톤대회-조반마-에 5km에 도전하면서 부터이니 구력으로는 15년째이다. 그러나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한번도 풀코스는 도전해보지 못한 필자가 갑자기 10여년전 10km 도전 후 마라톤은 기억 저편에 있었는데, 조중동과 같은 족벌언론사에서 주최하는 89회 동아마라톤 겸 서울국제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실화야! 자초지정은 이렇다. 문화공간 '온' 석락희 이사는 마라톤 메니아로서 온 카톡방에 자신의 마라톤 도전과 성공스토리를 올리는데, 98회째 완주 사진과 올해 안에 100회 도전을 하겠다는 계획를 올려서 우발적으로 100회 완주 축하와 페이스메이커를 위해서 필자도 도전하겠다고 신청한 것이 무모한 도전의 시작이 되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등 SNS에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서 사람과 소통하고 역사정의 실천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1,700만 촛불의 하나가 되어 거리에서 광장에서 땀흘리고 눈물을 흘렸는데, 지난해 5.9일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치인과 정당 지지자들. 오피니언 리더들. 파워 뉴스메이커들 사이에 '진영'과 '이념'과 '지역'에 따라 분열되어 가는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그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던 얼굴책(페이스북)에 "너는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고 중단한지도 2달이 넘어가고 있다. 한달전 2월 18일 첫연습을 시작해서 D-1일까지 하프 1회. 10km 1회. 5Km 5회 달리기와 걷기. 라이딩. 산행 등 다양한 연습에 대한 소회와 기록은 틈나는데로 연재를 해볼 계획이다.

3월 18일 D-day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양주 집을 나서 전철에서 인증샷을 찍고 광화문광장에 6시 50분에 도착하니 아직은 차가운 날씨의 이른 아침에 경향 각지에서 출전하는 선수들이 집결하고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먼저 광화문 상징 '리본공작소'와 '기억의 문' 사이 '세월호참사 1432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이 있습니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세월호의 진상규명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2기 특별조사위원회는 진상규명 의지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적폐세력은 물러나야 합니다-4월 16일의 약속국민연대' 피켓을 사진에 담고 석락희 이사를 만나기 위해서 교보문고 지하주차장 가는 길을 찾았다. 하지만 찾지 못해서 교보문고 지하 1층 5호선 3번 출구앞 대합실에서 체온을 보온하기 위한 간단한 스트레칭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물품보관 차량에 물품을 보관하러 광장으로 나오니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마라톤 클럽별 기념사진과 삼삼오오 기념사진 찍는 선수들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마라톤 메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아움과 서울국제마라톤대회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론 조중동 족벌언론이 주최하는 메이져대회를 대처할 수 있는 공정언론를 표방하는 한겨레 등 신문사들이 주최하는 메이져대회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첫 출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 개인물품을 보관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배동성 사회자의 진행으로 주최측에서 준비한 스트레칭과 관계자 소개와 인사말을 끝으로 정각 8시에 세계적인 기록보유자 초청선수가 속한 엘리트 그룹이 출발하고 이어서 마스터스 선수들은 풀코스 기록에 따라서 구분된 A와 B그룹이 출발하고 마지막으로 C에서 E그룹 선수들이 출발하면서 대단원의 첫 도전이 시작되었다.

▲ [사진1] 출발전 풍경

길 위에서 만난 동행!

 신청 후 첫 훈련을 시작한 2월 18일부터 일터로 가는 길과 쉬는 날에 틈틈히 연습을 했는데 한달 동안에 과도하게 연습을 했는지 D-2일(16일) 발바닥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니 '족저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첫 도전을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하는 것은 내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km만 뛰고 상태가 안좋으면 포기하기로 약속을 하고 출전을 했는데, 우연한 만남과 동행이 끝까지 도전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길 위에서 만난 동갑내기 마라톤 메니아와 25살 학군장교로 소위 임관을 한 청년 장교와 함께 동행하게 되어서 5km을 넘어 15km까지 올 수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15km 지점에서 본인의 판단 미스로 달리던 페이스에서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이탈한 것이 동행에서 떨어지게 되었는데, 마지막 골인지점까지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같이 달리던 페이스를 혼자 달리니 힘이 배로 드는 것 같았고 이때가 1차 위기였다. 그 때 앞을 스쳐가는 '4 : 50' 숫자가 적힌 노란풍선을 모자에 달고 달리는 칠십세는 넘어 보이는 광화문마라톤팀 이상규 선수와 함께 동행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나를 반기는 노란손수건을 발견한 기분이 들어 옆 선수에게 물어보니 골인지점까지 4시간 50분 안에 완주하는 페이스메이커라고 알려주었다. 이것은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판단이 서서 이상규 선수와 동행하는 일행 속으로 들어가서 35km까지 중반 레이스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20km 종로를 지나면서 부터는 지금부터 한걸음 한걸음은 필자의 신기록이 작성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도 업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이래서 마라톤에 도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페이스메이커에 따라서 달리던 중 2차 위기가 35km지점에서 찾아왔다. 30km를 지나면서 다리도 무겁고 호흡도 불규칙하더니 두세군데의 오르막을 오르면서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35km지점부터 페이스팀과 조금씩 멀리지더니, 38km 잠실대교를 넘을 때는 노란리본 페이스팀이 보이지 않고 여저저기 다리 경련과 고통을 호소하며 포기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2차 위기가 닥친것 같았다. 그 동안 참고 있던 오른발 통증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한발 한발이 정말 힘든 순간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기는 싫어서 40km까지는 가보자는 무모함으로 다시 용기를 내어서 달려보았지만 발등과 허벅지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구급차에 의해서 실려가는 선수들을 보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다. 그런데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또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속된 말로 이를 악물고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니 눈앞에 잠실주경기장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다. 그 때의 기쁜 마음을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먼저 도착한 선수와 마라톤클럽 동호인들이 도로 양면에 서서 선수들을 위해서 보내주는 화이팅과 손뼉에 힘을 받아서 주경기장 트렉에 들어서서 한바퀴를 도는데도 정말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마지막 정신력으로 골인지점을 절뚝거리면서 통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첫번째 무모한 도전은 성공할 수 있었다.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는 보조경기장을 지나서 물품 찾는 장소로 가는 길에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니 울컥하고 감동이 밀려왔다. 오늘만은 아내와 애들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된 것 같아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통증으로 힘들었지만 이 기쁜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하라. 아내의 말에 따르면 전화 연락도 않되고, 포기하고 먼저 와서 기다리겠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아내와 애들보다 민주주의 수호와 역사정의 실천을 위해서 촛불과 함께 한 시간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나의 존재가 쓸모없는 존재는 아닌 것 같아서 위안이 되었다. 또한 힘든 역경을 지나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만오십에 도전한 마라톤을 계기로 주어진 삶을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 [사진2] 첫풀코스 완주 기념사진과 영광의 흔적

인생은 마라톤이다.

 혼자 긴 레이스를 달렸으면 불가능했을 완주를 길 위에서 만난 동갑내기 메니아와 25세 청년장교와 페이스메이커 이상규 선수와 동행한 이름모를 선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 동기부여와 30일 훈련법과 체력증강법 코칭을 해준 문화공간 온 협동조합 이사 석락희 선수께 감사드린다. 또한 그 분의 100회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무모했지만 아름다웠던 첫도전의 소회를 마친다.

끝으로 필자의 무모한 도전이 2~30대 청년에게 용기를 주고, 4~50대 중년에게는 또 다른 삶에 도전하는 용기와 60대 이상 제2의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는 선배님들에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사진3]석락희 선수 100회 풀코스 완주 축하사진(하단 우측 김태동 문화공간 온 명예이사장)

-대한민국100년 3월 19일-

-경기북부 본향 양주시 서재에서 김재광-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김재광 주주통신원  gamkooda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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