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으로 한 해의 꽃산행을 시작하며

이호균 주주통신원l승인2018.03.22l수정2018.03.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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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으로 한 해의 꽃산행을 시작하며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서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 꽃,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1993년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우리에게로 와 '변산바람꽃'이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Eranthis byunsanensis B.Y.Sun라고 하는 학명으로 출생신고를 하였습니다. 미나리아재비과 ‘Eranthis’ 속에 해당하며 한국의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뜻입니다.

▲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 변산바람꽃이 되었다.

내가 변산바람꽃을 처음 만난 것은 야생화 사이트에서였습니다. 내 고향이 변산반도 부안이라서 그랬을까요, 자생지에서 직접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나의 야생화 사부(師父)이신 “들꽃누리집” 주준호 선생님을 모시고 안양에 갔습니다. 2005년 3월 25일, 변산바람꽃을 그곳 자생지에서 처음 대면한 그 날,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 처음 대면한 변산바람꽃, 그 때 그 감격을 잊지 못한다.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은 지루한 적막강산입니다. 그래서 3월 초순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꽃, 변산바람꽃이 피길 애타게 기다립니다. 냉이, 꽃따지, 큰개불알풀과 같은 풀꽃쯤이야 들녘 양지바른 길가 어디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지요. 그러나 변산바람꽃은 깊은 산에 가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해마다 변산바람꽃을 보러 그곳에 가는 일로 한해의 꽃산행을 시작합니다. 올해로 13년째 그곳에 가서 변산바람꽃으로 한해를 맞이합니다.

▲ 변산바람꽃은 3월 초순 주로 햇볕이 드는 전석지에 자생한다.

변산바람꽃을 보러 그곳에 가려고 꽃동무들과 약속한 날,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흩뿌려 대지를 촉촉이 적십니다. 이튿날 조금은 싸늘하지만 쾌청한 봄날, 꽃산행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우리 꽃동무 일행은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안양 병목안 입구에서 만나 수암천변 따라 봄이 오는 산천경개 구경하며 느릿느릿 걸어갑니다. 제법 수량이 많아 보이는 수암천, 맑은 시냇물이 굽이쳐 흘러갑니다. 안양천과 합류하여 한강에 이르러 서해로 가겠지요. 시냇가 군데군데 만개한 갯버들은 봄이 왔음을 실감나게 합니다.

▲ 만개한 갯버들, 붉은 꽃밥으로 보아 수그루로 보인다.

조선조 선조 때 함경도 봉원 관기 홍랑(洪娘)이 읊은 시조가 생각납니다. 북평사 최경창을 사모하는 애틋한 정을 ‘묏버들’에 의탁하여 노래한 기법이 예사롭지 않아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요. 시조에 나오는 ‘묏버들’이 이른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갯버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묏버들 갈ᄒᆡ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ᄃᆡ

      자시ᄂᆞᆫ 창밧긔 심거 두고 보쇼서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갯버들은 이른 봄 암수딴그루로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보송보송한 하얀 털 속에 빨간 꽃밥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그루가 틀림없어 보입니다.

수암천변에 갯버들이 만개하여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얼마쯤 가다보면 작은 성당 앞에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님 상이 나옵니다. 이곳이 바로 천주교 수리산 성지 담배촌입니다. 19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교우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담배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교우촌입니다. 그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 사제 피에르 모방 신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들 최양업 토마스를 마카오에 보내 천주교 신부 수업을 받고 김대건 신부와 함께 부제서품을 받게 합니다. 이러한 공적이 인정되어 최경환은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의도광장에서 집전한 미사 중에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 박해시대 최양업 신부 아버지 최경환 등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담배 농사를 지으며 신앙공동체 생활을 한 교우촌 성지가 있다.

병목안 천주교 성지를 지나 13년 전 이맘때 변산바람꽃을 처음으로 대면했던 그곳을 먼저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땐 이곳 초입에서도 변산바람꽃을 만나볼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는데 지금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중간에는 잣나무숲에 휴식처를 만들어 놓아 등산객들이 많이 오르내립니다. 꽃을 만날 기대에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올랐더니 숨이 찹니다. 개암나무도 꽃을 만나 잠시 숨을 돌립니다. 자작나무과 나무들은 이른 봄에 암수한그루로 꽃이 핍니다. 아주 작고 빨간 암꽃은 가지 위쪽에 달리는데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수꽃은 가지 아래쪽에 달려 꼬리처럼 길게 늘어집니다. 이렇게 늘어지는 꽃차례를 꼬리모양꽃차례라고 하지요. 우리나라 초기 학자들은 식물분류학에 관한 지식을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상화서(尾狀花序), 유이화서(葇荑花序)와 같은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쓰기도 하지요. 어릴 때 우리는 깨금나무라고 하고 그 딱딱한 열매를 깨금이라 불렀습니다. 동네 나무꾼들이 땔감으로 베어다가 지게에 짊어지고 와서 동산에 펼쳐 말릴 때 우리는 거기서 깨금을 찾아내 깨 먹곤 하였습니다. 호두보다는 작지만 개암 알맹이 맛이 제법 달짝지근하여 먹을 만합니다.

▲ 개암나무 수꽃은 가지 위쪽에 빨갛게 피고 수꽃은 꼬리모양꽃차례를 이루어 아래쪽에 길게 늘어져 핀다.

변산바람꽃은 햇볕이 어느 정도 드는 전석지(轉石地)에 주로 자생합니다. 드디어 산중턱 그곳까지 다 올라왔는데 눈여겨 찾아봐도 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마치 팝콘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이 피어 있어서 발길 옮길 때마다 조심스러울 정도였는데요, 지난겨울 유난히 추워서일까요, 아니면 그간 너무 많은 꽃쟁이들의 발길에 훼손되어서일까요. 가까스로 몇 개체 발견하여 조심스럽게 사진에 담았습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나마 명맥을 이어 주니 고맙기까지 합니다.

▲ 변산바람꽃 개체가 예전엔 팝콘을 뿌려 놓은 듯 많았는데 이젠 겨우 명맥을 이어간다.

변산바람꽃 주 자생지로 올라가는 입구엔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차해 있습니다. 오늘도 수십 명의 꽃쟁이들이 꽃을 보고 싶어서 찾아온 모양입니다. 물론 우리 일행도 그 대열에 끼어 있는 일원이니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만, 참 잘 된 일입니다. “변산바람꽃 서식지를 보호해 주십시오.” 소문대로 출입금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비록 변산바람꽃을 맘껏 볼 수 없게 되어 조금은 아쉽지만. 환경부 국립생태원이나 한국식물분류학회 등 관계기관에서 지자체 당국에 보호조치를 요청했을까요? 작년까지만 해도 맘대로 들어가 근사한 모델을 골라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변산바람꽃은 국가적색목록 평가결과 관심대상(Least Concern; LC)종으로 멸종 우려종은 아닙니다만 수도권에서는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는 자생지가 손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게다가 개화기간이 3월 초순 고작 2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주말이면 야생화 사진 마니아들이 떼로 패로 몰려옵니다. 플래시로 조명을 하고 돗자리까지 깔고 엎드려서 찍어 대니 꽃은 밟히고 꺾이고 몸살을 할 지경이지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자생지 보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처입니다.

▲ 변산바람꽃 자생지 보전을 위해 출입을 금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먼저 온 사람들에게 여기 말고 꽃을 볼 수 있는 다른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저 아래쪽 계곡으로 가 보랍니다. 여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꽤 가파른 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다른 사람들이 다 찍길 한참 동안 기다려 겨우 한 컷 찍었습니다. 마침 한 곳에 두 개체가 다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키는 겨우 5cm 정도밖에 안 되니 자세를 낮추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낙엽이 두껍게 싸여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아 그냥 찾으려면 참 어렵겠다 싶습니다.

▲ 자생지 근처 계곡에서 먼저 온 사람 덕에 변산바람꽃 두 개체를 겨우 만나다.

조금 떨어진 옆에서 다른 꽃동무가 엎드려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현호색을 용케 찾아낸 모양입니다. 겨우내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개화해서일까 애잔해 보입니다. 각시현호색, 왜현호색, 점현호색, 들현호색, 갈퀴현호색, 조선현호색 등 현호색 종류도 다양합니만 현호색이 좀 더 일찍 피는 편이지요. 한자로 ‘玄胡索’이라고 쓰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명을 그대로 씁니다. ‘玄’은 한약재로 쓰는 알뿌리가 검은색인 데서, ‘胡’는 주된 분포지가 중국의 하북성 및 흑룡강성 북쪽 오랑캐 지역인 데서, ‘索’은 새싹이 돋아날 때 매듭 모양으로 꼬인다고 해서 유래했다 합니다. 현호색의 라틴어 속명 'Corydalis'는 종달새를 뜻하는 그리스어 ‘Korydalis’에서 유래한 말인데 꿀샘이 들어 있는 ‘꽃뿔’의 모양이 마치 종달새의 머리꼭지에 달린 깃털 모양과 흡사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 꽃 모양이 종달새 머리꼭지 깃털 모양과 흡사한 현호색도 피기 시작한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노루귀도 피기 시작합니다. 이른 봄 양지녘에서 유심히 찾아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꽃만 보고서는 왜 노루귀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궁금하지요? 잎을 보면 ‘아, 이래서 노루귀로구나!’ 금방 수긍이 갈 것입니다. 새로 돋아나는 어린잎은 마치 깔때기 모양으로 말려서 나오는데 잎 뒷면에는 보송보송한 하얀 털이 빽빽하게 덮여 있어 영락없는 노루귀입니다. 꽃 색깔도 흰색, 분홍색, 보라색이 기본입니다만 연분홍에서 진분홍, 연보라에서 자주색에 가까운 진보라, 남색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 하얀 솜털 보송보송한 미나리아재비과 노루귀도 피기 시작한다.

예전엔 박해를 피해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든 수리산 병목안, 지금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되고, 꽃쟁이들이 줄을 잇는 봄꽃답사 1번지가 되었습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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