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루는 풀뿌리 민주주의

미투 촛불 광장을 마치고, 다시 광장으로 가기 전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톡방의 정경을 살피며 드는 생각은, 20대들에게 참으로 많은 정치 의제가 당사자 문제로서 걸려 있다는 것이다. 3월 8일 광장에서는 결출남 묻지말고, 성차별을 해소하라는 구호가 선창됐다. 결혼과 출산, 양육을 묻는 면접관들의 퇴보적 질문에 20대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82년생 김지영 소설과 30대 여성의 독박이슈가 맞물리면서 노동과 돌봄의 독박구조가 수면위로 올라왔으나 변하지 않는 성별분업의 M자형 구조는 우리에게 과연 노동과 돌봄이 평등하기 위해서 유리천장이 아닌 유리바닥부터 조명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물음하게 된다. 

▲ 2018년 3월22일-23일 미투 촛불 live 중계현장

 

계속 언제까지 이토록 불평등 할 것인가? 최근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친구 다섯명의 결혼생활을 나와 비교해 봤다. 그들은 각각 선생님이였고, 간호사였고, 학원강사였다. 이제는 모두 아기 엄마가 되었고, 이렇게 뜨겁게 우리들의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가 연일 사회 일면을 달구고 있어도 가정밖으로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 충분히 벌 수 있는 직장과 무럭무럭 크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까? 좀처럼 우리는 만나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서른이 되고, 이렇게 마흔이 다 되어가면서, 나는 최근 <서른, 잔치는 끝났다>100권의 책을 무료 나눔 했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지금도 적기에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나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82년생 친구들과 시를 읽고, 우리들의 갇힌 구조를 깨부술 무언가를 이야기해 보겠다는 것은 너무도 두렵게 정치적 이였나보다.

▲ 풀무질 서점- 현영애 감독의 독립영화보기

생각보다, 일상에서 당사자의 문제를 공동체 안에서 풀어 내기가 어렵다. 구성되어지고, 작동하는 동일한 사회의 법과 제도 안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과 선택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사는 동네에서 사회적 문제를 나누기가 어려운 것이다.

최근 나는 녹색당과 녹색당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직 몇 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소수자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달아주고, 변화의 방향에 바람을 일으켜 줄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은 녹색당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풀무질 동네 책방에서 3일 노동·3일 돌봄 성평등 운동 서명을 받던 나는, 함학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퇴직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녹색당 가입이라고 하셨을 만큼, 최근 녹색당은 젊은 정치와 소수자 인권, 환경, 생태, 먹거리 문제로 보다 더 진보적이고 보다 더 소수적인 목소리들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이스럽게 굳어지는 생각대로 나는 내심 정의당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10년 단위로 우리는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10년후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서른, 마흔, 중년과 노후를 상상해 본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어느 정도 합치된 답안지를 찾아낸 사람들은 지금의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복지 정책에 자신의 삶을 끼어 맞춘다. 하지만 "구조가 잘못되었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구조속에 자신을 끼어 맞출 수가 없다. 이제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거주지를 넘어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주제와 모임이 있는 공간으로, 지역으로 찾아가 소중한 소통과 만남의 장을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간다.

▲ 2017년 여름, 3일노동 3일돌봄 중 풀무질 서점에서 놀이중인 율리

가정폭력의 회오리 속에서 나름대로 발견한 공간이 성대 옆 풀무질 서점이였기에, 서점에서 만나게 된 풀벌레와 수리부엉이, 구름, 팽이, 맹경숙 선생님 모두 참 고맙다.  2017년 맑스 포럼 포스터가 붙어 있는 그곳으로 빨려들어가 듯 걸음을 옮긴지 이제 두해가 넘어간다. 고전과 시, 소설 인문학 모임이 날짜별로 표기되어 있는 폭이 작은 안내 현수막을 보니, 이 곳이 활성화 되어있는 말로만 듣던 지역 풀뿌리 인가 싶어 심장이 쿵쾅 거렸다.

얼마 만큼의 많은 알을 깨고 나와야 날개짓을 하는새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을까? 광화문 청계 소라탑옆에서 날아오르는 한 쌍의 새를 보던 새벽 광장은 유토피아적이였고, 동시에 디스토피아적인 현상계로 저장되었다. 온 통 보라색 파장으로 뒤덮인 브레인의 뇌파탐지기 결과에 씨익 섬짓하게 웃음을 짓던 날이 떠오른다. 너 같은 년은 나가서 일하면 성폭력 당할 것이라는 말을 딸 아이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가정폭력가해자에게 딸아이가 스무살 성년이 되도록 판결하는 대한민국 가정법원과 싸워야 하는 항소심 판결이 3월30일이다. 누구는 나한테 아픈 소리를 한다. 엄마가 왜 이 싸움에서 질 수 있냐며? 한동안 그 말이 너무 아퍼서, 말의 주인공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썩은 구조와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의 문제이다.

▲ 한국 여성의 전화를 만드시 손이덕수 선생님과 여성주의 전문까페 두잉에서

가정과 사회내 억압의 장치는 이제 균열이 가고 있다. 가정폭력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가정폭력 생존자가 모두 살아 미투 운동의 역사적 증인으로 나라를 바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폭력을 처벌하고, 성평등을 이루는 성평등한 돌봄 민주주의를 향해 페미니즘 교육은 계속 될 것이고, 성평등 개헌은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많은 여성이 정치 연단에 오를 것이고,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달라질 것이다. 2018년 새해를 맞이하기 전, 정성표가 만들어준 치옥의 감옥 체험은 일제 잔재물로 거듭되는 남성 경찰 조직의 해체를 꿈꾸게 한다.

▲ 풀무질에서 노는 율리

남성의 부정의한 권력 조직에 여성이 직업적 계보를 이어 나갈 필요는 없다. 여성을 위한 법과 조직의 신설이 필요하다. 여성은 시작이다. 여성은 창조다. 여성은 신으로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여성 가족부에게 주어진 예산은 0.18%, 여성가족부가 왜 있냐고 비난하지 말고, 여성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여성가족부에게 예산과 권력집행을 위한 힘을 주어라. 율리는 이제 다섯살, 지금부터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을 차별하고, 여성을 구매하는 잘못된 성권력을 걷어치워라. 여성을 혐오하는 모든 비윤리는 철폐 되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모먼트를 이루게 하는 오래된 풀무질 서점에서 성평등 세글자를 품고, 이제 광장을 누비며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옥연 시민통신원  vvvv77vvv@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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