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빛과 그늘 김태평 객원편집위원l승인2018.03.27l수정2018.03.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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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격언이 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이다. 요즘은 ‘재산을 남긴다.’로 희화화되었다. 세태를 꼬집고 조롱하는 느낌이다. 재산은 실용가치이므로 물질성격이 짙다. 그래서 최고위직 자들도 막무가내로 끌어 모았을까? 치사함도 마다하지 않다니 애처롭다. 하는 꼬락서니가 더러워 입에 담기도 싫다.

▲ 흔적 없는 새벽 눈길, 조금 후엔 이 길도.

지도자가 어찌 저렇게 부끄럽고 한심한가. 세상 조롱거리가 되다니. 저런 사기꾼들을 지도자 반열에 올렸다니. 주어진 힘으로 국고를 털고 곡간을 채웠다. 파렴치한 괴한, 조폭보다 막가파였다. 저자거리 노점상도 못할 자들이 국가지도자가 되었으니. 허탈하고 참담함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우리가 택했으니 무슨 말을 할쏜가. 돈과 권력과 명예는 함께 하지마라 했다. 할 수 없다고 했다. 둘 이상이 합치면 영혼을 파괴하고 세상을 망친다고 했다. 결국 자신도 망한다고 했다. 지도자의 으뜸은 바로 이를 지킴이다.

대다수는 남기기를 원한다. 삶의 목적과 희망이기도 한다. 가시적이면 더 좋다. 그렇지 못하면 ‘말로만?’ 힐난을 듣고 ‘헛짓 했군!’ 핀잔 받는다. 남기려하면 경외하고 각박해진다. 남김은 잃음이다. 어찌 남길 수만 있겠는가? 손해 볼 수도 있다.

흔적은 남는다. 일을 마치면 일한 흔적이, 헤어지면 아픈 흔적이 남는다. 돌멩이도 흔적을 남김이 세상이치다. 흔적은 남겨지기도 하고, 남기기기도 한다. 삶의 이력은 어쩔 수 없지만, 남기려는 것은 과욕이다. 흔적은 일종의 상처다. 상처는 아프다. 아픔은 치유하고 없애야 한다. 고로 흔적은 약해야 한다. 약해야 치유와 지움이 가능하다. 상처를 원치 않듯이 흔적도 원치 않는다. 흔적을 남김은 타인에게 상처를 줌이다. 좋은 상처와 바람직한 흔적은 없다. 안 좋은 면이 더 많다. 타인흔적 위에 서고 싶은 자 누구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라도 그렇다. 흔적은 다툼이고 아픔이다.

▲ 사진출처 : FreeQration, 지워지기 어려운 흔적. 언젠가는 지워지리.

인간으로 살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만족하라. 충분하다. 영향을 미치거나 역할을 기대말자. 영향은 타자를 수하에 두는 것이다. 수하에 들고 싶은 자 없다. 이는 다툼의 근원이다. 화가 된다. 자기 그릇 용량이나 채우라. 그 외는 주변을 더럽힌다.

천지간에 우뚝한데 뭘 더 바라는가? 뭘 남기려는가? 흔적 없이 살다 흔적 없이 감이 좋다. 사후대비를 하고 싶은가? 평생 살고도 모르는가? 안타깝도다. 사후대비는 부질없고 가당치도 않다. 그대의 몫도 아니다. 깨끗이 가라. 산자도 많다. 머리 아프다. 죽은 자까지 나서 간섭하면 어찌 살란 말인가? 산자간섭도 신물 난다. 가면서까지 추하게 꼴값 떨지 말자. 조용히 가는 게 최상이다. 후손과  만물을 돕는 것이다.

흔적 없이 가야 다음 사람이 새롭게 시작한다. 흔적은 적을수록 좋고 없으면 더 좋다. 이승에 흔적을 남기면 저승으로 못 간다. 이승의 끈을 끊어라. 그래야 잘 간다.

필자의 지난날을 뒤돌아본다. 크고 작은 흔적투성이다. 상처와 오점들이다. 나열키도 겁난다. 부끄럽고 아픈 것이 많다. 남을 지적하며 질책했고 비판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에겐 관대했고 숨기기까지 했다. 실수실책을 인정보다 변명하고 무시했다.

▲ 사진출처 : FreeQration, 천지간에 흔적. 구름과 바람.

별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했고 점잔 떨며 남을 얕봤다. 생각할수록 가소롭고 실소가 나온다. 타에겐 현미경을 자신에겐 고래그물을. 관용과 용서도 없었다. 자신만 옳고 세상이 온통 틀렸다. 상대를 위하는 척하면서 자익만 챙겼다. 그 내막은 치사하고 더러웠다. 자기애에 도취되었고 언행은 불일치. 한심하고 부끄러운 삶이었다.

살인과 도박, 사기꾼은 아니었지만 톨스토이의 고백론과 유사했다. 비열하고 옹졸함을 어찌 다~~ 한탄이 절로 나왔고 억장이 무너졌다. 하지만 지울 수도 없고 지워지지도 않았다. 남은 생이라도 연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흔적 없이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가볍게 살아야 가볍게 갈 수 있음을 알았다. 흔적은 진한 그늘이었다.

▲ 누군가 남긴 흔적, 곧 지워지리.

<흔적>

나에겐 빛이었지만
상대에겐 그늘이었다
그늘에선 그 어떤 것도
튼튼하지 못함을 알면서도
큰 빛을 내려고 힘썼다
빛이 밝을수록 그늘도 짙었다
그늘은 또 다른 그늘을 불러왔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아서라 말아라 그 말밖에
잘 살았으면 되지 않았는가
뭘 더 바라기에
흔적을 남기려는가

흔적 없는데서 왔으면
흔적 없이 살다가
흔적 없이 가는 것이 최상이고
천지에 보답하는 것이다

흔적은 상처일 뿐
이로울 게 없더라
흔적이 없이, 지우고 떠남이
남은 자와 후손들을 돕더라
흔적은 구속을 낳고
구속은 억매이게 하니
후손들을 방해하더라

새벽 눈길에서
흔적 없는 길, 있은 길
어느 길을 가고 싶던가
누구의 흔적이
빛나는 업적일 수 있지만
누구에겐 오욕의 상처일 수 있다

▲ 사진출처 : FreeQration, 명성.

이름 또한 그에겐 자랑스럽지만
누구에겐 혐오스러울 수 있다
업적과 이름에 목매지 말자
만인에게 유익함이 있겠는가
세종의 위대한 한글창제도
이순신의 살신성인 구국조차도
어떤 자들에겐 탐탁지 않을 수 있다

글을 몰라서
세태를 읽지 못해도
민주와 자유가 무엇인지
나라와 애국이 무엇인지
잘 몰라도 잘 살다 가더라

지도자가 누구인지
정책이 무엇인지
첨단과학기술과 선진문화를
잘 알지 못해도
행복하게 잘 살더라

그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니
지배자와 지도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호도하지 말고
세인들을 구속하지 말자
끝내는 스스로도 구속되더라

칠흑 속에 길을 잃어도 헤매지 않는 자가 있고
대명천지 대도를 가도 방황하는 자가 있다
세상을 다 가졌지만 가진 게 없다는 소유병자가 있고
가진 게 없지만 많은 것을 가졌다는 만족병자가 있다
어떤 자가 되고 싶은가

높고 큰 직위에 올랐지만 더 높은 직위를 갈망하고
낮고 작은 직위지만 감사하며 충직하게 일하더라
몰라서 못하는 자는 거의 없고
알면서도 안 하는 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더라

물질과 껍질에 억매이면
가는 날까지 물질과 껍질처럼 살고
자신이 누구인지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지 모른 체 살다 허망하게 가더라

결국 나쁜 흔적만 남기고
끈적하고 질척하게 가더라
맑은 물은 여과기가 필요 없고
참 진리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진실한 삶은 흔적이 없더라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tpk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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