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유경이 만난 사람들 2

안경쟁이로 40년을 살았다. 다양한 안경을 거쳐 지금은 다초점변색렌즈로 세상을 본다. 노안이지만 문자나 카톡을 예사로이 볼 수 있다. 여행할 때 선글라스를 챙길 필요도 없다. 안경 하나로 원하는 모든 활동을 거침없이 하도록 도와준 이가 안경사 김기봉 씨다.

그도 안경쟁이다. 경력 25년차로 48세인 그는 안양 토박이다. 평촌 집성촌의 종가집 장손인데 심한 ‘딸바보’다. 결혼하면 딸 하나만 낳겠다고 작심한 바를 이룬 행운아여서일까. 중2 때부터 오전에는 밥을 안 먹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는 그는 분명 고집쟁이다.

동명의 <맨발의 기봉이>(2006년 개봉작)처럼 힘들어도 인생을 완주하려고 호흡을 자주 가다듬는다는 그와 두 차례(2014년 8월 25일과 9월 29일) 마주 앉았다. 미리 질문지를 주지도 않았는데, 해박한 지식과 솔직함으로 인터뷰 내내 풍성한 대답을 쏟아냈다.

- 여름에 백내장 수술을 했다.
백내장 증세가 중심부에 오면 안개 낀 것처럼 사물이 뿌옇게 보여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 후에 비문증이 왔다. 손실이 크다. 난시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빠지기도 하고 해서 안 좋다. 시력에 영향은 없어도 신경이 쓰인다. 백내장 수술한 고객들이 매장에 와서 수술 부작용이라며 걱정하는데 부작용은 아니다. 수술은 잘 되어도 그럴 수 있다. 불편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견디는 중이다.

- 안경사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15살 때부터 안경을 꼈다.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안경 관련 직종을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안경을 끼니까 궁금증으로 시작했다고 할까. 당시는 희소성도 있고. 체력적으로는 맞는데, 1대1로 맞추어 해 주다보니까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한다.

예전에는 안경이 단순해서 스트레스가 적었는데, 이제는 종류가 세분화 돼서 신경 쓸 일이 많다. 좋은 렌즈(다초점, 기능성 등)지만 손님마다(전자파, 청색광 고통 호소 등등) 편하고 불편한 정도가 다르다. 때로는 조언이 도박일 수도 있어 렌즈 권유를 망설이기도 한다.

특히 백화점처럼 고급매장이나 대형매장은 사람 사이에 부딪치는 문제가 정말 많다. 별 것 아닌데도 난동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백화점은 갑중의 갑이라 고객이 무리를 부려도 들어줘야 한다(1개월 전 발생해 지금까지 미해결된 사건을 들려주는 그의 억양이 점차 높아졌다). 강하게 어필을 못한다. 고객이 컴플레인을 걸면, 잘못이 없어도, 네가 잘못한 거야, 라는 식이다. 백화점만의 애환이다. 가진 자의 특권이긴 하다.

지난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 의사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고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전날 부인에게(몇 차례 했지만 당사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약속날짜가 하루 연기됨을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전화로 당장 와서 처리하라, 아니면 위약금을 배상하라며 큰소리쳤다. 고객은 2시에 약속하고 4시 반에 왔고, 6시쯤에 어머니에게 다시 가 보고. 그날 첫 끼를 저녁 8시에 먹었다. 심정적 공감이라도 기대했는데... 성질이 많이 났다. 해결이 안 되면, 임대매장 1년 단위 계약 시 문제가 된다.

백화점 입점은 아주 어렵다. 로비가 굉장하다. 인맥을 통해 입점하거나, 들어온 사람이 재임대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고객과의 대화를 일적인 것으로만 제한하게 된다. 또 문화센터 근처여서 애들이 들어와 만져도 뭐라 얘기할 수도 없다. 백화점이 아니라 아울렛처럼 시끄러워서 상담을 하기 어려워도 매장자리 이동 요구를 못한다.

피팅(착용감이 좋도록 얼굴 조건에 맞게끔 안경테를 조절) 시, 사람 얼굴은 조각이 아니므로 테 변형을 해야 한다. 몇 번 하면 테가 피팅이 된다. 처음에는 몇 번 해야 맞는다. 설명을 미리 해주면,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편하게 대하는 사람만 설명을 해준다.

대형 매장은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힘들다. 사람이 많으면 부딪치는 것이 많다. 나도 관리자로서 두 번 그래서 그만 두었다. 계층이 나눠지다 보니까(사장단, 관리자, 중간층, 아래층으로 구성) 계층 간 조정이 어렵다. 사장단과 관리자는 협의 관계로 교류를 자주 하는데, 알력이 생기기 쉽다.

- 안경사 제도화는 80년대 중후반에 시작되었다.
나는 안경사 제도 격동기인 국가고시 2회 출신이다. 보건전문대를 졸업하고 면허증을 취득해서 올해 25년차다. 오래만 했지 재미는 없다. 우리나라는 정조임금 때 중국에서 안경이 넘어온 이후 일본지배 하에서 기술을 습득했는데, 도제방식이었다. 부산 쪽에서 시작했으나 제도화는 아니었다. 80년대 중후반부터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하자는 제도화 움직임이 일었다. 음지화의 양지화인데, 안경고등기술학교(남대문 쪽에 있었음), 안경기술학원, 보건전문대학 등이 설립되었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건 걸음마 단계여서 취업 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요즘은 교육기관도 다양하고, 콘택트렌즈회사에서 주기적으로 교육도 하고, 교육기관을 따로 운영하는 체인점이 많아져서 업무의 성격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기술자가 대접을 받았으나 요즘은 아니다. 예전에는 검안과 조제가 디테일했는데, 요즘은 경제 쪽 치중으로 판매한다. 좋지는 않지만 안 따라갈 수도 없다.

우리나라 안경 산업 기술은 많이 발전했다. 초창기에 다초점렌즈 등은 수입 아니면 기술력이 없어서 못 만들었는데, 10년 전부터 자체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이 몇 군데 있다. 지금은 아쉽게도 내로라하는 안경렌즈공장이 다 중국에 있다.

국내제품을 주문 받으면 이쪽 본사에서 중국공장에 전자주문으로 들어가 항공으로 넘어 들어온다. 공장은 중국에 있고 기술력과 기자재는 국산이다. 제조국이 중국이라는 데 불만을 갖는 고객들이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중국제품(제조국 표시)임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으면 어쩔 수 없다.

- 안경사 업무의 으뜸은 시력 검안이다.
안경사 업무는 시력검안, 제조&판매, 가공, 피팅, 콘텍트렌즈 검안과 판매 등이다. 으뜸은 시력 검안이다. 검안을 잘 못하면 편안하고자 한 것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예전에는 도제방식이었지만 요즘은 비용을 들여 교육을 한다. 물론 교육 중에는 검안을 할 수 없다. 초창기에는 안과 의사들과 밥그릇 탓에 알력이 많았다. 특히 콘택트렌즈는 빼 달라는. 최근 라식 등의 수술 부작용에 대해 안과는 없다고 하고 안경사 협회는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다음은 제조인데, 무수히 많은 렌즈 중에서 맞는 것을 조언하고 적정하게 처방해야 한다. 최소 7,8년 정도는 업무를 파악해야 고객에게 맞는 조언을 좀 해줄 수 있다. 요즘 젊은 안경사들은 할 수 있는 영역은 좁은데, 원하는 것은 많다.

일반적으로 안경사는 기술자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예전에는 렌즈가 유리여서 안경사가 일일이 깎아서 제조하느라 유리에 베거나 유리조각을 조심해야 했다. 안경사치고 습진 없는 사람이 없다. 내 손도 노가다 손처럼 단단하다.

요즘은 일일이 제조할 필요는 없다. 전자동기계(근무하는 매장의 것은 5,000만원이 넘는다)로 세팅해서 제조한다. 기계발달로 세분화 영역(렌즈, 다초점 등)이 넓어졌다.

- 그 사람의 생활 패턴에 맞는 안경이 ‘좋은 안경’이다.
그 사람 특성에 맞게끔 써야 좋은 안경이다. 비싸다 싸다 하는 렌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생활 패턴에 맞는 안경을 어떻게 해주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상담할 때 디테일하게 알아야 한다.

40대 이후에 쓰는 다초점이나 기능성렌즈, 학생들이 쓰는 렌즈는 충분히 상담해서 본인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안경 하신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질문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도수의 변화, 40대 전후의 노안 등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히 노안이라 하면 여성 고객 중에는 정색하며 ‘자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감정적으로 수용 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근시가 높아서 렌즈가 두꺼운 사람은 눈이 작아 보이지 않고 렌즈가 얇게 나온 것이 좋고, 가까운 게 안 보이는 40대 이후 노안 환자에게는 일반렌즈 보다 기능성(다초점)이 좋다. 근거리 작업량, 실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쓰는가 등에 맞추려면 안경사는 모든 제품을 다 알아야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분기별로 각종 회사에서 다양한 렌즈들이 새로 쏟아져 나와 복잡하다. 검안을 하면서, 실내에서만 쓰겠다, 돋보기는 쓰기 싫다 등 고객 사정을 맞추어 어떤 렌즈를 조합할지 조언하고 처방해야 한다. 눈은 나쁜데 중간거리를 보게 해 달라 하면 제한적인 렌즈를 권유해서 오케이를 받아야 한다.

일반 안경에서 다초점 렌즈로 바꿀 경우는 생활이 제한될 수 있다. 운동이나 운전 시 시야 확보가 좁아 보이고, 울렁거리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 (인터뷰어처럼) 중간 정도의 근시력에 노안이 진행되면 도수가 낮아져서 괜찮다. 근시가 있고 안경을 오래 쓴 사람은 적응에 무리가 없다.

눈이 나쁜 사람들은 여러 안경이 필요하다. 변색렌즈는 편리하면서 눈에 해가 되는 부분은 없다. 단, 관리의 필요성이 있다. 열에 약하므로(50도 이상은 안 되게) 헤어드라이기 사용이나 찜질방에서의 착용 등에 조심해야 한다. 기능이 추가될수록 금액이 고가여서 고객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 정품은 믿을만한 매장이나 면세점에서 사는 것이 좋다.
가격 거품이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백화점 상품은 질에 대한 것이 다르다. 제품의 완성도가 뛰어난 것을 판매한다. 컴플레인 최소화를 위한 테나 렌즈를 구비해서 판매하므로 고가의 제품이 많기는 하지만, 무조건 거품이 많다고 하는 건 무리다. 카탈로그에 나온 가격은 어디서나 같다. 할인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격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진품 여부 곤란 때문이다.

최근 남대문에서 명품 선글라스 진품이라고 몇 배 비싸게 위조품을 팔았다. 정품은 믿을만한 매장이나 면세점에서 사는 것이 좋다. 지금은 10군데 중 8곳은 타 매장에서 사온 안경테에 대해 피팅을 안 해준다. 배상 때문이다. 매장 상품이 아닌데 해주다보면 역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어서 요즘은 취급 안한다. 매장 제품은 하자 있을 시 개런티카드가 발급된 것은 보상이 100%까지 가능하다.

- 안경원 개업에 실패한 후에 자신감이 떨어졌다.
이메일 아이디가 wing4162002인데 의미가 깊다. 개원한 연월일과 안경원 이름이다. 다소 실패작이다. 바람을 일으켜보자고 작명한 건데,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다.

36살에 개원했다. 쫓기는 것도 있었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봉급쟁이는 뻔해서, 크게 발전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그래서 뜻이 맞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 동업을 했다(지금도 친하다). 너무 자리 잡히지 않은 곳을 선점한 게 문제였다. 상가 개념은 단골 고객 확보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수입이 불규칙하고, 마케팅비가 많이 들고, 몇 년 버틴다는 생각 없이 쫓기듯 2년 정도 하다가 접었다.

실패 후 1년간은 정말 일하기 싫었다. 삼십대 후반에 사실 다른 일 하기가 쉽지 않다. 용기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경제적 사항이다. 가장이 아니라면 괜찮은데... 집사람이 결혼 생활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 가장이 운전을 잘 못해서. 표현은 안하지만 미안하기는 하다.

40~50대 이코노사이드(경제적 사유로 자살)에 100% 공감한다. 우린 ‘낀세대’다. 사업으로 일이 안됐을 때 우울증이 왔다. 몇 년 전에 자살 단계까지 갔었다. 그 이후 많이 달라지긴 했다. 그 때 딸 생각 많이 났다. 유서도 작성했다. 48년 간 안 겪어본 일이 없다.

현업에 종사하는 안경사들도 무리해서 개업은 안하려 한다. 동네에서 안경원(20~30평)을 운영한다면 3억~5억, 다빈치 100평은 7억 정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30대 후반과 1~2년차가 많다. 중간 나이들이 없다. 지금은 핵가족시대여서 1~2년차는 부모의 도움으로 친구들과 합동해서 매장을 운영한다. 매출이 낮으면 분열한다.

이제 안경원은 규모가 작으면 안 된다. 앞으로의 유통은 대형화, 고급화가 추세다. 운영적 측면을 무시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동네 일반 안경원은 40~50%가 붕괴하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이 안경사를 고용하는 추세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초창기에는 반발도 있고, 제도화가 안돼서 흐지부지되었다.

요즘은 로펌에 변호사들이 있듯, 답이 나온다. 개인은 한계가 있지만, 그룹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보호받을 수 있고, 사회적 지위와 적정 보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다빈치’ 같은 대형화 프랜차이즈의 안경사 고용을 예로 들면, 본사에 이력서 제출-채용-지점 배치 순이다.

안경사의 활동 연령 한계가 좀 짧다. 패턴이 젊은 쪽으로 옮겨지니까, 매장 관리도 젊은 층이 주로 한다. 백화점은 지금 내 나이도 괜찮지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은퇴를 생각하게 된다.

- 안경사는 사양 직업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들어섰으면 자기 실력을 확실히 만들어서 해야 도태되지 않는다. 교육기간(현장 경험)은 꼭 필요하다. 실력은 (부모님)돈이 많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낸 후 경제적으로 아쉬울 때 부모님께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 내년에 고1이 되는 딸이 인생의 우선순위다.
딸은 지금처럼만 살면 좋겠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잘 하니까 고맙게 생각한다. 평소 딸에게 뭘 하라는 얘기는 안한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봐라, 싫다면 강요는 안 하마, 하기로 했으면 책임을 져라, 좋아하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해라 정도.

딸은 ‘아빠는 잔소리가 많다’고 한다. 관심인데 딸 입장에선 잔소리로 들리는가보다. 딸 하나다 보니까 노파심이 많다. 막상 딸이 태어나니까 걱정이 앞섰다. 한국사회가 여자에게 불리하지 않나.

평소 유대감 형성을 위해 딸에게 뽀뽀를 해준다. 아내가 제과회사에 다녀 서로 휴일이 다르다. 그래서 쉬는 날은 뭐라도 해서 딸과 같이 먹으려 한다. 시장은 쉬기 전날 퇴근할 때 본다.

-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가 중요하다.
종교는 없다. 종교는 자기합리화(종파 계파가 많다)라 여겨지고, 세뇌시키는 것 같다. 종교보다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가 중요하다. 절은 조용해서 좋다. 혼자 여행할 때 자주 찾는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친목과 위안을 구하는 것 같다.

사회적 관심사가 많고, 정치적으로는 진보 쪽인데, 요즘은 회의가 자주 든다. 여당을 찍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정치인들이 자기합리화를 하고,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게 많이 보인다. 세월호 문제도 본질은 확실한데, 지금은 힘겨루기를 하다보니까, 유가족은 힘들고, 대리기사폭행건도 그렇고, 내 자식이 그랬다면 하는 생각이 강했는데, 요즘은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가다간 큰일 날 것 같다.

SNS에 엮이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 변화를 주고 싶진 않다.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지. 갇힌

생각이고, 포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업무적인 쪽에서는 괜찮은데, 개인적인 일은 선을 긋는 편이다. 그래선지 첫인상이 다가서기 힘들단다. 내 안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 같다. 내 편이었는데 아닐 수도 있구나 깨달으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개인적인 일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중시한다.

- 은퇴 후에 작은 시골에 내려가 지내고 싶다.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50대 중반에 작은 시골에 내려가서 지내고 싶은데, 잘 될지... 애가 빨리 커야지. 그 전까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현업에 충실하자는 생각이다. 진상 고객에게도 최선을 다 하면서.

백화점은 경력에서 유일하게 포함되지 않은 곳이어서 왔는데, 2년째다. 퇴직금은 1년마다 정산한다. 별일 없으면 2016년 말까지는 있을 것 같은데, 떠나면 안경은 더 안할 것 같다. 한계를 느낀다. 육십 넘은 현업 선배도 있긴 하지만, 은퇴시키기 전에 내가 그만두자라는 신조다. 일종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몇 년 전부터 생각은 하는데 아이 때문에 시기를 늦추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나’를 놔 버리지 않기에 그렇다. 시력 교정이 필요한 나는 이중의 안경을 쓴 셈이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닿으려면 맞춤한 렌즈와 중도적 시선을 늘 겸비해야 한다.

인터뷰에 비쳐진 그의 관점은 객관적이다. 하루 중에 여러 개의 안경을 교체하며 활동의 최적화를 꾀한다는 그는 굴곡 많은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정시한다. 고집쟁이 그가 신조대로 은퇴를 서두르면, 평소 이런저런 이유로 피팅(나는 피팅이 어려운 얼굴 구조를 지녔다)을 자주 하는 나는 유능한 조력자를 잃을 것이다.

김유경  newcritic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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