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90일 ~ 192일

고르간은 엘부르즈 산맥 북동쪽 기슭에 고르간 평야를 끼고 있다. 그러나 이 평야는 곧 황량한 사막으로 바뀐다. 구름 한 점 없는 사막 지평선 끝은 황사먼지로 뿌옇게 지워져 있었다. 생명이라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이 땅 위에도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개미도 있고 작은 갑을 쓴 생명체들이 셀 수없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조그만 구멍들이 보이고 그 구멍으로 도마뱀들이 분주히 드나든다. 간혹 양떼들과 말들도 보인다. 까마귀와 이름 모를 새들, 그 너머로 사람이 사는 가옥도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 본격적인 사막으로 진입

나그네에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모습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들에게는 지극히 현실이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생명들은 치열하게 살아간다. 오늘 33도까지 오를 사막을 달리는 나의 모습도 잠시 명상 속에 유체이탈하여 바라보니 나도 치열하기 짝이 없다. 치열하게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마을인 인체보론을 향해 달린다.

▲ 장에 가는 차들

오늘 유난히 국경을 향해 가는 차가 많다. 한국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차량행렬이 줄을 섰는데 반대로 가는 차는 별로 없다. 이렇게 많은 차량이 국경을 넘으면 입출국 수속에 시간이 많아 걸릴 것을 염려하면서 국경에 도착하니 거기에 큰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경무역을 하는 곳인 가보다. 그러니까 투르크메니스탄 상인들이 이란에 물건을 가지고 와서 이란 사람들이 사러오는 그런 장이었다. 장 근처에 텐트나 돗자리를 펴고 가족끼리 식사하는 시골장터의 모습이 사막으로 옮겨온 것이다.

장터를 지나자 국경을 넘는 차는 거의 안 보이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졌다. 간혹 우리나라 60년대 승합차 같은 버스가 국경을 넘고 있었다. 국경을 넘어서려 앞으로 다가서니 차를 세우고 서류를 보자고 한다. 비자와 차량서류를 보더니 이곳에는 차량을 통과시키는 시스템이 안 돼 있으니 바그란으로 국경을 넘으라고 한다. 바그란은 이곳에서 460km나 떨어진 곳이다. 큰 사단이 벌어졌다. 빨리 달려야 저녁 10시 가까이 가야 그곳에 도착하고 그 시간에 국경을 통과시켜준다는 보장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인체보론 국경을 넘어서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국경까지 거리가 1200km가까이 되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30일 비자만 주므로 하루도 안 쉬고 아무 일 없을 때나 가능하다. 오늘 하루 허비하고 내일 다시 그곳까지 이동하느라 허비하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 한발자국도 빼먹지 않고 유라시아대륙을 내 발자국으로 고스란히 잇겠다는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는 없다.

이제 방법은 비그란 국경에서 넘어서 그곳에서 우즈베키스탄 국경까지 달려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마저도 안 되게 되었다. 비그란 국경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아슈하바트까지는 군사지역이라 가다가 중간에 내리지도 말고 사진도 찍지 말라는 경고를 엄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차량에 위치추적 장치까지 달아서 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국경을 넘을 때까지 감시해야겠단다.

어쩔 수 없이 460km를 잘라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미리 말해두자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정당성을 찾아냈다. 원래의 코스에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으로 돌아오느라 500내지 600km를 더 달렸고 이란의 서쪽국경을 통과해서 동쪽 국경까지는 갔으니 거리로나 내용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마음의 위로라도 필요했다. 꼭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마음이 찜찜해서 더욱 그랬다.

좌절감을 안고 국경검문소를 다시 나와 남쪽으로 조금 달리다 풀을 뜯는 낙타들의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낙타들은 얼마 전까지 이 유라시아대륙을 이어주던 급행열차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낙타는 사막에서 생존력이 강한 동물이다. 낙타 등에 달린 불편할 것 같은 혹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몽골. 중국의 타글라마칸 사막에 있던 쌍봉낙타가 수송용 가축이었다면 아라비아 사막의 단봉낙타는 다목적용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낙타가 단봉낙타이다. 젖은 사람이 먹었고 걸음이 빨라서 전투용으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창건이가 사온 낙타 젖 맛은 시큼하면서도 떨떨했다.

▲ 단봉낙타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실크로드를 다니는 상인을 페르시아어로 카루반이라고 하는데 카라반은 여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낙타 한 마리가 실을 수 있는 짐은 270kg이고 하루 이동 거리는 45km 정도라고 한다. 그 옛날 세상이 평화로웠던 시기에는 1000~5000마리의 낙타를 이용한 대규모 캐러밴도 있었다니 당시에 실크로드 무역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낙타는 아무리 봐도 눈이 잘 생겼다. 성격은 유순하면서도 퉁명스럽고 신경질적이다. 짜증난 녀석은 되새김질한 오물을 귀찮게 구는 사람 얼굴에 뱉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차에서 내려 사진 촬영을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이 말을 되새김질 했다.

저녁 늦게 국경을 넘는 일은 포기했다. 여러모로 현명한 생각 같지 않아서 국경에 들어서기 전 시르반에서 자고 아침 일찍 국경을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이란 쪽 수속이 다 끝나고 투르크메니스탄 수속을 마칠 무렵에는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였으니, 어제 시르반에서 자고 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버스를 타고 와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좀 있어도 하루 종일 차로 국경을 넘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짐은 샅샅이 뒤집어엎어졌다. 그리고도 잘 훈련된 테리어 두 마리가 차에 올라타 이곳저곳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유로 존 지역을 제외하고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애를 먹는다. 지도에서 보이는 국경선은 인류 역사상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국경선의 역사는 기껏해야 3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경선은 불과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라시아를 달리면서 국경선의 벽을 머리에서 지우면 무언가 확연하게 달리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달라진 세상을 꿈꾼다.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 지역을 넘어서니 바로 수도인 아슈하바트이다. 멀리서 하얗게 바라보이는 도시는 이국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낯설다. 사막에 핀 눈꽃처럼 차갑다. 점심을 굶었으므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식당이었다. 하얀 도시는 깨끗하다 못해 창백했다. 잘 포장된 넓은 도로에는 차 몇 대 다니지 않았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유령 도시 같았다. 모두 하얀색으로 높이 솟은 건물은 네온사인이라든가 간판도 보이지 않고 상점도 그리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 아슈하바트의 궁전과 거리

더욱 놀라운 것은 거리에 휴지조각 하나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 심지어 먼지 하나 없는 것 같이 깨끗했다. 싱가포르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이렇게 결벽증에 걸린 도시가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수도 ‘아슈하바트’는 사랑의 도시이다. ‘아슈하’는 사랑을 의미하고 ‘바트’는 도시를 뜻한다. 그곳에 깨끗한 걸 유난히 좋아하는 지도자가 사랑마저도 청소시킨 것이 아닐까? 절망감에 빠져 둘러보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 곳곳에 휴지조각만도 못한 경찰들이 널브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아슈하바트의 거리

그 다음날,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데 경찰이 호텔로 들이닥쳤다. 정보과 형사반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힘 좀 쓸 것 같은 형사 두 명과 영어통역을 맡은 여자 한분을 동반하고 들이닥쳤다. 이들은 우리가 어제 이동한 동선을 훤히 꿰차고 있었다. 식사하고 호텔을 찾으러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것뿐이었지만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이 나그네 기분을 확 뒤집어놓았다. 이들은 다짜고짜 당장 짐을 싸서 아슈하바트 밖으로 나가고, 다시는 아슈하바트에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했다. 이유는 수도의 치안을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지금 너무 피곤한 상태라 움직일 수 없고, 대신 내일 아침 7시에 여기에서 나가겠다고 통사정을 해서 해결이 되었다. 통역을 하던 여자 분이 소개해준 아시아 식당을 찾았다. 거기에서 김안젤리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고려인을 만났다. 한국말은 몇 마디 못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국인이라고 말해준 것이 왜 그리도 고맙던지 스카프를 한 장 선물했더니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자랑을 했다.

‘평화’라는 단어는 어떤 집단에게는 위험한 말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평화를 위해서 만인의 평화를 담보로 저당 잡은 사회에서는 말이다. 차량 앞뒤로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Peace Marathon’이란 글자가 위협적으로 느껴졌을까? 거기다 내가 누구란 말인가? 2016년 겨울 작은 촛불로 시작된 것이 한반도 남쪽을 뜨겁게 불태워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독재자와 적폐세력을 용광로 속의 불순물처럼 제거해버렸던 그 유명한 ‘촛불혁명’의 나라 한국에서 온 평화운동가가 아닌가? 정보당국은 내가 ‘사드 반대 마라톤’ ‘핵발전소 반대 마라톤’을 한 이력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들은 필시 촛불 바이러스가 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물은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투르크메니스탄에 와서 거물로 대접을 잘 받았다.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2018년 3월 11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까지(누적 최소거리 약 6497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공식 페이스북 (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 강명구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ra.runner)에서 확인 가능하다.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8063)과 유라시안마라톤조직위 공식후원계좌(신한은행 110-480-277370/이창복 상임대표)로도 후원할 수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사진, 동영상 : 강명구 마라토너, 김창건 서포터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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