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있어도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 있을까? 내게는 마음속에 묻어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 살면서 내가 보고 겪고 느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툭 털어놓고 얘기 하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이다. 내가 나라의 주인인데 왜 할 말을 못하고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할까? 사람들의 생각이 다 똑같을 수는 없는 데 왜 자본주의만 좋고 사회주의는 나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내 동포요, 형제인데, 그들이 주적인가 아닌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그들을 죽일 무기를 구입해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살아야 하는가?

▲ 2006년 평양 공항에서
▲ 2006년 평양 공항에서

2006년 12월 23일~26일까지 나는 평양을 거처 금강산 묘향산 그리고 백두산에 다녀올 행운을 얻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10.4남북공동선언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나라에 훈풍이 불면서다. 평양공항에 내리면서 내 눈에 비친 반세기동안 금기의 땅, 북한은 하나하나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평양 시내에서 차로 이동하면서 내 눈에 비친 우리의 반쪽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뿔난 도깨비, 괴물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배운 내 머릿속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 평양의 거리, 야경, 그들이 하는 말, 먹는 음식 등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 머물렀던 숙소에서 찰칵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데, 동족이 살고 있는 한반도 반쪽 북한 땅, 우리나라에 우리가 왜 서로 왕복조차 못하고 살아야 하는가?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 핏줄이었던 동족이 철천지원수가 되어 그들의 좋은 점을 말하면 왜 국가보안법의 ‘이적찬양 고무죄’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인데, 그 주인이 통일방안을 제안하고, 남북 통일방안 중 어느 안이 좋다, 나쁘다를 비판조차 못할까? ‘북한이 내놓은 통일 방한이 남한보다 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하면 안 되고 정부의 한반도공동체 통일방안이 가장 이상적인 통일방안이라고 믿고 있어야 하는가?

“모든 통일은 선이다” 오죽하면 장준하선생은 이런 말을 했을까? 1972년 박정희가 민중의 저항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자 그는 북한의 통일방안인 ‘연방제’에 관한 적극적인 검토를 제안한 일이 있다. 그게 끝이다. 그 후 그 많은 학자들, 북한전문가들, 교육자, 언론인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통일방안. 그 방안이 정부가 발표한 ‘한민족통일방안’이다. 정부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화해협력 → 남북연합(화해협력단계에서 구축된 상호신뢰 바탕) → 통일 헌법에 따라 남북 자유총선거 실시, 민족통일·국가통일 달성이다.

북한이 처음부터 일관되게 주장해 온 통일 방안은 '1민족 2체제 2국가 통일방안'이다. 현재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그대로 두고 이념이 없는 체육이나 역사연구와 같은 학술과 문화교류를 하면서 이질화된 문제부터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남북간 정부의 불신이 씻기고 점차 신뢰가 쌓이면 그때 가서 점진적으로 하나씩 풀어가자는 것이 북한의 통일방안이다. 그런데 납북한의 정부는 어떤 통일방인이 더 현실적인 통일 방안인가를 주권자들이 토론을 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분단국가에서 사는 우리에게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달라질까? 우리는 지금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혈세를 감당하고 있는가? 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통일의 절실함을 교육시키지 못하고 동족을 미워하는 교육을 하고 있을까? 왜 통일이 이제 남의 얘기처럼 생소하게 아니 금기사항이 되어가고 있는가? 통일이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 나와 우리는 얼마나 달라질까? 남도 북도 다 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면서 소원을 현실로 만들어 낼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살고 있을까?

연간 40조에 가까운 국방비, 미군이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대가로 지불하는 돈만 연간 1조원이다. 북한은 국내총생산 36조원의 3분의 1을 군사비로 쓴다고 한다. 물론 통일이 되면 군사비가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동족이 서로가 원수가 되어 살상무기를 구입하는데 이런 돈을 쓴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통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어디 군사비뿐 일까? 70년간 흩어져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고통이 해결되고 문화의 이질감을 극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청정해역 북한 땅이 관광지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남북이 모두 통일이 소원이라면서 통일을 못할 이유가 없다. 통일이 되지 않는 이유는 통일이 되면 손해 볼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는 사람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분단을 이용해 군수물자를 팔아 잇권을 챙기는 군수마피아들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이다.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런 나라가 통일이 되면 손해 볼 게 너무 많다. 그들은 지금까지 분단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챙겼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외세와 군수마피아들 눈치를 보면서 통일 논의가 가능한가? 이제는 주권자들이 통일을 말하는 시대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 아니겠는가?

편집 : 심창식 부에디터

김용택 시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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