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항일운동의 이모저모2

마광남 주주통신원l승인2018.04.08l수정2018.04.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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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지도 등대사건

자지도는 이름을 세 번이나 바꾼 섬이다.

처음에는 제주도에서 들어오는 항구의 문이라 하여 항문도(港門島)라고 하였으나 인체의 그것과 같다하여 자지도(者只島)라 불렀으나 그도 아니라고 당사도(唐寺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섬에는 절이 없는데 절사(寺)자를 쓴 것은 장보고 시대에 멀리 당나라를 오갈 때 이 섬에서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제사를 모셨던 곳이란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 진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에는 자지도라 불렀기에 자지도 등대사건이라 하게 되었다. 사건인즉 1909년 1월 소안도 남쪽에 위치한 자지도 등대에서 일본인 4명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동기는 1876년 병자수호조약 이후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 통상을 요구하며 주요 항구의 개항을 요구했는데 자기들 나라의 상선 출입을 돕고자 1906년에 이 섬에 등대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땅에 자기들 마음대로 등대를 새우고 일본인들이 와서 근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에는 이준화(소안 : 동학군 참가)를 대표로 5명(성명 미상)이 해남군 이진의 의병들과 힘을 합쳐 일본인들을 타살하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지금도 자지도 등대 구내에는 타살당한 일본인들의 기념비가 있다.

3. 소안면 토지계정(土地係筝)사건

1905년 일제 보호정치가 시작되면서 토지조사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소안도 등 여러 섬을 왕실에게 넘겨줌으로 친일을 획책했다.

이때 소안에서는 1909년 최성태, 김사홍, 신완희, 이한재 등 4명의 면민 대표를 내세워 전면 토지소유권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13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1922년 승소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을 토지계정사건이라고 하는데 소안사람들은 이 재판 승소를 기념하여 전 면민들이 1만 400원을 각출하여 사립소안학교를 세웠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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