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고양예술고 김세은 양

정성껏 준비한, 예쁜 선물같은 날이었다.

▲ 대상 수상자 고양예술고 2학년 1반 김세은

 

때 아닌 4월의 함박눈 소식과 연일 시야를 흐리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야외행사를 준비하며 걱정이 앞섰다. 더구나 봄이면 꽃샘바람도 위력이 만만찮다.

4월 8일 일요일 아침, 티없이 푸른 하늘에 바람마저 불지 않아 꽃들의 속삭임이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전날까지 겨울 파커를 입었던 추위도 백일장 행사를 축하하듯 슬쩍 달아올랐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IT강국답게, 원고지를 대하는 백일장 참여가 계속 줄어들었다. 한 때 천 이백 여명씩 몰려오던 백일장의 문학지망생들이 근년 들어서는 사, 오백여 명으로 축소했다. 원고지와 제반 준비도 근년의 수준에 맞추어졌다. 고등학생들은 행사가 끝난 뒤, 공원의 일대를 청소하며 봉사활동증명서를 받아가기에 문협 직인도 그에 맞추어 찍었다.

행사장인 경주 황성공원의 상수리나무 숲에는 아침햇살을 받아 든 새싹들이 새처럼 지저귀듯 부리같은 잎을 일제히 펼쳤다.

반세기를 넘어서는 올해는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이미 개막식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행사장의 좌우에서 인파가 자꾸 몰려와서 놀라웠다. 초등생들을 동반한 가족나들이겸이겠거니 생각했다. 학부모들이 모두 작품제출까지 하는 건 아니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심사위원들 사이에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원고지가 동이 났다. 문협의 운영진인 필자는 급히 차를 몰아 사무실에서 원고지를 수송해와야 했다. 제출된 작품 수가 800여 편이었다. 

원고 마감 시 참여자들에게 지급하는 빵이 떨어졌다는 전갈에 다급히 경주시내를 돌며 넉넉히 200개를 구입했지만 그마저도 이내 다 나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빈 손으로 돌아서야했다. 봉사활동증명서가 떨어져 급히 사무실로 달려 온 몇 몇은 복사를 해서 현장으로 뛰느라 바빴다. 어수선하고 소란했지만 그건 성공적인 행사에만 있는 일복이었다.  

      

​1회 백일장 수상자들 중 심사위원이 된 분들은 노령의 은발이 되셨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애릿한 어린아이부터 등허리가 굽은 어르신까지 함께 어우를 수 있는 것이 백일장 행사다. 이 행사에는 세대간의 차별과 몰이해가 존재하지 않아서 문학이라는 아름다운 학문을 두고 서로의 시선이 얽힌다.

▲ 초 저, 고학년 심사
▲ 중등부 심사
▲ 고등부 심사
▲ 대학 일반부 심사
▲ 전 현직 3대 회장님들과 사무국장님
▲ 업무가 바빠도 즐겁다

 

지난 해에 이어 목월대상수상자는 올해도 경기도 고양시 고양예술고 학생에게 돌아갔다.

<대상>

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1반 김세은

제목: 내일

아빠는 형광등 같아서

내일을 갈아 끼우며 살아가요

외발 사다리 위에 올라서면 

발목이 사라져 버리던 아빠

알전구 같은 무릎이 아스팔트 위에 

수북이 쌓여가요

 

사람들이 오늘을 마무리하며

정수리에 알전구를 하나씩 켤 때

아빠는 내일이 정전될까

가장 높은 곳에서 햇덩이를 바꿔 끼워요

 

아빠의 두 손은 항상 빛을 잡고 있어서

파란 3도 화상을 입었는데 

아빠는 내일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형광등 위에 죽은 하루살이 떼처럼 말라 갔어요

 

아빠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손금을 연결시켜

하나의 필라멘트로 만들었어요

세상의 짙은 그림자가 오늘을 잃어버리도록

 

내일은 까만 발바닥을 가진 아빠를 기다리고

아빠는 짙은 그림자를 밟아도 알아채지 못해요

저녁의 뒷모습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아요

아빠는 내일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요

-끝-

 

고양에서 경주까지의 거리는 멀다. 고양예술고 학생들은 버스를 대절해 참여했다. 아마 전날 밤 미리 도착했거나, 아니면 밤을 꼬박 달려 아침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수상자들 중에는 광주 문정여고, 대전 대신고, 전남여고, 서강고, 서울여고생들이 다수 있었다. 

국내 백일장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목월백일장의 위상이다. 요즘 긴장에서 벗어난 남북관계의 순조로운 화해분위기에 더 큰 욕심이 생긴다. 당장 독일처럼 단일국가체제의 통일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왕래가 자유로운 온전한 국토복원이 이루어지면 그 때, 북한의 청소년들과 인민들이 오늘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많이 몰려와 드넓은 황성공원을 메우고 넘치는 그런 백일장을 꿈꾼다. 정치보다 앞 선 아름다운 예술이 이념의 경계를 넘기란 쉽다.

3월 1일 출범한 경주문협 새 운영진은 첫 백일장을 치르면서 무척 당황하며 수고로웠다. 결코 규모가 적지 않은 이 행사를 치르는데 경주시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겨우 사백만원이다. 나머지는 가난한 문인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머무르는 약 70여명 심사위원의 심사비는 아이들 알바비에도 못 미치는 삼만원이다. 타 시,군,구에는 십만원의 심사비가 기본이다. 1인당 점심값에 천원의 차액을 다투어야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백일장 참여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빵과 생수(우유보다 싸다)조차 넉넉히 준비하지 못해 올해는 낭패를 겪었다. 

▲ 15년만의 성황에 무척 기쁜 운영진들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싸구려 트로피도 크리스탈이나 나무로 된 상패로 바꾸고 싶지만 여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깨지기 쉬운 유리케이스 안의 조악한 트로피를 아이들에게 안길 때마다 깨트려 다칠까봐 조마조마 미안하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가짜 금칠은 변색되고, 이사라도 할라치면 얇은 유리상자는 무척 위태로울 것이다. 가작이나 장려상에는 노트 한 권이 상품이다. 상장에 이은 상품은 귀해서 기뻐야하는데 기껏 노트 한 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경영이 어려운 국내 출판사들을 위해서 동화책이라도 구입해 선물하고 싶지만 벼르기만 몇 해 째다. 

어른들이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는 축제도 아닌 문화의 척도를 가늠하는 백일장이 좀 더 품격있고, 내실있는 행사가 되길 희망한다.

문학은 인성의 바탕이 되는 밑그림이다. 아이가 정녕 우리의 미래라고 여긴다면 경주시의 행정은 바로 이런 행사부터 제대로 치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소중한 경주의 아이들과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인솔해 오시는 선생님들과 모든 학부모들의 기대도 나와 같으리라 믿는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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