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단어 몇 개로 쾌재를 부르게 하는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놀랍기 때문이다. 수백 쪽이나 되는 책보다 단어 몇 개로 무릎을 치게 하는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는 시가 참 부럽다. 159쪽. 그것도 펜드선생, 한아름, 장필독,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대화조로 풀어 가는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말했고 플라톤은 그 철학을 체계화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지금 배우고 익히고 있는 모든 학문을 체계화한 사람이다. 삼단논법은 알아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논법뿐만 아니라 논리학, 이론철학, 실천철학, 언어학, 예술이론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무려 4~5백 권을 썼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지금부터 2,4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나는 왜 사는 거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 삶의 목적은 뭐지?”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지’와 같아. 그렇다고 이 책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인생을 잘 사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는 태어났고(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 배우고, 살아가고, 결국엔 죽어.

그 과정에서 단순히 “죽지 못해 사는 거지”라는 식의 푸념 섞인 대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값진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향을 알려준다는 거야.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길을 좀 헤매더라도 결국엔 도달하잖아? 가는 방법이야 배를 타고 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자기상황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어쨌든 길을 잃지 않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행복’이라고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한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을까?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생물학적인 욕구충족에서부터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것도,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아니 일생동안 ‘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그런 목적의식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나는 지역 시민단체가 유명인사라는 사람들을 초청해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뜬 구름 잡는 말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특히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경우 현실과 괴리된 공허한 얘기를 하는 본인은 박학다식에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지는 몰라도 ‘그게 왜 어때서? 내 삶과 무슨 상관이야?’ 이렇게 따지고 들어 가보면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르다. '사람이 왜 사는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럼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이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모두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좋음의 목적과 행복의 정의를, 2권은 도덕적 미덕, 3권 도덕적 책임, 4권 다른 미덕, 5권은 정의, 6권은 지적 미덕, 7권 자제력과 자제력 없음 쾌락, 8권 친애 Ⅰ, 9권 친애 Ⅱ, 마지막 10권은 쾌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2권부터 나오는 덕은 4권까지 이어지는데 도덕적인 덕과 습관, 선과 중용의 관계, 중용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등이 나오는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런 방법이 필요하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다. 저자 이성주는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깨소금 맛으로 풀어내는 마술과 같은 능력이 있다.

나쁜 것과 좋은 것 사이에서 사람들은 왜 좋은 것을 선택하지? ‘좋은 걸’ 추구하는 삶을 사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있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기에 지금까지 고민해본 적 없었지?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윤리학>은 이렇게 ‘당연한 것’을 질문하는 내용으로 시작해. 왜 사람들은 좋은 걸 선택하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과정은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좋은 걸 선택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야. 그런데 행복이 뭐야? 행복이란 걸 본적이 있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이런 거야. 그렇다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이다.

“캐묻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어!” 철학 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정도는 알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예수보다 400년이나 먼저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만나면 내가 왜 사는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아니 삶이 힘들어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이게 행복이다’를 권하고 싶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용택 시민통신원  kyongt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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