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의 역사강좌 건국 99년 역사를 확인하다

독립운동의 성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우리는 내년이면 건국 100주년을 맞게 된다 김선태 주주통신원l승인2018.05.09l수정2018.05.09 00:2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때 : 2018. 04. 30. 16:00 ~ 18:00
   곳 : 서울마포구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
   강사 : 한시준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대상 : 광복회 회원 및 시민 60 여명

광복회 서울시지부가 주최한 광복회 역사광좌 학술강연 상반기 마지막 회수인 3차 학술 강좌인 광복회 제16기 강좌가 열렸다. 광복회 서울시지부 건물 지하 강당에서 열린 강의는 시작하기 전 약 80% 정도는 자리가 차 있었다.

우선 힌시준 교수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시작이 된 강의는 본래 오늘 계획이었다면서 강의자료로 준 책과 다른 것이어서 다시 바꿔주는 수고를 하기까지 하였다. 일단 강의를 하는 내용을 비춰주는 PPT는 별로 도움이 안 될 정도로 시야가 흐리고 내용도 정리가 덜 된듯하여 아쉬웠다. 다행히 강의는 강의 책자가 PPT를 그대로 한 것이어서 알아볼 수 있었다.

▲ 광복회 서울시지부 강좌 안내판

강의를 시작하시면서 안중근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였다.
"단지동맹이 가장 중요한 이슈처럼 소개가 되었는데 그건 아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라는 큰 뜻을 품은 분으로 이런 안중근 사상을 내세우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라는 얘기로 맺어주었다. 이어서 중궁 상해에서 임시정부청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가 프랑스조계에 위치하게 된 연유며 조계의 안내 등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럼 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시작 되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나라를 일본에게 넘김으로서 주권을 포기하였다. 그러므로 황제가 포기한 주권을 백성들이 찾아야 한다.'는 것이 독립운동의 정신이었으므로 대한帝국의 황제 대신이 백성이 되찾은 나라이므로 大韓民國이어야 한다는 것이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의 생각이었고 그것이 국호에 반영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토와 주권을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었는데,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들은 국토가 없었는데 어찌 그것을 건국으로 볼 수 있느냐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1948년 대한민국은 정말 건국인가? 생각하여보자. 우리 한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아직도 전국토의 절반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럼 지금도 건국이 안 된 것이 아닌가? 헌법에 명시된 국토의 절반밖에 확보하지 못했으니 [대한민국]은 아직도 임시정부일 뿐이라는 반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그런 주장 자체가 엉터리 주장임을 정확하게 알려준 것이었다.
 
▲ 강의장 모습 강의장의 대부분을 어르신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독립운동의 성과에 대하여는 "우리나라가 열심히 독립운동을 열심히 펼친 결과로 중국의 장제스가 카이로회담에서  앞장을 서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주장하게 하였다."
 
1895년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이 1945년까지 무려 50년 동안 이어져 왔으며, 그 결과로 카이로회담에서의 독립보장을 받아냈으며, 우리국민들은 독립정신과 자주정신을 가지게 되었고, 민주주의의 정신 곧 시민정신이 싹튼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운동은 [독립국], [자주민]을 선언하였으며, 4월11일 상해임시정부의 수립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임시정부 의정원에서는 4월10일 저녁부터 11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무원 회의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으며, 이동녕 의장, 손정도 부의장을 선출하고, 국무원을 조직할 수 있었다. 상해 프랑스조계에 간신히 임시정부를 세울 수 있었으며, 프랑스의 보호아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악착같은 임정 파괴공작에 하는 수 없이 상해를 떠나 곳곳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1년 11월 23일 저녁만찬에서 장제스는 루즈벨트에게 "일본에게 빼앗겼던 대만과 만주지역은 중국에 반환하고, 중국내 있는 일본군  시설과 재산은 중국이 관리하겠으며, 한국은 자유 독립 되게 하자."하고 제안 하였으며, 처칠까지 3인이 모여 의논한 끝에 11월 24일 영국이 반대를 하였고, 결국 영국의 제안에 따라 "절차를 밟아서 한국을 자유 독립 되게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합의하고 발표하였다.
 
이 조건 때문에 결국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문제에 대하여 "신탁통치를 거쳐 한국의 자유 독립시킨다. 신탁통치를 실시하되 기간은 5년으로 한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결국은 이 결정이 우리나라에서 '찬탁'과 '반탁'이라는 좌우국론 분열을 불렀고, 남과 북으로 국가가 나뉘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으며,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까지 불러오고 말았다.
 
이렇게 1948년 세운 대한민국정부수립 시에도 헌법전문에 분명 [임시정부의 명맥을 이어받아...]로 그리고 헌법을 실은 관보1호에도 또렷하게 <대한민국 원년>이 아니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명기하였다. 그런데도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고 있는 꼴통보수 세력의 앞잡이 뉴라이트들은 1948년이 대한민국 1년이라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므로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열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는 반민족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는 그런 엉터리 주장을 하지는 말아야 하며, 그들은 역사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합법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선태 주주통신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참여소통 데스크  |  전화 : 02)710-0093  |  등록일 : 2015년 1월 15일  | 발행일자 : 2015년 1월 1일
등록번호 : 서울 아03523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김광호  |  에디터 : 이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호
편집위원 : 김경애, 김미경, 박효삼, 서기철, 심창식, 안지애, 양성숙, 정혁준, 김국화  |  객원편집위원 : 김동호, 김태평, 김혜성,허익배
Copyright © 2018 한겨레: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