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내’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을 지칭하는데, 필자가 인생 2막을 시작한 곳이다. 필자 또래의 은퇴자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귀촌을 원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데는 배우자의 반대 때문이다. 필자는 다행히 아내가 동의해서 시골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필자의 지인들은 시골생활이 따분하지 않느냐고 물어 온다. 그에 대한 대답이 될수도 있는 시골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곳 지리산 산내는 여타 농촌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이곳은 90년대 말 도법스님이 주도한 귀농운동과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이 새로운 바람을 일어난 곳이다. 거기에 지리산이 주는 매력이 있어 전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이삼십 대의 젊은이 들이 이제는 사오십 대가 되어 이곳 지역사회의 주력이 되었다.

이곳에는 자생적인 주민동아리만 50개에 달한다. 그중엔 끼리끼리 어울리는 폐쇄적인 동아리도 있지만, 다양한 동아리가 있어 참여하고자 맘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의적인 기획이 세워지고 곧잘 실행에 옮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공동체성격을 반영한 일들도 이루어지곤 한다. 공동으로 친환경농사를 지어 수익의 일부는 좋은 일에 후원하기, 오가작통법이라 하여 다섯 가족이 한 청년을 일 년 간 후원하여 자립을 돕는 일, 음식냉장고라 하여 가정에서 여유가 있는 음식이나 식재료를 갖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다 사용하기, 여성 가장이나 노인 가정의 집수리, 땔감 만들기를 돕는 두꺼비집 봉사, 농한기인 겨울철엔 청년들을 중심으로 마을마다 대보름 달집태우기가 이루어지고, 산내 놀이단이 매년 새로운 주제로 공연팀을 꾸려 공연준비에 들어간다. 산내놀이단은 많은 연습 끝에 한겨울 노인들을 모아놓고 2회에 걸쳐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공연은 몇 년 전에 시작되어 해마다 지역민의 뜨거운 호응 속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행사의 동기가 재미있다. 해마다 농한기인 겨울철이면, 약장수들이 산내를 돌며 공연도 하고 약도 팔아, 그 폐해가 심각함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생각해낸 아이디어란다.

지리산을 지키기 위한 생명연대도 활발하다. 몇 년 전 온천이 들어설 뻔 한 것을 막아냈고,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운동, 지리산 댐건설 반대 운동도 활발하다. 실상사라는 절이 하는 역할도 다른 절과는 차원이 다르다. 심산유곡이 아니라, 동네 옆 들판에 있는 실상사는 주민과 함께하며, 친환경 농사를 선도하고, 세월호 천일기도 등 사회참여 활동도 활발하며, 의식 있는 강연이나 각종 연수가 진행된다.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다는 제3코스가 지나가는데, 그 길 주변엔 음식점과 펜션, 민박들이 있으며, 주말에 이 길을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심심찮게 길손들과 만나게 된다. 이곳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여, 동네에서 지리산 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뛰어나다. 동네마다 혹은 몇 발짝만 이동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리산엔 계곡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지리산만큼 풍부하고 맑고 시린 물을 자랑하는 곳이 있을까? 가까이에 뱀사골, 달궁, 벽소령, 백무동, 칠선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되면, 주변 산에서 고사리, 취, 두릅 등을 채취할 수 있다. 초여름엔 마을 여기저기에 오디, 버찌 등이 널려 있다. 가을이면, 밤, 호두, 홍시, 산수유, 은행을 수확할 수 있다. 세칭 산농사를 철따라 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엔 지리산말고도 가볼 만한 산들이 많다. 삼정산, 삼봉산, 바래봉, 백운산 등. 그리고 사찰도 많다. 순례코스로 유명한 7암자(도솔암, 영원사,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암, 약수암, 실상사) 외에도 백장암, 금대암, 벽송사, 서암정사 등이 있고, 암자는 정확한 개수 파악이 안 될 정도다.

이곳은 지리산의 매력 때문인지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오는 추세다. 다양한 사투리가 난무하고, 의식 있고 줏대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자부심이 강해서인지 겸손하지 못한 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원주민들은 칠팔십 대가 대부분이며, 살아 온 세월 얘기를 듣자면 날을 새도 모자랄 지경이다. 한국 현대사의 압축이라 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악명 높던 88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개통되어 이제는 안전한 고속도로가 되었으며, 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한 시간 거리의 광주를 비롯, 대구, 전주, 대전이 10분 간격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남원시에는 고속철도 전라선이 지나가며, 서울에선 백무동 가는 고속버스가 이곳을 거쳐 가기도 한다.

 

지리산 자락에 있어서, 우리 집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연평균으로 치면, 매주 한 팀 꼴은 된다. 어떤 주는 서너 팀이 다녀가기도 한다. 간혹 행랑채인 구들방에서 자고 가겠다는 손님이 있어, 미리 아궁이에 불을 때기도 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친 후배들이 잠시 짬을 내어 쉬어 가는 곳이다. 우리 집 행랑채는 ‘불편과 느림’을 기꺼이 받아들일 사람이 머문다. 아궁이 옆 수돗가에서 씻고 생태뒷간을 사용해야 한다. 얼마 전 보름 즈음에도 사십대 부부가 달빛을 받으며, 수돗가에서 목욕하고, 다음날 오전까지 뜨뜻한 구들방에서 뒹굴다 돌아갔다. 이곳에서 충전된 심신으로 또 얼마간 버티겠지. 누구든지 일상에서 지칠 때 오셔서 쉬어가시라. 언제든 환영하는 우리 부부가 있다.

이 정도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다.

다른 시골은 몰라도 필자의 2막 무대인 지리산 산내는 지루하지 않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부에디터

김종근 주주통신원  green27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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