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고조선4 '2000년 동안의 깃털전쟁'

以唐高卽位五十      (중화는)요堯가 즉위하고 꼬치구이[五十]들을 춤추게[五] 하여

  年庚寅            절구질하는 범[庚寅 야합(섹스)하는 지도자]을 유혹[年]하고자

{唐高卽位元年戊辰    {요堯가 즉위하자 원元이 성숙[年]하여 무성[戊]하게 임신[辰]하매

則五十年丁巳        춤추는 꼬치를 투사[則]하여 유혹[年]하면 장정이 귀의[丁巳]하여

非庚寅也            절구질하는 범[庚寅 섹스하는 인간]을 비방[非]하리니

疑其未實}           백성의 욕망[未實]을 금기[疑]하여 백성의 재물[未實]을 기약하리라.}

都平壤城{今西京}     평양성{今西京: 첨단화하며 깃들이는 성전}을 도읍하더니,

始稱朝鮮            비로소 조선朝鮮을 회유[稱]하기 시작[始]하였다.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붕어빵[又]들이 백악산에서 아사달로 도읍[都]을 이식[移]하매

又名弓{一作方}忽山    까마귀[又]파는 명名하여 홀忽을 투영[弓]하며 산山을 공격[弓]하고

又今彌             (붕어빵이)수탈자[彌]를 죽여서[又] 갓난아기[彌]를 첨단화[今]하면

達御國一千五百年    (까마귀는)‘나랏님을 겁탈[御]하여 一千五百年하기’를 투영[達]하였다.

(통론: 단군은 요임금[唐高]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요堯가 즉위한 원년元年은 무진戊辰년이다. 그런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庚寅은 아니니 그것이 사실이 아닌지 의심된다.} 평양성{지금의 서경西京}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또는 궁홀산弓忽山{일명 방홀산方忽山}이라고도 하고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단군왕검은 거기서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周虎王卽位己卯     주周나라가 호왕虎王(무왕)이 즉위하여 자기가 부절[卩]을 맞추며

封箕子於朝鮮       기자箕子를 조선에 책봉[封]하매

壇君乃移於藏唐京    단군(정신)은 마침내 ‘당唐을 매장[藏]한 수도[京]’에 이주[移]했다가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후에 돌아와서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으니

壽一千九百八歲      나이는 1908세다.

(통론: 주周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己卯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책봉하였다. 이에 단군檀君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나이는 1908세였다.)

 

먼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보자.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위하여 뉴욕에 상경한 앤드리아(앤디)와 그녀의 남자친구 네이트는 뉴욕 어느 허름한 하숙집에 둥지를 틀었다. 신문기자를 꿈꾸던 앤디는 몇 차례 낙방하자 세계적인 패션제국 '런웨이'에 입사한다. 포스터의 창 달린 하이힐은 "패션은 세계를 지배하는 무기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장면1. 앤디가 취직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네이트는 축하파티를 열어주고, 둘만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옷을 입지 않은 채 꿀맛 같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이제 곧 미란다라는 이름의 뱀이 패션이라는 선악과를 들고 등장할 것이니, 그들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는가?

 

장면2. 회사에 출근한 앤디가 전화를 받으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패션제국이라는 직장과는 어울리지 않게 앤디의 패션은 영락없는 촌년이다. 이 옷을 입고 신상품기획회의를 하던 앤디는 "이 따위 옷가지...."라는 돌출발언으로 제국의 여왕 미란다에게 호된 질책을 당한다. 앤디는 패션이라는 물질을 혐오하는 인문학스노비즘의 소유자라는 점은 책으로 읽지 않고는 포착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앤디와 미란다의 충돌은 '('인문은 고매하고 경영은 속물'이라는)인문학스노비즘 vs 패션스노비즘'의 충돌이었으니, 미란다의 설교를 들은 앤디는 이제 인문학의 우상을 버리고 패션이라는 종교에 귀의한다.

 

장면3. 아트디렉터인 나이젤이라는 남자선배가 샤넬 프라다 지미추 등등 브랜드들을 동원하여 촌년 앤디를 명품녀로 변신시키고 있다. 패션만큼이나 앤디의 몸값은 치솟고 있을 것이니, 걱정되는 것은 아직 취직도 못하는 남자친구. 오직 패션이라는 신神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앤디는 네이트와의 에덴동산은 점점 희미해진다.

 

장면4. 앤디가 출장지에서 크리스천 톰슨이라는 컬럼니스트와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잠시 후 톰슨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앤디는 어쩔 수 없이 호텔방에서 동침한다. 어쩔 수 없이 남자친구를 버린 앤디는 술이 깨고 나면 기억하리라. "네가 지미추를 신었을 때 너는 영혼을 버렸어!"라는 절친한 동료의 질투섞인 충고를. 그 지점에서 영혼을 앗아간 신神을 재고할 것이니, 이틑날 앤디는 미란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장면5. 뉴욕 번화가의 어느 까페. 앤디가 청바지차림으로 네이트와 대화하고 있다. 여전히 지미추 부츠를 신은 채. 네이트는 어느 소도시의 호텔요리사로 취직되어 뉴욕을 떠날 것이고, 앤디는 어느 노동조합 기자로 취직할 것이다. '런웨이'라는 공작새마을에서 앤디는 패션(브랜드)의 기술을 얻었으니, 그 지배자들의 연금술을 가지고 까마귀마을로 간다는 말이다. 프로메테우스처럼. 프로메테우스가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프로디테를 생각하라. 대장장이 남편 헤파이토스를 버리고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육체와 영혼을 바쳤던 미와 사랑의 여신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다시 역사를 보자. 동이족의 나라에 단군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출현하자 중화는 요임금이라는 선수를 내세운다. 요임금은 '의상지치衣裳之治'라는 문화정치의 연금술사. 화려한 공작새문화를 자랑하며 절구질하는 남자(족장)들을 유혹하면, 수많은 족장들이 요임금과 야합할 것이니 중화의 공작새깃털이 천하를 뒤덮으리라. 그 공작새문화센터로서 중원의 한복판에 평양성을 건설하였으니, 평양성은 곧 천하의 영웅들이 몰려들어 집단섹스oracle를 벌이는 '신전'이라 할 것이다. 그 평양성에서 일어나는 중화의 바람이 멀리 고조선에까지 불어왔을 때, 고조선의 몇몇 족장들도 요임금의 공작새브랜드를 붙이고 싶었을 것이니, 누군가 평양성을 복사한 도읍 아사달을 건설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저항세력도 만만치 않을 터, 아사달이라는 '중화문화원'의 삐까번쩍한 브랜드들을 이용하여 멋진 까마귀브랜드를 개발한다.

요임금의 패션으로 고조선의 영혼을 위대하게 포장하여 요임음에 대항하는 전략을 신화는 "까마귀[又]파는 명名하여 홀忽을 투영[弓]하며 산山을 공격[弓]"하였다 하였으니, 홀忽이란 6화에서 '장자'를 인용하여 설명한 상부구조의 '의식'으로서 유화문명의 '영혼'을 말한다. 여기서 요임금의 패션은 단지 '옷'뿐만이 아니라 건축 음악 무용 시 소설 등 오늘날 우리가 '문화'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에서 까마귀패션으로는 '청바지'외에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문화 애호가들이라면 20세기 미국을 뒤흔들었던 청바지와 로큰롤혁명을 생각하리라. 그것이 양복과 고전음악이라는 지배계급의 문화코드를 무너뜨린 혁명이었다면 지금 벌어지는 월드컵 축구의 열기도, 세계 곳곳에 '코리아'라는 이름을 알리는 한류의 바람도 생생한 기념비적인 문화혁명의 역사일 것이다. 

"(붕어빵이)수탈자[彌]를 죽여서[又] 갓난아기[彌]를 첨단화[今]하면 (까마귀파는)‘나랏님[國]을 겁탈[御]하여 一千五百年하기’를 투영[達]하였다."

붕어빵이 하는 일은 공작새들의 죽음과 부활(음양 또는 극기복례)이다.(又今彌는 「잡아함경雜阿含經」‘又今在者’의 변형이며, 갓난아기[彌]는 도덕경 제47장 및 「장자」‘대종사’편 여우와 남백자규 이야기를 참조하라.) 이에 대하여 까마귀파는 제왕(나랏님)을 겁탈(야합)하고 다양성(千)을 획일화(一)하며 하얀깃털(一白)을 춤추게 하여[五] 착취[年]하는 중화를 폭로[達]하였다 하였으니, 광개토왕비 에피탑 '공자왈맹자왈을 폭로하라'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은 단군신화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학자들에 대한 반론으로서 중요한 논거가 될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기자조선의 역사다. 주周나라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책봉한 것이 곧 '낙랑'의 유래라는 점은 여러 차레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BC10세기 무렵부터 중화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낙랑질 할 때 우리는 어찌하였을까? 신화는 단군의 영혼이 장당경(요임금의 평양성)으로 가서 유화문명의 씨를 뿌렸다고 한다. 소극적으로 본다면 중화의 씨를 뿌리러 조선에 온 중국선비들이 조선의 철학을 중국에 수입하였다는 말이며, 적극적으로 보면, 고조선이 중원 땅에 유화문명을 전도하는 선교단을 파견하였다는 말이다. 어느 쪽일까? 가야(임나가야)가 일본에 선교단을 파견하였다는 이야기는 '일본서기' 숭신천황 수인천황기에서 확인된다.(일본학자들은 일본에 유화문명의 씨를 뿌리는 '임나일본부'를 거꾸로 해석하여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기구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조선이 중화에 '임나'와 같은 선교단을 파견하였는지 찾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지워진 또 하나의 막중한 숙제라 할 것이다.

"단군(정신)은 마침내 ‘당唐을 매장[藏]한 수도[京]’에 이주[移]했다가 후에 돌아와서 아사달에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으니"

기자가 조선으로 왔을 때 단군은 중국으로 갔고, 훗날 유화문명을 꿈꾸는 중국의 선비들 '위만'세력과 함께 귀환하였다는 말이다.

이상 23화의 단군의 역사는 구조적으로 요임금과의 깃털전쟁, 주나라와의 깃털전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유심히보면 '절구질하는 범' '미실未實' 등의 어휘들은 거듭 '양쪽을 바라보라' 소리친다. 바람에 국경이 없듯이 인간의 문화와 철학은 무한히 소통하는 것이니, 대전제와 소전제를 사유하고, 경영과 철학을 연결하고, 오늘의 현실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중국에서 조선을 바라보고, 조선에서 중국과 인도를 넘어 저 멀리 기독교세계까지 거침없이 사유하는 '역사'를 하라는 묵시일 터, 그 점을 감지하면서도 콕 꼬집어 언급해야 할 중요한 점을 놓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글을 황급히 올려야 하는 심정을 이해하시라.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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