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1 가자, 까마귀들의 낙원으로

前漢朝鮮傳云       ‘전한서前漢書’ 조선전朝鮮傳은 이렇게 말한다.
自始燕時常         진시황[始] 때부터 연燕은 상常의 씨[時]를 뿌리며
略得眞番朝鮮       진번眞番을 경략[略]하여 조선을 교화[得]하였으니
{師古曰戰國時燕因是 {조선: 안사고 가로되, 전국시대 연燕은 시是에 기인[因]하여
略得此地也}        자아[此]의 섬김을 공략[略此地]하여 是의 섬김을 교육했다.[得此地]}
爲置吏築障         텅 비우는 관리들[置吏]로 하여금 경계[障]를 쌓게 하였다.
秦滅燕屬遼東外徼   진秦이 멸망하자 연燕은 요동을 모방하며 순행을 외면[外徼]하였다.
漢興爲遠難守       한漢이 일어나 금기의 쇼[爲難]를 하며 절개를 심원[遠守]하게 하고
復修遼東故塞       요동遼東(자아외면)을 부활[復]하여 옛 요새[塞중화주의]를 수리하고
至浿水爲界         패수浿水에 투사[至]하여 (모방을 자극하는)경계로 삼아
{師古曰 浿在樂浪郡} {안사고 가로되, 패수浿水는 낙랑군樂浪郡을 섬겼다[在].}
屬燕              연燕나라를 포위[屬]하였다.

燕王盧綰反入匈奴   연燕왕 노관盧綰이 도리어[反] 흉노를 끌어들이자
燕人魏滿亡命       연燕나라 사람 위만魏滿은 명命을 배반[亡]하고
聚黨千餘人         까마귀무리[黨] 1,000여 명을 모아[聚]
東走出塞 渡浿水    동東으로 도주[走]하여 장새[塞]를 탈출[出]하고 패수浿水를 건너
居秦故空地上下障   진秦이 공空을 부려먹던[故] 땅 상하장上下障을 차지[居]하였다.
稍役屬眞番朝鮮蠻夷 부려먹기[役]를 제거[稍]하여 진번을 포위하자 조선朝鮮·만이蠻夷가
及故燕齊亡命者     옛날[故]을 각성[及]하매 연燕과 제齊의 명命을 배반[亡]한 자들이
王之都王儉         위만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검王儉에 도읍하였다.
{李曰地名臣瓚曰    {왕검王儉: 이기李寄는 '하부구조[地]가 명名한다' 하고, 신찬臣瓚은
王儉城在樂浪郡    ‘왕검성은 낙랑군을 보필[在]하는                               浿水之東}          패수浿水의 주인이다.’라고 하였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자. 1912년 4월 20일, 영국의 사우스햄튼 항구. 수백 명의 군중이 타이타닉으로 들어가는 교각을 오른다. 짐을 실은 마차와 트럭, 인력거들이 군중들과 뒤엉킨 가운데, 두 대의 자동차가 미끄러지듯이 군중들을 가르며 들어온다. 하얀 르노 지프가 멈추고 운전사가 내려 뒤따라온 벤츠의 문을 열자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숙녀 로즈가 내린다. 반대편 문에서는 대재벌의 상속자 칼 허클리가 로즈의 어머니 루스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할머니가 된 로즈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그 배는 다른 사람들에겐 꿈의 배였죠, 그러나 나에게는 노예선이었습니다. 쇠사슬을 채우고 미국으로 데려가는….”
그 시각 항구 인근의 선술집. 항만일꾼들과 선원들이 북적이는 한쪽 켠에 네 명의 젊은이가 포커판을 벌이고 있다. 20살쯤 되어 보이는 미국인 떠돌이 잭 도슨과 그의 친구 파브리지오, 그리고 스웨덴 친구들이다. 마지막 카드를 받아든 잭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더니 다섯 장의 카드를 내민다. “내가 이겼어, 풀 하우스야!” 잭은 파브리지오의 등 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소리친다.
“가자, 자유의 땅으로, 진정한 재주꾼들the real hot-dogs들의 나라로! 타이타닉을 타고. 우리는 이제 최상의 스타일로 올라탈 거야. 우리는 정말로 빌어먹을 왕족들 위에 올라탈 거야, 내 친구야ragazzo mio!”
Goin' home… to the land o'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real hot-dogs! On the TITANIC!! We're ridin' in high style now! We're practically goddamned royalty, ragazzo mio!

이상한 문장이다. "타이타닉을 타고"라는 표현에서는 전치사 on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 문장은 '배를 탈 것이다'라는 말이 아니므로 riding의 목적어가 없지 않은가. 다시 그 다음 문장은 동사가 없다. 그렇다면 두 개의 문장을 합쳐보자. We're ridin' goddamned royalty, in high style. 잭이 말하는 것은, 빌어먹을 귀족들 위에 군림하리라는 떠돌이의 꿈이며, 그 꿈은 이미 친구의 등에 올라타는 행동으로 보여준 마당이다. 잭은 어떻게 왕족들 위에 군림할 수 있을까? 무기는 '최상의 스타일high style'이며, 그 구체적인 의미는 '내 친구ragazzo mio'에 숨어 있다. '라가조 미오ragazzo mio'는 이탈리아 출신 팝 아티스트 ‘로레다나 베르테Loredana Berte’의 노래제목. 대다수 사람들과 소통하는 대중문화의 힘으로 빌어먹을 왕족 위에 군림하겠다는 말이다. 또한 불완전한 두 문장의 결합화법은 불완전한 인간(남자의 재능)과 神(여자의 영혼)의 결합이 승리의 길임을 암시한다.

이제 포스터를 보고 할머니 로즈의 대사를 보라. 영화는 황혼이 물드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두 팔을 활짝 벌린 로즈의 모습에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담아내려 하였으리라. 그런데 할머니 로즈가 회상하는 여신은 쇠사슬에 묶인 노예가 아닌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로즈는 영화 초반부에서 자살을 기도하고, 마침 그것을 목격한 잭이 구원한다. 그러고 보면 포스터에서 잭이 여신의 등뒤에서 허리를 감싸고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전지전능하지 못한 神을 도와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잭은 초상화를 그려주어 자아를 성찰하게 하고,  여신을 상류사회(정면1)에서 3등실(장면2)로 초대하여 휴머니즘을 불어넣고, 기관실(장면3)로 간 남(지식)과 여(미학)의 뜨거운 결합은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동력을 낳으리리라.

그렇게 남녀가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면, 다시 과거(장면1)를 돌아다보자. 로즈의 어머니는 old-money로 불리는 봉건시대의 지주이며, 칼 헉슬리는 new-money로 불리는 산업시대의 자본가. 지주에서 자본가로 권력이 이동하자, 루스는 여신을 칼 헉슬리에게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 로즈는 '쇠사슬에 묶여 미국으로 팔려간다' 하였으니, 지주에서 자본가로의 권력이동은 곧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권력이동을 의미한다.

이제 잭의 꿈을 환기하라. 빌어먹을 왕족을 올라타겠다는 잭의 꿈은 결국 산업자본가 칼 헉슬리 위에 군림하겠다는 말이다. 승리의 열쇠는 '최상의 스타일high style'이며, 구체적으로는 로큰롤 청바지 영화 등의 대중문화다. 그렇다면 잭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잭은 유럽을 떠돌며 과거 중세교회와 봉건영주들에게 부역했던 찬란한 예술을 공부하였을 터, 그 왕족을 위한 예술을 대중들에게 가져가는 것이 잭에게 부여된 미션일 것이다.

 

이제 역사책으로 돌아가자.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위만조선'이라는 타이틀의 무게. 일연은 고조선 다음에 기자조선 부여 등을 모두 제치고 '위만조선'편을 두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고조선'편의 서막에 위만조선을 올렸으니, 일연의 마음을 사로잡은 위만의 막중한 의미를 헤아려보시라. 20화에서 위만조선은 '왕의 귀환'이자 '엑소더스'라고 하였다.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중화의 씨를 뿌리기 시작하자 단군은 중원으로 들어가 유화문명의 씨를 뿌린다. 춘추전국시대 500여년간 뿌리를 내리던 탈중화의 철학은 결국 진시황과 한나라에 의하여 좌절되고, 좌절된 중국철인들의 꿈이 만리장성을 넘어와 조선민중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내어 유화문명의 영혼과 만난다. 이 위대한 드라마를 두고 일본학자들은 중국인들이 지배한 역사라 폄하하고, 한국의 학자들은 그들의 프레임에 갇힌 채 구질구질한 변명만 늘어놓았으니, 감히 말하건대 우리의 역사학이 죽어야 우리의 역사가 살아나리라.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의 드라마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을까? 단서는 영화 <타이타닉>에 있다. 중세에 부역했던 문화가 다시 산업자본에 부역하려는 상황에서 잭은 대다수 인간을 위한 문화를 기획한다.(이것은 단지 20세기 미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14세기부터 꾸준히 진척되어 온 르네상스의 전통이리라.) '神과 복고를 위한 문화 vs 인간과 변혁을 위한 문화'의 대결이라는 '타이타닉'의 구도에서 위만조선의 드라마를 상상하라. 요임금으로부터 비롯된 찬란한 예술과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제자백가들에 의하여 꽃을 피운 인문의 기술 - 노장사상 같은 철학과 공자왈맹자왈 따위 반철학 - 을 두루 섭렵한 위만은 <타이타닉>의 잭 도슨처럼 능히 조선민중의 영혼을 깨울 수 있었을 것이다. 민중이 부활함으로써 일찍이 기자에 의하여 시작된 중화주의적 통치방식(봉건제)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니, 다음 26화에서 광활한 만주벌판의 여러 족장들이 투항함으로써 위만조선은 옛 단군조선의 영토를 온전히 회복한다.

그러나 세계사의 걸작이라 자랑할만한 위만조선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일연은 역사적 교훈으로서 위만조선 멸망의 복선을 깔아놓고 있으니, 다름 아닌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하게 된 동기인 '노관盧綰'이야기다. 노관盧綰(BC265년~BC193년)은 유방劉邦과 한 날 한 동네에서 태어난 죽마고우. 유방이 항우項羽를 공격할 때 태위太尉로서 보좌하여 장안후長安侯에 봉해졌으며, 연왕燕王 장도臧荼를 무너뜨리는 데 공을 세워 연왕燕王에 봉해졌다. 고조高祖 12년(BC195)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밀사를 보내 연합을 제의하고 흉노匈奴와도 결탁했지만 거사에 실패하자 흉노로 망명하였다. 흉노는 노관을 동호노왕東胡盧王으로 대접하였지만, 곧 사망하였다.
이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노관盧綰의 일대기다. 그러나 노관은 과연 불알친구이자 천하의 권력자인 유방劉邦에게 등을 돌렸겠는가?

일연(전한서)은 "노관盧綰이 도리어[反] 흉노를 끌어들"인 것이 위만魏滿이 명命을 배반한 이유라고 한다. 반중화주의자인 위만은 노관이 반역자 진희陳豨와 손잡았을 때 기꺼이 노관의 부하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노관이 흉노와 내통하였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직 '오랑캐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의 민중은 중화의 편에 설 것이니, 진희의 반란은 수포로 돌아가리라. 반역자와 손잡고 오랑캐를 끌어들인 것은 반란을 진압하는 최고의 계략이었으니, 그제서야 기만의 전략을 간파한 위만은 '해방된 중원'의 꿈을 접고 새로운 꿈을 찾아 만리장성을 넘은 것이다.

그렇다면 한무제는 유방과 노관의 기만전술과 같은 방식으로 위만조선을 무너뜨렸을까?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전략의 틀에서 반복되는 역사를 바라보라. 다음 26화에서 일연(또는 전한서)은 '사기史記'에 나오는 진시황을 시해하려다 실패했다는 자객 형가荊軻이야기를 암시하며 위만조선의 운명을 전개해나간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진시황과 연나라 태자 丹과 형가의 정체를 상상하며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를 사유하시라.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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