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3 다시 불어오는 중화의 바람

삼국유사 ‘위만조선’편은 중국에서 피어난 철학과 조선민중의 영혼과의 위대한 만남이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라는 기나긴 역사여행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미션을 제시하는 베이스캠프다. 일연이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이슈들을 헤아려본다면 대략 다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세계관이다. 만리장성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장성 안의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장성 밖의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두 번째, 자유란 무엇인가?
세 번째, 문화란 무엇인가?
네 번째, ‘기억’하라. 단재 신채호가 “역사란 我와 非我와의 투쟁”이라고 하였다면, 일연에게 역사란 我를 기억Renaissance해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非我를 기억하는 작업이다. 

25화(위만조선1)가 자유의 땅을 찾아 만리장성을 넘어온 중국철학의 꿈이라면, 26화(위만조선2)에서 ‘단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중국철학의 도움으로 조선의 영혼은 부활한다. 영화 <타이타닉>과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미지로 25화 26화의 '되찾은 낙원' 위만조선을 환기하시라.

그러나 중화문명과 유화문명은 양립할 수 없는 배반의 문명. 진시황에 이어 중원을 평정한 한漢무제는 옛날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에 보냈던 것처럼 동방의 까마귀낙원을 무너뜨리는 동북공정에 착수하였으니, 바야흐로 도래한 철기의 힘으로 한껏 진화한 중화의 바람이 만리장성을 넘어와 두 개의 문명은 다시 충돌한다.

 

元封二年          원봉元封(한무제 연호) 2년(BC109년)
漢使涉何諭右渠    한나라는 섭하涉何를 보내어 우거右渠를 회유[諭]하였지만
終不肯奉詔        우거는 끝내 조서[詔]를 받들려고[奉] 하지 않았다.
何去至界 臨浿水   섭하가 한물간 경계[至界]를 소거[去]하고 패수浿水를 겁탈[臨]하여
使馭刺殺送何者    마부[馭 선비]로 하여금 送何者를 찔러서 送何者를 죽이게 하자
朝鮮裨王長        조선은 왕과 장長을 보위[裨]하였으니,
{師古曰送何者名也} {안사고왈, 왕과 장은 ‘送何者(꾸짖기를 돌려보내는 자)’의 이름이다.}
卽渡水            섭하가 죽음[卽]으로 물을 건너[渡水]
馳入塞            장벽을 업그레이드[馳塞]하여 요새(자아)를 매몰[入塞]하매
遂歸報            수하[遂]가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天子拜何          천자는 섭하를 추서[拜]하여
爲遼東之{東}部都尉  요동의 동부도위東部都尉로 삼았으니,
朝鮮怨何 襲攻殺何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며 거세[攻]를 답습하고 비판[何]을 죽였다.

 

중화문명과 유화문명의 충돌은 '섭하涉何 vs 송하자送何者'라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하何'는 곧 주나라 무왕을 꾸짖은 백이숙제의 상징이니, 섭하涉何는 '꾸짖기'라는 중화주의의 물을 건너 중화를 업그레이드하는 가짜변혁의 기술자다. 그에 대응하여 위만조선의 왕 우거와 아들 장長은 '꾸짖기'를 한나라로 돌려보내며 저항한다. 그런데 섭하가 자객을 보내어 왕과 장을 시해하려 하자, 조선은 자객과 섭하를 붙잡아 죽였으니, 그 결과 한무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조선 백성들이 자객(마부)의 충성을 애도하며 섭하를 원망할 때, 자객의 무덤에서 중화의 망령은 부활하고 있으니 말이다. '꾸짖기[何]'가 백이숙제의 상징이라면 '자객[刺]'은 연나라 태자 단의 명령을 받고 진시황을 시해하려 했던 형가를 상징한다. 그 두 가지 상징으로 일연(전한서)은 반복되는 중화의 부활전략을 묵시하였으니, 주나라시대의 '백이숙제'와 진시황시대의 '형가' 등을 내세우며 성인군자들이 수천년 동안 벼리어 온 전가의 보도 '바람의 연금술'을 사유하시라.

▲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57년)> 포스터 이미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57년)>는 마거릿 미첼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남북전쟁 전후 미국의 '바람'을 성찰하는 영화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지만 청년들이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이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주인공 스칼렛은 부드럽고 교양 있는 애슐리의 청혼을 기다리지만, 유감스럽게도 애슐리는 스칼렛의 사촌인 멜라니와 결혼해버린다. 화가 난 스칼렛은 애슐리의 여동생의 약혼자인 멜라니의 오빠 찰스와 결혼해버린다. 찰스는 전쟁터(남북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고 스칼렛은 아들을 낳는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항상 애슐리만을 사모하던 그녀는 아들과 유모를 데리고 애슐리의 숙모 집으로 들어가 산다. 남부군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 애슐리도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간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돌아온 그에게 스칼렛은 자기 사랑이 변치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정열에 빠져들 것 같던 애슐리는 “가족을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미련 없이 전쟁터로 돌아간다. 마침내 애틀랜타마저 북부군에게 포위되자, 스칼렛은 화염에 싸인 마을에서 레트 버틀러의 도움을 받아 산후조리를 하던 멜라니와 아들, 유모와 함께 마차를 타고 부모의 농장이 있는 타라로 향한다. 타라의 집은 불타지 않았지만 농장의 노예들은 전부 대부분 도망가고 3년간 수확해놓은 옥수수는 전부 사라지고 어머니는 병사하고, 아버지는 화병이 나서 폐인이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스칼렛은 가족들(의리를 지켜 남아있는 몇몇 노예까지)을 먹여 살리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부치고 억순이처럼 노동한다. 5년간의 전쟁은 북부군의 승리로 끝나고, 북부군이 남부를 식민통치(?)하는 힘겨운 재건시대로 접어들었다. 스칼렛은 돈을 위해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프랭크 케네디라는 목재상을 속여 재혼하지만, 오래지 않아 사업에 실패한 프랭크는 세상을 떠나고,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레트와의 뒤늦은 만남. 온갖 장애를 넘어 결합하였지만, 커플의 내일 또한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일렁이는 황혼이 암시한다

레트 버틀러(포스터의 남자)는 찰스턴 출신의 사관학교에서 쫓겨난 문제아a black sheep. 집안에서도 쫓겨나 도박으로 연명하였다는 소문이 있으며,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밀수와 매점매석으로 부를 축적한, 나쁘게 말하면 방종하고 좋게 말하면 줏대가 있는 반항아다. 스칼렛은 레트의 담백한 열정에 은근히 매력을 느끼지만, 행실이 방종하다는 평판때문에 레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애슐리가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결혼만큼은 온건한 멜라니와 하는 것이 좋겠다"고 고백하자 화가 난 스칼렛이 애슐리의 뺨을 후려갈길 때, 우연히 지켜보던 레트 버틀러는 실연당한 스칼렛을 짖궂게 놀린다. 그 놀림은 자신이 사랑하는 '바보같은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통렬함의 발로였으며, 애슐리에게 배신당한 스칼렛이 찰스와 결혼한 이후에도 그녀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었다.

그렇다면 뒤늦게 결합한 커플은 행복할까? 우여곡절 끝에 레트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스칼렛은 여전히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레트의 마음에도 스칼레에게 자신은 어디까지나 애슐리의 대용품이라는 실망감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다섯살 된 딸이 낙마하여 죽고, 스칼렛이 레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 때는 이미 레트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다음이었으니, 다시 한 번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스칼렛은 텅 빈 타라의 저택에 홀로 남겨진다. 다시 찾아온 절망의 순간 스칼렛은 지금껏 절망의 순간마다 되뇌었던 경구-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Tomorrow is another day-를 떠올리며 "내일 또 다시 레트를 찾아 가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는다.(유감스럽게도 피날레장면을 캡쳐하지 못하였다. 위 '레트와의 뒤늦은 만남' 장면보다는 장엄하면서도 상서로운 황혼을 배경으로 한 비비안 리의 희망찬 모습을 상상하시라.)

Tomorrow is another day. 이것이 당초 작가 마거릿 미첼이 정한 제목이었지만, 출판사의 권유로 'Gone with the wind'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자가 내일 찾아올 남자에 대한 기대라면, 후자는 가버린 두 남자이야기. 우선 두 남자를 다시 사유하라.

서툰 솜씨로 장작을 패고 있는 애슐리에게 스칼렛이 다가가자, 애슐리가 말한다.

“당신(스칼렛)에게는 사자와 같은 마음이 있지만, 상상력은 전혀 없소. 그런 당신이 부러울 따름이오.”

'사유하는 인간'이 행동하는 인간에게 던지는 경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유'를 자랑하는 애슐리는 스칼렛을 사랑하면서도 결혼상대로는 멜라니를 선택하지 않았던가. 통념을 사랑하였다는 말이다. 10화에서 본 아름다운 아내보다 법도를 사랑한 '오셀로'처럼, 18화에서 일연이 말한 '자기에게 묻지 않는 도리'를 사랑한 것이니, 얼마나 허위적인 '사유하는 인간'인가.

애슐리와 같은 허위의 철학자들을 퇴치하고자 작가는 레트 버틀러라는 혁명가를 내세운다. 통념이라는 잣대를 거부하다가 사관학교에서 퇴학맞고 집안에서도 쫓겨난 반항아. 당돌하고도 진취적인 스칼렛이라면 응당 레트에게 사랑의 화살이 꽂혔겠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주인공 스칼렛은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통념이라는 강물에 휩쓸려 애슐리에게 빠져든 것이다.

어떤 평론가들은 마거릿 미첼이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노예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안의 노예'를 사유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는 애슐리와 스칼렛 안의 노예근성을 말이다. 그 노예근성을 몰아내기까지 남북전쟁(1861~1865)이라는 혈투가 치러지는 동안, 숱한 남자주인공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여자들은 '자유의지와는 동떨어진 결혼'에 얽매인다.

이상이 소전제인간들의 이야기라면, 이제 대전제여신을 응시하라.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단체관람하였을 때 필자는 비비안 리의 화려한 외모에 매혹되어 영화내용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또한 영화가 던지는 하나의 주제가 아닌가. 비비안 리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꿈꾸라. 그러한 의도에서 피날레는 혼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신을 그려냈으니, 과거 그녀를 거쳐간 남자들을 다시 생각해보자.

애슐리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사회의 전형이며, 그것은 곧 중세봉건형인간을 의미한다. 레트 버틀러는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북부사회의 전형으로서 곧 산업사회형인간이다. 남북전쟁이 노예를 해방하였다면, 그 자유의 바람 속에서 애슐리와 스칼렛 안의 노예들은 척결되었으리라. 거기까지가 혁명가 레트 버틀러의 역할이었으니, 그 다음은 어떠한가? 오랜 투쟁을 거쳐 자유인으로 부활한 스칼렛은 레트와 결혼하지만, 딸은 낙마하여 죽고 여자에게 마음을 붙이지 못한 남자는 떠나간다. 서구작가들이 애용하는 '파괴와 건설'의 서사구조에 비추어 본다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성공적인 파괴와 미완의 건설이다. 그렇다면 미완의 건설을 완수하고 스칼렛과 결혼할 수 있는 남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레트가 왜 떠나는지, 스칼렛이 왜 보내는지를 보라. 스칼렛을 향한 사랑이 식어갈 때 레트는 이렇게 토로한다.

“나는 결코 깨진 파편을 참을성 있게 주워 모아서 접착제로 붙이고, 그렇게 붙이기만 하면 새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오.”

1차적으로 이것은 아직도 애슐리를 그리워하며 대용품으로 여기는 스칼렛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나 스칼렛이 애슐리에 대한 환상을 각성하고 진정 레트를 사랑하게 된 마당에도 레트의 불만은 치유되지 못하였으니, 스칼렛이 전에 애슐리가 있던 그 자리에 레트를 갖다놓으려는 미봉적 변화 탓이리라. 남녀관계 부부관계 나아가 기업과 사회의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고안하지 못한 채 말이다. 또한 '파편을 접착제로 붙이기'에는 모든 것을 대체제로 인식하는 산업사회의 비인간성도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휴머니즘을 담아낸 새로운 그릇(철학, 메커니즘)을 창조하는 자가 스칼렛이라는 여신과 결혼하리라.

25화의 <타이타닉>, 26화의 <그리스인 조르바>, 오늘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모두 문화(바람 風)와 제도(물 水)와 의식(하늘 無=天)을 성찰하는 영화다. 타이타닉의 바람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불어오고, <바람과 함께>의 바람은 북부에서 남부로 불어오고, <그리스인 조르바>의 바람은 고대로부터 중세를 넘어 오늘에 불어온다. 그러니 우리는 위만조선의 바람으로 오늘날 우리 주변에 켜켜이 싸인 중화주의의 망령을 쓸어내야 하리라. 그래서 일연은 '역사를 기억하라'하였으니, 이제 성인군자들의 '바람의 연금술' 형가죽이기 섭하죽이기를 보자.

먼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실린 형가이야기다. 연燕나라 태자 ‘단丹’은 진秦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진秦왕의 야심을 간파하고는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진왕을 암살할 자객을 물색한다. 태자가 찾아낸 인물은 형가荊軻. 태자는 형가를 상빈으로 대접하여 자신의 수레와 말을 내주고 자신의 비단옷을 입히고 식사도 함께 하며 때를 기다렸다. BC230년 진왕이 한韓나라를무너뜨리고 2년 후 조趙나라 한단을 공격하자 태자 단은 형가를 찾아가 계책을 상의하였다. 형가가 말했다.

“진왕에게 접근하려면 우리가 진심으로 화의를 원한다는 것을 믿게 해야 합니다. 듣자하니, 진왕은 연燕의 독항督亢(하북성 탁현)을 탐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망명한 진나라 장수 번오기樊於期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제가 번오기의 머리와 독항의 지도를 가져가면 진왕은 반드시 저를 만나줄 것입니다.”

태자 단丹이 말했다.

“독항의 지도는 어려울 것 없지만, 진나라에서 박해를 받다가 연나라로 망명한 번오기의 목을 갖다 바쳐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못하겠소.”

형가는 혼자 번오기를 찾아가서 말하였다.

“이 형가는 진왕을 죽이러 갈 결단을 내렸습니다. 진왕은 장군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으니, 장군의 머리를 저에게 내주신다면 기필코 진왕을 만나서 죽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번오기는 묵묵히 보검을 뽑아 자기 목을 베었다. 번오기의 모가지를 들고 태자가 하사한 비수를 품고 진나라로 가는 형가는 역수易水에 이르러 고점리高漸離가 연주하는 축築소리에 맞추어 비장한 심경을 노래한다.

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 강물은 차구나!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그러나 형가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형가와 태자 단은 처절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궁형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후세에 남긴 사마천의 의도는 무엇일까? 다시 삼국유사를 보라. 일연(전한서)은 '자刺'라는 글자로 자객 형가를 암시하고, '꾸짖음[何]'이라는 단어로 주나라 무왕을 꾸짖은 백이숙제를 환기한다. 백이숙제가 떠오르는 중화의 태양 무왕의 탄탄대로를 위하여 무왕을 꾸짖었듯이, 연나라 태자와 자객 형가는 진시황의 탄탄대로를 위하여 진시황에게 비수를 겨누었다는 말이다. 태자 단과 자객 형가, 그들의 거사를 위하여 묵묵히 자기 목을 바친 번오기, 그리고 그들 3인방의 위대한 거사를 후세에 전한 사마천. 점조직으로 방방곡곡에 흩어져 중화에 부역하는 군자들의 네트웍(조폭)이 바로 중화라는 이름의 神이었으니, '전한서'는 그 조폭의 원리에 의한 중화불패의 역사를 후세선비들에게 전하여 중화를 배반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일연은 그러한 '보이지 않는 중화'를 간파하여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실패의 역사를 복기한 것이다.

25화 및 26화에서 위만은 중화의 전략을 간파하고는 만리장성을 넘어 약속의 땅을 찾아 단군조선을 부활한다. 그러한 위만의 꿈을 손자 우거는 충실하게 계승하였지만, 중화의 전략은 망각하였으니, 섭하를 죽이고 중화부활의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이다. 조선이 섭하를 원망한다는 것은, 섭하의 명령을 충직하게 수행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마부[馭 선비]를 추모한다는 뜻. 섭하가 중화부활의 씨를 뿌렸으니 이제 한무제의 본격적인 공격과 그에 대응하는 위만조선의 힘겨운 항전을 기대하시라.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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