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트리올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집 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리나 교통방법도 익숙지 않아 관광객이자 외국인 느낌으로 지냈다. 두 달 지나니 몬트리올이 좀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롭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일까. 실험실 사람들하고도 실험 외에 다양한 얘기도 나누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잘 알아가는 것 같다.

우리 실험실엔 학생이 총 7명 있다. 7명 전부 캐나다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이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알제리, 두바이, 중국 그리고 한국의 나까지 모두 자기 나라에서 자랐고 그 문화에 익숙하기에 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나 사적인 얘기를 주고받을 때 서로 다른 문화에 놀랄 때가 많다.

▲ 실험실 사람들(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올백 머리 친구가 Sofiane, 맨 오른쪽이 나의 보스, 맨 왼쪽이 중국인 부교수, 그 옆에 박사과정 중국여학생 Ting, 뒤 가운데 키 큰 친구가 샘)

알제리에서 온 박사후연구원 Sofiane은 굉장히 진지하고 연구에 몰두해 있는 친구다. 그런데 최근 점심식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한 달 간 라마단 종교의식에 참여 중이라 했다. 라마단은 무슬림이 행하는 종교의식이다. 이 기간 한 달간 해가 떠있는 시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욕도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영혼을 정화한다고 한다. 또한 배고픔을 느끼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선을 베푼다고 한다. 해가 지는 시간에만 먹을 수 있기에 보통 하루 한 끼 정도 식사를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놀라, “너 대단하다. 어떻게 굶을 수가 있냐? 나는 점심 한 끼만 못 먹어도 쓰러질 것 같은데” 라 했더니, “나는 어려서부터 해왔기에 아무렇지 않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오히려 “라마단 기간에 몸도 가볍고 다른 잡생각이 없어져 좋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 종교를, 폭력적이고 일방적이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선입견과는 너무나 다른 무슬림을 만나서 많이 놀랐다.

Sofiane 외에 두바이에서 온 석사후연구원, 프랑스에서 온 박사후연구원(어렸을 때 레바논에서 프랑스로 이민)도 무슬림이다. 일도 열심히 하고, 친절하며 다른 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이다. 아마 물어보지 않았으면 무슬림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거다. 예전에 나도 무슬림 사람들을 미개하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곤 했었는데... 나의 선입견이 무척 부끄러웠다. 아마도 잘못된 보도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무슬림의 진정한 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나보다.

▲ 연구소 사람들과 브런치 시간 . 오른쪽 앞에서 세번째 남자가 샘.

또 다른 특이한 학생은 악센트가 강한 영국식 영어를 쓰는 영국인 Sam이다. 해리포터 같이 귀엽고 맑은 외모, 키가 191cm나 되는 장신, 날씬한 몸매를 갖고 있어 마치 영국모델을 보는 거 같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바로 호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친구다. Sam과 몇 번 얘기를 나누자마자 특이한 점을 알아차렸다. 바로 행동과 말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굉장히 여성스럽고 남자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Sam은 Openly Gay (드러내놓고 게이)이었던 거다.

지난 번 점심시간엔 자기 전남자친구를 얘기해줬다. 내가 전남자친구 사진 좀 보여 달라고 하니 굉장히 멋진 모델 같은 친구를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쉽게 접하지 못할 그런 행동과 문화여서 처음엔 약간 어색했으나, 게이라는 걸 전혀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고 친숙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키 크고 덩치 좋은 여학생과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Openly Gay인 Sam이 가끔 불편한 점을 얘기하곤 하는데 남자와 손을 잡고 걷다보면 일부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것이었다. 물론 몬트리올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런던특정지역에선 이런 일을 몇 번 겪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몬트리올에 Gay Street(정식 길 이름)이 있다며 여길 꼭 가보라고 헀다. 이 길은 게이들이 주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문화생활을 하는 곳이다. 게이거리를 들어서는 순간 게이의 상징인 무지개 전등이 그라데이션으로 길을 아름답게 꾸며준다. 이 거리를 들어서면 나이 불문하고 남자 커플들이 앉아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 Gay Street

한국에선 왜 게이가 데이트하는 걸 볼 수 없을까? 한국에는 게이가 상대적으로 없어서 그런 걸까? 한국에 있을 당시 외국인 게이 친구들을 통해 한국인 게이 친구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한국인 친구 한 명과 친해져서 진지하게 몇 번 대화를 나눴다. 이 친구 말에 의하면 자기 친구들, 부모님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자기가 게이인 줄 모른다고 했다. 사실대로 얘기를 하고 싶지만 부모님과 친구들이 충격을 받을 것 같고 사회에서 배척받아 퇴출될 것 같아 숨기고 지낸다고 했다. 언젠가 한국을 떠나 숨은 연애가 아니라 자유로운 연애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작년 선거 당시 문재인대통령께서 동성결혼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을 지지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면은 아직은 우리나라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언젠간 우리나라도 동성애 친구들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친구는 중국여학생 Ting이다. 나보다 1년 먼저 박사학위를 시작한 Ting은 우리 실험실에서 제일 열심히 연구하고 무엇보다도 목표가 뚜렷한 친구다. 박사학위동안 논문 많이 내고, 박사후연구를 하버드에서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교수가 되는 게 목표다. 남자친구도 맥길대학에서 박사학위 중이고 같이 하버드에 갈 계획이다. 나는 아직 박사후과정에 구체적 목표가 없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과 캐나다 유럽전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80%는 학위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런 점이 의아하게 생각되어 Ting에게 물었다. “Ting, 왜 다들 외국에서 공부하고 중국으로 돌아가? 캐나다에서 살면 종교도, 문화도, 정치도 다양하게 접하고 선택할 수 있고, 대통령도 직접 뽑을 수 있는데?” 라고 물었더니 Ting은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당차게 대답했다.

“중국은 나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일당체제만이 온 중국을 다스릴 수 있어. 대부분 중국인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나라에서 그만큼 대접해주기 때문이야. 내가 저명한 외국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아마 좋은 대학 교수직을 바로 줄 거야. 연구하라고 국가에서 돈도 충분히 대줄 거고. 내가 중국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잠시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일했는데 국가에서 생명공학연구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 붓고 있어. 외국에서 공부한 인재들도 모으고 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여기 온 거고, 많이 배운 다음 돌아갈 거야”.

그동안 Ting으로부터 들은 중국인의 삶은 나에겐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같은 SNS, 외국 뉴스나 잡지, 노래, 영화 등 모든 게 검열되고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인민당에 가입하지 않으면 직업을 가질 때도 어려움을 겪고 가입하는 순간 모든 종교적 활동도 철저히 감시한다고 한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 현대판 같았다. 다시 그 사회로 스스로 돌아간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는데, Ting의 대답을 듣고 중국이 정말 영리하고 무시무시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 연구소만 해도 30%가 중국인이다. 이중 80%가 중국으로 돌아가 중국의 생명과학연구에 힘을 쏟고 이에 국가까지 전폭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고 보상을 해준다면 앞으로 10년 뒤, 중국이 생명과학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 건지는 안 봐도 뻔하다. 생명과학분야에서 세계 톱을 차지하게 될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가끔 우리나라 기사 댓글에서 중국인들을 ‘짱깨 짱깨’하며 무시하곤 하는 걸 봤다. 외국에서는 상당수 white color 직업을 중국인들이 꿰차고 있다. 공부하는 대부분 중국인들은 굉장히 근면성실하고 목표가 뚜렷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다. Ting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알 안에 갇혀 있던 내가 깨어나는 것 같다. 앞으로 나를 더 깨워 줄 몬트리올의 나날들이 기대가 된다.

▲ 동네 공원에서 느긋한 휴식을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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