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영호남 예술교류]

7월 6일 토요일 오후 5시, 비가 비답게 내리고 있었다.

한국예술인총회 산하 경북연합회(회장, 이병국) 초대로 전북연합회(회장, 선기현) 회원들이 빗속을 뚫고 경주로 왔다. 우리 국토의 서(西)에서 동(東)으로 횡단한 만남이다. 지역감정의 대표적 극지(劇地)인 경상도와 전라도, 이 만남은 그래서 특별하다.

▲ 공연에 앞 서 양쪽 관계자들이 환담을 나누었다
▲ 전북 예총 산하 부문별 회장님들

한 민족에게 누가 만든 지역감정인가? 수십 년 간 공작정치에서 파생된 정략적 배제의 수단이었으며, 우리 서로 희생양일 뿐이다. 터무니없이 조작된 고약한 상황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의 몫이다. 1998년부터 해마다 번갈아 열리는 아름다운 예술행사로 20년째인 올해의 장르는 국악이었다. 국악이라면 누가 뭐래도 전라도가 단연 으뜸이다. 며칠간의 장마로 눅눅해진 마음이 어떤 기대로 부풀었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솔직히 국악공연을 직접 본 게 처음이다. 티브이에서 채널을 돌리다가 잠시 국악의 장면을 스치듯 보고 건너뛰었다. 교육체계부터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 우리의 것을 낯선 외국문화 대하듯 외면했던 것이다. 국악은 고리타분한 어르신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며, 서양음악과 심지어 랩까지 즐겨 들어왔던 터다.

가장 먼저 가야금 병창(박애숙 외 3명)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가야금의 선율이 힘차게 튕겨지는 동시에 절절한 창이 이어졌다. 소리가 몸속 어딘가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퇴화로 화석이 된 의식에 점차 균열이 생기고, 물이 스미듯 가락이 흡수되었다. 며칠째 내린 장대비로 기분이 침체된 탓인가, 생각도 했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가야금이 퉁겨질 때마다 마치 내 관절의 이음새가 툭툭 건드려지듯, 음색은 관절 사이의 연골처럼 파고들었다. 처음 경험한 생소함에 당황하며,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했다.

▲ 만파식적과 사풍정감: 대금 김경애, 춤 김도훈, 장단 박경우

이미 익숙한 것들에서 해제된 나의 청각이 대금연주에서 놀라운 세계로 초대되었다. 아아, 대금이란 이런 거구나, 그냥 좀 큼직한 대나무피리 정도로 알았던 무식함을 뚫고 거대한 시간들이 대금에서 뿜어져 나왔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수천의 시간 속, 알지 못할 애환이나 격동의 이야기 같은 거, 거친 파도도 잠재운다던 만파식적(萬波息笛)의 그 대금...... 잠시 후 꿈속인 양 춤꾼 김도훈님이 출연했다. 한복이 주는 곡선의 우아함과 대금의 선율에 얹히는 날렵한 춤사위, 다분히 몽환적인 분위기는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 것이 이다지, 사무치도록 아름다운데 왜 미처 몰랐을까? 나는 무얼 하며 살았나? 책만 읽고 쓰던 나에게 자책이 생겼다. 마치 바람에 떨어지는 백목련 꽃잎인 듯, 꽃을 희롱하는 하얀 나비인 듯, 사뿐거리는 희디흰 버선발의 버선코를 보면서 코끝이 시큼했다. 16문 하얀 무명버선을 신었던 나의 할머니, 가족 중 할머니의 버선을 신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유난했던 손녀사랑으로 그리운 할머니......대금과 춤과 북장단이 어우러지는 무대가 아련한 물기에 어렸다.

▲ 기방무: 김영숙, 최화순, 박민예, 김삼숙, 박인순, 조희순, 유형란, 이순님, 박옥자, 유계순

나의 잔잔한 슬픔을 달래듯 화려한 의상의 기방무가 전신에 색향을 두르며 무대를 장악했다. 기생이란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무용을 하는 아티스트다. 운명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사랑과 이별은 또 얼마나 애절했을까. 춤은 명랑하면서도 교태가 흘러 여성인 나도 마음이 울렁거렸는데 남성들의 속내까지 훔치는 건 당연할 것 같았다. 서양의 발레가 전반적 형상미와 이미지 전달에 있다면, 우리 춤은 내재된 심상이 연속적인 선과의 호환성을 띠는 일체를 보여주었다. 한복의 유연한 곡선미와 그 속에 감추어진 절제된 몸짓도 환상적 조합이었다.

▲ 고소라 명창님과 임경업 고수님

 

▲ 고소라 명창님은 의외로 젊고 아름답다(맨 앞 우측)

국악의 정수라 일컫는 판소리는 무대와 관객을 하나로 연출했다.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최고조의 절정이다. 구성지고 절절한 판소리에 관객은 추임새로 응대했다. 매스컴에서 스피커를 통해 듣던 판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음악성을 공연장에서 느꼈다. 성악가들의 탁월한 성량과 음색 등에 환호하던 나는 여느 소프라노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음악성의 경지에 감탄했다. 현대의 랩은 판소리에 비하면 옹알이나 장난처럼 느껴졌다. 판소리에 깃든 해학과 풍자는 요즘의 유머나 개그보다 훨씬 깊고 문학적이다. 심봉사만 눈 뜨는 게 아니라 캄캄했던 나의 눈과 귀도 함께 밝아졌다.

▲ 출연: 류계선, 장차형, 김현희 태평소: 박세홍

공연이 후반으로 넘어가며 진도북춤의 멋들어진 장단이 관객들의 어깨 위에 얹혔다. 모든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추임새와 어깨장단, 손뼉을 치며 함께했다. 클래식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공연되는 것과 달리 우리 음악은 관객과 주체가 어우러지는 합일의 문화였다. 외국에서도 흔한 북춤은 시대에 얽매이거나 전혀 고전적이지 않다. 현대의 어느 공연무대에 올려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을 북소리는 관객의 숨어있던 흥을 장단으로 꺼냈다. 마음도 덩달아 둥둥 들떴다. 우울증을 앓는 이가 있다면 꼭 북춤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잡다한 스트레스가 북소리에 납작하게 깨져 산산조각 달아날 신바람이었다.

▲ 주낙영 경주시장님과 김민숙 명창의 민요 한 자락

필자와 미리 인사를 나누었던 전북 명창 김민숙 원장의 민요는 공연장을 삽시에 장악했다. 민요란 말 그대로 가장 흔히 불리는 타령 같은 것으로 익숙하다. 시원시원한 가창력은 관객들을 무장해제 시켜 분위기는 잔칫집답게 흥겨웠다. 김원장은 한 때 경주시장(주낙영)님에게 소리를 전수했던 관계로 무대 아래 내려와 시장님과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여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던 광고 문구처럼 공연장 분위기가 여름날 붉은 해당화 향기에 물들 듯 뜨거워졌다.

 

▲ 판굿의 걸립패 출연: 송민재, 유병기, 김희준, 한석현, 이정환

끝으로 판굿의 걸립패가 나와 한바탕 신나게 놀며 말미의 여운을 남겼다. 힙합과도 유사한 상모돌리기의 묘기 등은 시대를 앞서간 우리의 기예다. 공연이 좀 더 길었으면, 처음으로 접한 라이브 국악무대가 아쉬웠다.

▲ 공연이 끝난 뒤 단체 인사
▲ 경북 국악협회 주영희 회장님과 전북 국악협회 김학곤 회장님의 선물교환식

친분이 두터워진 영호남 예술인들이 이제는 서로를 형, 아우로 부르며 가족 같은 분위기다. 특히 전북 익산시는 경주시와 자매결연 도시다. 경주문인협회과 익산문인협회도 자매문협으로 각별하다.

▲ 이병국 경북예총 회장님의 인사말
▲ 선기현 전북 예총회장님의 인사말

         <서로 준비해 온 선물교환으로 뒤풀이가 더욱 흥겨웠다>

▲ 뒤풀이에서 김민숙 원장님의 즉석 소리 한 자락
▲ 무대에서 내려오니 모두 앳되고 여릿하다
▲ 경주예총 김상용 회장님과 익산 예총 김영규 회장님은 '사돈'지간이라 한 자리에 앉았다

해마다 익산에서 열리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행사로 관계자들이 번갈아 오가며 정을 쌓았다. 경주와 익산은 서로를 '사돈'이라 칭하며 정을 나눈다. 올해도 선화공주로 선발된 경주의 이애령(20살)양이 혼례행사 참여로 익산에 갔다. 익산에서는 소문난 사랑꾼 서동왕자의 배필인 선화공주를 매년 직접 와서 고이 모셔간다. 선화공주의 상객을 자처한 경주시 관계자들도 익산까지 동행한다. 우리는 사돈 간이 맞다. 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통인가.

▲ 필자와 김민숙(대사습보존회)이사님

영·호남 교차 예술교류는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빚어내는 한바탕 훈훈한 잔치다. 벌써 내년 익산 가는 날이 기다려진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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