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졸업을 앞둔 딸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딸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딸은 캐나다에서 대학을 마쳤습니다.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같은 과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아주 똑똑하고, 공부도 재미있게 하던 친구라 전공을 살리는 길을 갈 줄 알았는데 군인을 택한 것에 조금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캐나다는 군인이 되면 집도 주고 봉급도 빵빵하게 줘.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아. 군인을 택한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어. 내 나라를 내가 지킨다는 그런 자부심이랄까? 자신의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국민들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있어. 유별나게 티를 내지도 않으면서...”

36개 OECD 국가의 삶의 질을 평가한 자료가 있습니다. 주거와 소득, 고용, 커뮤니티활동, 교육, 환경, 시민 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국민들이 직접 평가하는 겁니다. 캐나다는 안전(9.7), 삶의 만족도(9.4), 건강(9.3)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OECD 국가 중 5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애국심이란 것이 국민들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는 거겠지요.

반면 우리나라는 OECD 36개 국가 중 6.0의 점수로 하위권에 속하는 25위입니다. 특히 '일과 생활의 균형' 부문에서는 조사대상 36개국 가운데 34위라 합니다. 대부분 일만 하면서 산다고 보면 되겠지요. 또 '시민 참여' 부문에 포함된 정부 신뢰도 평가는 23%만이 정부를 믿는다 했답니다. 이러니 캐나다처럼 젊은이들 마음속에 애국심이 저절로 생기기를 주문하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 부실한 애국심을 높이 올리는 묘안을 생각했나봅니다. 오늘 자 한겨레 칼럼 ‘아는 게 힘이다’ 라는 글을 보니 정부가 ‘태극기 달기 운동 관련 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국기게양 일기와 소감문을 쓰게 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이 글을 보니 정말 머리를 딱 때리는 글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일장기 앞에서

이날은 대성전 기념일도 축제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받은 깃대에 국기를 한번 꽂아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땀까지 흘려가며 벽장 속에서 국기를 꺼내어 그 깃대에 매었다 탄탄한 깃대에 비해서는 벌써 장만한지 해가 겹친 국기의 깃폭은 낡아 보였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왜 뒷집에서 깃대를 주려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나는 거기에 맞추어야할 새로운 깃폭을 준비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던 것인가. 나는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

 

1944년 서정주가 쓴 글입니다. 참내.. 깃대에 꽂힌 국기를 방 아랫목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합장을 하고 있었다니.. 태극기도 아니고 일장기를 앞에 두고 없는 감동을 쥐어짜내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이밖에도 서정주는 <오장(伍長)>마쓰이 송가(頌歌)>를 비롯하여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부추기는 시와 글을 연달아 내놓습니다. 비록 3년의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 권력에 빌붙기 위해 자신의 문학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한 것이지요. 그리고 해방 후 친일에 대해 변명이랍시고 한 말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라고 했다 합니다.

서정주는 해방이후에도 권력지향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1947년에는 이승만 전기를 쓰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문교부 예술과장 자리를 꿰찹니다. 이후 유신독재에 달랑거리며 문학계의 거장으로 목에 힘을 주고 온갖 권력을 휘두르다가 한 번 더 민중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을 자행합니다. 자신의 빼어난 글 솜씨로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의 56회 생일에 헌시를 쓴 겁니다.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라고 찬양을 쥐어짜는 것도 모자라 '단군 이래 최고의 미소를 가진 대통령'이라 칭하고 일해라는 호도 진상했다지요.

떵떵거리던 서정주도 2000년 죽습니다. 미당 서정주가 살아 있다면 저 태극기 달기 운동 관련 법 개정이나 학생들에게 국기게양 일기와 소감문을 쓰게 하는 계획을 얼마나 칭송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자진해서 국기게양일기나 소감문을 썼을 지도 모릅니다. '일장기 앞에서'처럼 쥐어짠 감동으로 범벅이 된 세련된 '태극기 앞에서'를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애국심이란 저런 이벤트를 통해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도대체 누가 저런 발상을 했을까요? 요새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뭐라 부르는지 아세요? 바로 개한민국이라고 부른답니다. 개한민국에서는 애국심이 나오기 어렵지요. 우리 아이들이 오죽하면 개한민국으로 부를까, 오죽하면 나라를 구리다고 할까, 오죽하면 대한민국을 떠날 생각을 할까... 왜 그럴까 라고 생각을 해보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우리는 과연 가져볼 수 있을까요? 그런 기대를 갖고 살아도 될까요?

김미경 주주통신원

 

관련기사 : 한국인 '삶 만족도' OECD 36개국 중 25위로 하위권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379308

관련기사 : [이명수의 사람그물] 아는 게 힘이다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79285.html?_fr=mr1

참고 오장(伍長)>마쓰이 송가(頌歌) : 194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쓴 시로 자살 특공대 가미카제가 되어 죽은 조선인 청년 마쓰이 히데오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김미경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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