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七十二國 정의란 무엇인가?

제33화에서 영화 <시스터 액트Sister Act>를 '수녀는 부활Act하리라'라고 해석하였지만, 또 한 가지 '수녀Sister의 계율Act'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듯이, 교회의 모든 계율도 인간으로터 나와야 할 것이니, 그러한 인간본위의 메시지를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수녀 들로리스는 대중음악을 찬송가로 도입하여 훌륭하게 보여주었지 않았는가.

1990년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 <정오의 열정The Hot Spot>에서 '인간본위'라는 이슈를 한걸음 더 움직여보자.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작열하는 사막 위에 길게 뻗은 도로를 한 대의 승합자동차가 달린다. 자동차는 철로 건널목에서 멈추고 차에서 내린 해리 매덕스(돈 존슨 분)가 작은 도시로 들어선다. 사방을 둘러보던 해리는 도시 입구의 제법 큼직한 중고차매매상으로 들어가더니, 처음 본 손님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어 중고차 한 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다. 멋진 세일즈실력을 바라보던 사장은 즉석에서 해리를 판매원으로 고용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직장에서 해리는 자신의 직무에만 충실할 뿐 사장의 명령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동차 세일즈 외에 해리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업무는 청춘사업. 해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는 같은 직장에서 경리를 담당하는 20대 아가씨 글로리라 하퍼(제니퍼 코넬리 분).

글로리아의 청순한 아름다움에 호감을 갖고 있던 해리에게 또 다른 여인이 다가온다. 다름 아닌 노숙한 돌리(버지니아 매드슨 분)라는 이름의 사장의 젊은 부인.

이방인 남자 해리 매덕스는 어느 여인을 선택할 것인가? 

글로리아의 청순한 아름다움에 호감을 갖고 있던 해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글로리아가 밀린 자동차할부금을 수금하고자 서튼이라는 고객을 방문하러 나서자 해리가 따라 나선 것. 

그런데 서튼을 만난 글로리아의 표정에는 무언가 말못할 고민이 역력히 배어 있다. 필시 서튼에게 약점을 잡혀 전전긍긍하고 있을 글로리아에게 해리는 듬직한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글로리아의 마음은 점점 해리에게 기울어가고, 해리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 거친 키스를 퍼붓고는 곧 자신의 실수를 사과함으로써 '참을 수 없는 사랑'을 에둘러 표현한다.

도대체 서튼에게 볼모로 잡힌 글로리아의 고민은 무엇일까?

대답을 유보한 채 영화는 해리와 또 다른 여인 돌리Dolly와의 사랑(?)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글로리아가 청초하고도 순결한 이미지라면, 돌리는 대조적으로 뇌쇄적인 섹시미의 소유자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돌리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모처럼 만난 남자다운 남자를 노골적으로 유혹하여 자기 집으로 끌어들인다. 남자는 성에 굶주린 색마처럼 집요하게 덤벼드는 돌리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고 육체의 향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의 마음은 청순한 글로리아에게 향하고 있었으니, 밤에는 유부녀의 농익은 육체를 즐기고 낮에는 청순한 처녀를 사랑하는 이중의 사랑놀음을 이어나간다.

해리의 비즈니스가 단지 청춘사업만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라. 어떻게 돈을 벌어 이 마을을 지배하는 왕이 될 것인가? 그 동안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하던 해리는 마을의 은행직원들이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마을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은행직원들이 화재현장으로 출동할 것이니, 은행에는 늙은 지점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운 해리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벡화점에 불을 지르고 은행으로 달려가서 어렵지 않게 은행털이에 성공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유유히 화재현장으로 가서 타오르는 화염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어가서 미처 피신하지 못한 시민을 들쳐업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나온다.

은행을 털고 완벽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내었으니 해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으리라. 마지막으로 헤리는 연약한 여자를 괴롭히는 못된 남자 서튼을 죽임으로써 글로리아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 도시를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서튼이 움켜쥔 글로리아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 글로리아의 언니와 관련된 사연이다. 글로리아의 언니 아이린은 어느 여선생을 사랑하는 동성애자였는데, 그 사실을 아는 서튼의 지속적인 협박을 이기지 못하여 아이린은 자살하고, 이후 글로리아는 회사 돈을 횡령하여 서튼에게 상납해온 것이다.

해리는 서슴없이 서튼을 죽인다. 그러면 이제 글로리아의 손을 잡고 이 도시를 떠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돌리이다. 은행강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해리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돌리는 그 시각에 해리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하여 해리를 구해낸다. 그리고는 남편의 죽음을 유도한다. 그 다음에는 글로리아에게 해리에게 들어서 '회사돈 횡령'사실을 알았다고 거짓말하여 글로리아로 하여금 해리를 버리게 한다. 또한 해리에게는 자기를 버리면 은행강도와 서튼살해라는 두 사건을 까발리겠다고 협박한다.

화가 난 해리는 한 때 섹스파트너였던 돌리의 목을 조른다. 그러나 무슨 생각에서인지 곧 생각을 바꾸어 돌리의 목을 풀어준다. 죽음의 고비에서 풀려난 돌리는 남편을 죽게 만든 이야기를 고백하며 결혼해 달라고 청하자 해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돌리와 함께 길을 떠난다.

돌리의 목을 조르던 해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름이 아까울만큼 형편없는 영화라고 혹평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멜로물로서는 꽤나 볼만한 영화라고 한다. 그들은 필시 이 영화를 타락한 남녀의 빗나간 애정행각으로 보았으리라. 그게 아니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제32화의 '어우동'을 환기하시라. 어우동은 단지 섹스에 굶주린 팜므파탈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수단으로서 섹스라는 무기를 집어들었음을. 그렇다면 영화<정오의 열정>의 지배계급은 누구인가? 은행과 백화점, 그리고 중고자동차판매상이다. 그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의 구조를 변혁하기 위해서 해리 매덕스는 먼저 중고자동차판매상이라는 기업을 혁신한다. 사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업무중심의 회사로 바꿈으로써 말이다. 글로리아를 괴롭히는 남자 '서튼'을 죽인 것도 지배구조에 편승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서튼이 어떻게 지배구조에 편승하였느냐고? "동성애는 불결하다"라는 오래된 비인간적인 관념의 추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부녀 돌리는 어떤 인물인가? 글로리아는 어떤 인물인가?

유부녀 돌리는 남편의 귀여운 악세서리(소유물)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명목상 유부녀일 뿐 실제는 과부나 다름없으니 멋진 남자를 갈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고 하리라. 남편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고 멋진 남자를 얻고자 돌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반면 글로리아는 돌리의 거짓말을 그대로 맹신하여 사랑하는 남자를 걷어차버린다. 회사돈횡령(사실)을 말하였다는 이유로 말이다. 더구나 그 남자는 그녀를 옭아맨 사슬을 끊어내고자 살인자라는 오명까지 감수하지 않았는가. 관객들은 누구나 그녀의 이름 앞에 '청초하다' '청순하다' '순결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겠지만, 청순하고 순결한 것은 그녀의 이름(glory)과 옷에 불과하리라. 그렇다면 그녀가 왜 서튼에게 협박당하였는지 생각하라. '동성애자'라는 명예롭지 못한(not glory) 평판을 회피하려는 동기 때문이 아닌가. 사랑과 자유를 얻기 위하여 서방 죽인 요부(팜므파탈)라는 절대적 비난까지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돌리에 비하면 글로리아의 행위는 너무나 비겁하고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작가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지배계급에 굴복하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지배자를 죽이는 것이 정의인가? 살인이 죄악인가? 살인하지 않는 것이 죄악인가?

정의, 자유, 자아, 더 큰 자아entity, 다양성을 더불어 사유하며 삼국유사 '고조선-위만조선-마한-이부二府'에 이어지는 다섯 번째 이야기 '칠십이국'편을 보자.

'칠십이국七十二國'

通典云           ‘통전通典’은 이렇게 말하였다.

朝鮮之遺民       “조선을 버린[遺] 백성들[民]은

分              다양성[十]을 죽이는[七] 공작새나라[餘國]를 떨어뜨리며[分]

爲七十餘國       획일화[十]를 죽이는[七] 까마귀나라[餘國]를 만들었는데[爲],

皆地方百里       섬김[地]을 다양화[皆]하여 합일의 깃털[一白]을 처방하는 나라였다.”

後漢書云         ‘후한서後漢書’는 이렇게 말하였다.

西漢以朝鮮舊地   "한漢을 깃들임[西]으로써 조선은 친구[舊]의 섬김[地]을 깃들이고자

初置爲四郡      새 옷을 디자인[初]하고 교체[置]하며 4군을 사칭[爲]하였다.

後置二府        분리[二]를 외면[後]하면 부府를 교체[置]하느라

法令漸煩        군자[法]가 익사[漸]하고 군주[令]가 번민[煩]하며

分              꼬치구이[十]을 죽이고[七] 분리[八]하는 나라[國]를 분리[分]하여

爲七十八國      결합[十]을 죽이고[七] 배척[八]하는 나라[國]를 만들었으니[爲],

各萬戶          전갈들[萬]을 독립[各]시켜 유가[戶]를 콩가루[各]집안으로 만들었다.”

{馬韓在西有      {마한馬韓은 재물[有]에 깃듦[西]을 존중[在]하였으니

五十四小邑皆稱國 춤추는 결합자[五十]들이 小邑을 망라[四]하여 모두 나라를 칭稱하고,

辰韓在東有       진한辰韓은 주인[東]의 상생[有]을 지향[在]하였으니

十二小邑 稱國    결합자[十]들이 小邑을 짝짓기[二]하여 나라[國]를 연대[稱]하고,

卞韓在南有       변한卞韓은 풍류[南]의 혁신[有]을 추구[在]하였으니

十二小邑 各稱國} 결합자[十]가 小邑을 차별화[二]하여 나라를 다양화[各]하며 연대했다.}

'칠십이국七十二國'은 '칠십七十하는 두 나라'라는 뜻으로 '이부二府'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반복'이 아니라 다각도의 스펙트럼이라는 점을 유의하시라. 부처님이 십방세계를 바라보듯이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을 조명하는 것이 철학이니까.

디테일한 설명은 생략한다. 지금 우리는 고조선 위만조선 멸망의 역사에서 새로운 유화문명의 나라 '고구려'를 찾아가는 중이다. 다음 몇 편에서 낙랑국 대방 부여 등을 두루 살펴보고 드디어 고구려를 만날 것이니, 그 사이에서 일연은 위만조선이 멸망한 다음에도 우리 백성들은 유화인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꾸준히 부활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