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마한3 색즉시공 vs 색즉시공

"의학 법률 경제 엔지니어링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식이지만, 詩와 아름다움,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이란 말이 있다"

제31화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선생의 수업은 '터무니없는 이분법'이라고 지적하였다. 키팅선생이 몰랐던 것은 무엇일까?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색色은 공空과 따로국밥이 아니고 공空은 색色과 따로국밥이 아니니, 색色은 소멸[卽]하며 공空을 결정[是]하고 공空은 소멸[卽]하며 색色을 결정[是]한다.(칼 마르크스는 공空이 색色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색色이 공空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는 공空이 목적이지만, 공즉시색空卽是色에서는 색色이 목적이다.

불가의 오래된 화두를 생각하라.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제1화에서 '기자는 조선으로 가서 義와 禮를 가르쳐서 '중화는 아름답다'라는 의식[空]을 조작하지 않았던가? 달마 역시 어떤 의식[空]을 만들어내고자 동쪽으로 갔을 것이니, 동쪽으로 간 까닭은 '색즉시공色卽是空'하기 위해서다. 왜 색즉시공色卽是空을 하는가? 공즉시색空卽是色하기 위해서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현실을 살펴보자. 우선 떠오르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햄릿> <리어왕> <오셀로> <멕베스>는 모두 '나쁜 대전제[空]'로 인간을 심판하는 비극인 동시에 그 나쁜 대전제[空]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10화에서 보았지만 오셀로는 '순결은 여자의 의무'라는 왜곡된 의식(空)에 사로잡혀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色)했으니, 그것이 공즉시색이다. 그 이면에서 악당 이아고가 왜곡된 소문(소전제)을 가공해내었으니, 그것은 또한 왜곡된 대전제(空)를 창조하는 색즉시공의 '방식'이리라. 리어왕은 '왕(또는 영주)의 땅'이라는 관념(空)에서 세 딸에게 왕국을 분할상속하였으니, 땅의 주인이 된 딸들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닌 아버지를 눈보라 몰아치는 황야로 추방한다. 그 비극적인 공즉시색을 광대는 Nothing(無=空)이 왕을 내쫓았다고 설명한다. 일찍이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한탄했던 엔클로져enclosure의 역사를, 셰익스피어는 Nothing(無=空)이 잡아먹었다고 재정의 한 것이다. <리어왕>의 색즉시공은 무엇일까? <햄릿>의 색즉시공은 무엇이고 공즉시색은 무엇인가? 등등의 질문들을 유보하고, 우리나라 고전소설 <춘향전>을 돌아다보자.

남원 광한루,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그네를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남녀는 열렬한 사랑에 빠지고, 몽룡의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나자 기생과 결혼할 수 없었던 몽룡은 '다시 돌아오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다. 후임사또가 수청을 들라고 온갖 고문을 가하지만, 춘향은 몽룡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거부한다. 이러한 이야기에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은 어디에 있을까? 춘향으로 하여금 몽룡(선비)을 동경하게 만들고, 그럼에도 결혼을 불허하고, 절개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금기하는 것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춘향은 온갖 고초를 이겨내어 세상사람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절개는 아름답다'라는 空을 거듭났으니, 그것이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절개(또는 선비)는 아름답다'라는 중화주의(空)가 춘향을 포획하였고, 포획된 춘향은 추상같은 절개를 실천함으로써 중화를 거듭났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이와 같은 (절개의)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연암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변씨에게 빌린 돈으로 '과일과 말총(色)'을 매점매석한다. 제사와 의관이라는 유교문화(色)를 박살냄으로써 중화주의(空)를 뿌리뽑겠다는 취지다. <허생전>이 이성적인 혁명전략이라면, 보다 직설적으로 민중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허균의 <홍길동전>이다. 홍길동은 양반집 담장을 넘어 '빼앗긴 재물'을 백성들에게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착취당한 성sex은 어찌할 것인가? 중화라는 봉건제가 강요하는 '성sex의 억압(내지 착취)'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지식인은 허균의 여동생 '난설헌'이다. 그러나 난설헌의 詩를 읽으려면 다시 어려운 한자에 부딪칠 것이니, 보다 말초적인 이야기 조선 제일의 팜므파탈(femmefatale) '어우동於于同'의 삶을 살펴보자.

1985년 영화 <어우동>. 조선 성종(재위 1469~1494)연간, 사대부가의 딸 어우동(이보미 분)은 미천한 사내를 사랑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왕실의 남자 태산군에게 시집간다. 그러나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을 당하던 여인은 유교적 질서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시집을 뛰쳐나와 강물에 몸을 던진다. 향지라는 여인이 어우동을 구출하고, 이를 계기로 기생이 된 어우동은 자신의 육체를 미끼로 삼아 유력한 사대부들을 성의 노예로 만들어나간다. 유교질서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세력-태산군과 어우동의 아버지 등-은 갈매(안성기 분)라는 자객을 고용하여 어우동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어우동을 미행하며 관찰하던 갈매는 어느덧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남녀는 어느 동굴에서 서로 칼로 찔러 동반자살한다.

영화 포스터는 '색정녀인가? 해방녀인가?'라고 묻지만, 아마도 관객들은 색정만 느낄 뿐 해방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았으리라.

 

30년 후 영화 <어우동, 주인 없는 꽃>에서 혜인(어우동)은 왕실의 남자 이동(태강수)의 적극적인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한다. 그러나 남편이 된 이동은 밤마다 기방에서 다른 여인을 품었으니, 혜인은 긴긴 밤을 홀로 지새운다. 어느 날 혜인을 잊지 못하는 옛 연인(역관 ‘무공’)이 있음을 알게 이동은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혜인이 보는 앞에서 기생과 정사를 치른다. 남편의 진면목을 깨달은 혜인은 복수를 결심하고 스스로 ‘어우동於于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변신한다. 도성의 숱한 사대부들이 그녀의 몸을 탐하고자 매일 밤 줄지어 서고, 그 소문은 왕실에까지 알려져 성종임금 또한 어우동과의 은밀한 만남을 욕망한다. …

1985년 영화가 '해방녀'를 조명하는 데 실패하였다면, 2015년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어우동의 실체를 더듬어보자.

<성종실록>의 어우동 관련 기록.

성종 11년(1480년) 7월 9일, 의금부에서 아뢰기를, “어을우동於乙宇同이 태강수泰江守(이동)의 아내였을 때 방산수方山守 이난李瀾과 수산수守山守 이기李驥(성종 및 태강수와 8촌인 왕족)가 어을우동과 간통한 죄는 장 1백 대, 징역[徒] 3년에 고신告身(관직 임명장)을 모조리 박탈하는 중죄에 해당합니다.”하자, 왕은 명하여 銀을 대신 바치게 하고, 고신을 거두고서 먼 지방에 부처付處하게 하였다.

한 달 뒤인 8월 5일, 사헌부 대사헌 정괄鄭佸 등이 차자箚子(격식을 갖추지 않은 상소문)를 올렸다. 

“신 등이 생각건대, 어을우동이 사족士族의 부녀로서 귀천貴賤과 친소親疏를 따지지 않고 간통을 저질렀으니, 명예를 훼손하고 더럽힌 것이 막심합니다. 마땅히 사통한 자를 끝까지 추문하여 엄하게 다스려야 하겠는데, 의금부에서 방산수 이난의 초사招辭(범죄진술서)에 의거하여 어유소ㆍ노공필ㆍ김세적ㆍ김칭ㆍ김휘ㆍ정숙지를 국문하도록 청하였는데, 어유소ㆍ노공필ㆍ김세적은 완전히 석방하여 신문하지 않고, 김칭ㆍ김휘ㆍ정숙지 등은 다만 한 차례 형신刑訊하고 석방하였으니, 김칭 등이 스스로 죄의 중함을 아는데, 어찌 한 차례 형신으로 죄를 실토하겠습니까? 신 등이 의심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어 사간원에서도 어유소ㆍ노공필ㆍ김세적의 죄를 청하였으나, 역시 무시였다. 반면 어우동에 대해서는 의금부에서 보고한 지 3개월 만인 1480년 10월 18일 “어을우동은 승문원 지사 박윤창朴允昌의 딸로서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에게 시집가서 행실을 자못 삼가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교형絞刑(목을 매는 벌)에 처하였다.

또한 어우동의 오빠 박성근(?~ 1488년)에 관한 '실록'은 이러하다.

"박성근이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 정씨鄭氏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어미가 잠잘 때 발이 넷인 것을 보았다.’ 하였다. 이후 어머니 정씨는 성근을 미워하여 밤이 되면 반드시 성근을 궤짝 속에 감금시켰으며, 의복이나 음식은 비복의 소생과 다름이 없었다. 장성한 후 토지와 노비를 적게 물려주자 성근은 그것을 원망하더니, 종형從兄(사촌형)집의 노비 내은산內隱山·내은동內隱同과 공모하고는 정씨(어머니)가 조카 정소鄭韶의 집에 가 있을 때 정씨의 노비 왕석往石을 내은동·내은산과 함께 강도로 만들어 정씨를 살해하게 하였다. 그는 의금부에 체포되어 형문을 받던 중 옥사하였다. 이후 함께 체포된 누군가 박성근이 정소鄭韶와 함께 꾀했다고 진술하였다."

당대 대학자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의 기록.

어우동於于同은 지승문知承文(승문원 관리) 박 선생의 딸이다. 그녀는 집에 돈이 많고 자색이 있었으나, 성품이 방탕하고 바르지 못하여 종실인 태강수泰江守의 아내가 된 뒤에도 군수가 막지 못하였다. 어느 날 나이 젊고 훤칠한 장인匠人을 불러 은그릇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를 기화로 매일 남편이 나가고 나면 계집종의 옷을 입고 장인 옆에 앉아서 그릇 만드는 정교한 솜씨를 칭찬하더니, 드디어 내실로 끌어들여 날마다 음탕한 짓을 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몰래 숨기곤 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세한 사정을 알고 마침내 어우동을 내쫓아 버렸다. 그 여자는 이로부터 음탕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그의 계집종 역시 예뻐서 저녁마다 옷을 단장하고 거리에 나가 예쁜 소년을 끌어들여 여주인의 방에 들여주고, 저는 또 다른 소년을 끌어들여 함께 동침하였다. 꽃이 피고 달이 밝은 저녁엔 정욕을 참지 못해 둘이서 도성 안을 돌아다니다가 사람에게 끌리게 되면, 제 집에서는 어디 갔는지도 몰랐으며 새벽이 되어야 돌아왔다. 두 여자는 길가에 집을 얻어서 오가는 사람을 점찍었는데 계집종이 “모某는 나이가 젊고 모는 코가 커서 주인께 바칠 만합니다” 하면 주인은 “모는 내가 맡고 모는 네게 주리라” 하며 희롱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는 또 방산수와 사통하였는데, 군수는 나이가 젊고 호탕하여 시를 지을 줄 알았으므로, 그녀가 이를 사랑하여 자기 집에 맞아들여 부부처럼 지내었다. ……

<성종실록>은 방산수와 수산수(성종 및 태강수의 8촌)가 어우동이 태강수의 아내였을 때 간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용재총화>는 방산수와의 간통은 나중의 일이며, 은장구를 만드는 장인匠人과의 간통이 이혼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태강수가 장인匠人을 어찌하였다는 기록은 왜 없을까? 이혼하기 전에 수산수(성종 및 태강수의 8촌)와 간통한 것이 사실이라면, 수산수가 접근하기 쉬운 가족으로서 어우동을 겁탈하였다고 보아야 하리라. 성종임금은 태강수를 처벌하는 대신 銀을 징수하였으니, 그 銀은 곧 백성들의 혈세가 아닌가. 영화 <어우동>은 어우동의 아버지 박윤창이 딸을 제거하려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오빠 박성근까지 고문 당하여 죽었다는 점, 이혼 후에 돈이 없었을 어우동이 예쁜 몸종과 함께 화려하게 치장하면서 남자들을 홀렸다는 점에 비추어, 아버지는 (무고한)딸을 후원하였으리라.

왕족에게 짓밟힌 어우동이 억울하게 죽어가던 시기, 성종은 왕비 윤씨(연산군의 생모)를 폐위(1479년)하고 사약을 하사(1482년)한다. 또한 몇 년 전인 1474년 조선백성을 천년만년 짓밟을 공작새낙원의 6법전서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한 마당이다.

광해군 때 <어우야담於于野談>을 쓴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장자莊子」‘천지天地’편에 나오는 구절(於于以蓋衆)을 따서 ‘어우당於于堂’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장자莊子」는 재물소망(蓋衆)을 능욕(於)하여 모든 재물(蓋衆)을 착취(于)하는 유가의 선비들(子貢)을 꾸짖었으니, '어우동於于同'은 공작새주식회사(주역 제13天火同人)를 능욕[於]하며 합일[同]을 회복[于]하겠다는 열혈투사의 이름이리라.

그러니 어우동은 누구인가?

성종의 색즉시공에 색즉시공으로 맞섰던 몸짱 혁명가다. 성종임금의 색즉시공이 '중화는 아름답다'라는 空 만들기라면, 어우동의 색즉시공은 '자유와 상생(합일)은 아름답다'라는 空을 지향한다. '색즉시공 vs 색즉시공'이라는 프레임에서 유화부인의 후예 어우동은 그토록 처절하게 몸을 던져 중화에 저항하였으니, 이제 일연이 그려나가는 '색즉시공 vs 색즉시공'의 역사를 보자.

 

四夷九夷九韓穢貊 일탈을 포획[四夷]하여 재물을 만끽[九夷]하면 九韓이 맥貊을 더럽히매

禮職方氏        <주례>에 직방씨가

掌四夷九貊者     죽음을 망라[四夷]하여 해태[豸]깃털[百]의 부활[九]을 관장하였으니

東夷之種         동이가 파종[種]하면 주인[東]이 동족을 죽임[夷之種]으로써

卽九夷也         오랑캐[夷]를 죽이고[卽] 죽음[夷 중화]을 부활[九]하였다.

(이상 최치원의 말. 제31화의 해석을 번복하였다는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三國史云          ‘삼국사三國史’는 말하였다.

溟州 古穢國       “명주溟州는 예국穢國을 고풍[古]스럽게 하는데,

野人耕田 得穢王印 야인野人이 밭을 갈아 예왕穢王에게 도장을 부여[得]하여

獻之              (재물을)헌납하게 하였다.

又春州 古牛首州   또 춘주는 소의 머리[牛首 새 성지]를 고풍[古]스럽게 하는 고을인데

古貊國            맥국貊國을 진부화[古=첨단화]하였다”

又或云今朔州是貊國 또 혹자는 “삭주朔州를 첨단화[今]해야 맥국貊國을 통제[是]하리니

或平壤城爲貊國     평양성을 업그레이드[或]하면 맥국貊國을 부려먹으리라[爲]”하였다.

淮南子注云         ‘회남자淮南子’주注는 말하였다.

東方之夷九種       “주인을 죽이고[東之夷] 죽음[夷]을 처방하면 성인[九]이 파종한다”

論語正義云         ‘논어정의論語正義’는 말하였다.

九夷者 一玄菟 二樂浪 “재물[夷]"을 만끽[九]하면, 현도를 유정유일하여 낙랑을 분리하라.

三高麗 四滿飾      다양화[三]하는 고려가 '충족하는 무늬[滿飾]'를 망라[四]하여

五鳧臾 六素家      부유鳧臾(부역자)를 춤추게[五] 하고, 소가素家를 저물게 하고

七東屠 八倭人      동쪽이웃의 도축(東屠)을 단절하고, 왜인倭人(모방자)을 떨어뜨려

九天鄙             천비天鄙(하늘의 멸시)를 부활[九]하리라”

海東安弘記云       ‘해동안홍기海東安弘紀’는 말하였다.

九韓者 一日本      “한韓을 부활[九]하면, 황제의 발판[日本]을 유정유일[一]하라.

二中華 三吳越      분리[二]된 중中(죽은 충신)이 꽃을 피워[華] 오월을 계승[三]하여 

四乇羅 五鷹遊 六靺鞨 탁라를 포획하고 응유鷹遊를 춤추게 하여 말갈을 저물게 하면,

七丹國 八女眞       일편단심[丹]을 죽인[七] 나랏님이 여진을 떨어뜨리리니,

九穢貊              성인[九]이 맥貊을 진부화[穢 = 첨단화]하리라”

 

제30화(마한1) 제31화(마한2)를 돌이켜보자. 일연은 '위지魏志'를 인용하여 '漢의 우상 vs 韓의 우상'이라는 프레임에서 '마한馬韓'을 바라보고, 견훤과 최치원의 말을 인용하여 ‘중화의 神 vs 유화의 申’이라는 프레임에서 삼국의 뿌리를 조명한다. 유화문명의 申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첫번째는 백성본위(백성으로부터의 申)이며, 두번째는 '연대'이다. 연대는 다양한 인간들의 결합이라는 상생의 원리에서 '고구려-백제-신라'의 연대로 나아간다.

본화(마한3)는 중화의 방해공작(고대의 동북공정)이다. 우리가 자유의 씨를 뿌리며 해방된 인간들의 결합(연대)을 이루어나갈 때, 그들은 충신 효자 열녀들의 죽음으로 중화의 씨를 뿌린다. <삼국사> <회남자> <논어정의> <해동안홍기> 등 중화의 경전들은 중화의 후예들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미션-죽음과 부활-을 계시한다. 죽음을 우상화하는 '중화의 색즉시공色卽是空'으로 자유와 연대를 추구하는 '유화인들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을 무력화하라고.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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