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그친 후,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 아래 내리쬐는 햇살을 나는 좋아한다.

강렬한 태양열은 계절의 변곡점임을 알리는 증표다. 강렬함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서서히 하강하면서 겨울로 수렴해가는, 그러나 아직 겨울을 직감하기 이른 순간이다. 그 태양 아래서 미래를 망각한 채 우린 생명감을 만끽할 수 있으니.

 

최고의 영양 상태로 뭇 생명들도 한껏 싱그럽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겨울을 위해 저장하고 열매를 남기는 일에 열중하는 중이다. ‘맛있는 과일로 종족을 번식시킬까?’ ‘바람에 씨앗을 날릴까?’ 그 계절을 나는 즐기고 있다. 자연의 사이클을 정복한 여유로움이다. 생존의 조건을 극복하고 자연을 탐욕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인간만의 여유.

 

순응하는 생명들과 달리 인간은 그래서 자연의 변화에 둔감해진다.

문학과 예술은 자연과 멀어져 간 고독감을 이겨내기 위한 추상화된 감성의 결정체다. 체험하지 못한 생소한 삶을 ‘이국적’이라는 감성으로 표현하듯 인간이 향유하는 예술과 문학도 그러하다. 자연과 일체 된 섬세한 감성인 듯하지만 실은 자연과 멀어져 간 외로움이 불러낸 또 다른, 인간만의 감성이다. 외로움조차 누리지 못하는 비극의 무게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는 지점이다.

 

가공되지 않은 천연을 생존 수단으로 삼지 못하는데서 오는 갈망이다.

사색을 통해서만 보이는 자연 형상임에도 그토록 자연을 열망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끝없이 밀어내고도 결국 그 자연성(自然性)의 모태가 아니고선 태생이 불가능한 생명의 한계 때문인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밀어내고도 인간은 생명일 수 있을까.

 

이 여름의 풍성함이 나는 좋다.

고요함 속에서 나뭇잎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는 것도 좋다. 간간히 알 수 없는 귓전의 새소리가 전염되듯 미소로 번진다. 스르르 나뭇잎 스치는 소리. 살랑대는 잎들. 뒷덜미를 스치는 바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누구인지 몰라서 좋다. 그냥 그 풍성함 속에 앉아 있어 편안하고 고요하다.

 

►사진출처 : Pixabay

객원편집위원  김혜성 객원편집위원 cherljuk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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