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시부문 입선작

 

▲ 독도

 

 독도 통신 3

                                         이화리 (본명, 이미진)

 

 

1. 물속의 물집에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 사신다는

하늘 아래 첫, 동해의 독도

어르신의 방을 꽉 채운 건 사서삼경 대신

사람에게 이로운 겹겹 어보(漁寶)들

천성의 음란함을 다스리지 못한 물고기들

허구한 날 꼬리를 쳐

바다는 밤낮 퍼런 면상인데

그나마 사랑채 어르신의 헛기침에

명태는 명태알을 낳고, 오징어는 오징어알을 낳고, 꽁치는 꽁치알을 낳는

그 정도의 기본은 갖추었다 들었습니다.

어르신의 연세가 삼백만 살인지 오백만 살인지 손꼽아 세지 못한 건

새 것에만 눈이 먼 탓이겠지요.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어르신께 여쭙고 싶은 말씀은

화산재 그득한 어르신 댁 아궁이에 아직 불씨가 살아있다면

무기징역도 과분한 남북(南北)의 무기(武器)들

장작 패듯 흠씬 두들겨 패서

어르신 집 뒤란이나 처마아래 넘치도록 쌓아

해마다 겨울 걱정은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어르신이 먼저 뜨끈한 아랫목에 드시면

우리들, 한기(寒氣) 가신 세상에 등을 붙여

긴 겨울밤 오순도순

전쟁의 추억 대신 유라시아 열차여행 이야기나 나누다가

명태알은 명태를 닮고, 오징어알은 오징어를 닮고, 꽁치알은 꽁치를 꼭 빼닮듯

동방예의지국, 어르신 닮은 아이들을 낳겠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 용오름

독도해산에 태어나신 동방의 첫 빛

어르신은 아직 성성하시다 들었습니다.

대지가 낳은 불은 소멸의 마지막 탄생이며,

이 땅의 가장 신성한 정령(精靈)이시니.

 

2. 파랑주의보의 댄디블루

동해, 제 이름을 꽉 베어 문 성난 댄디블루를 봅니다.

천만 번 물어도 일본해 아닌, 동해라며

서늘한 이마에 새겨진 청람색 주름살

동해의 깊은 짜증이 보이나요?

목마른 별들의 실뿌리가 품은 독도

국제영토분쟁 법정이 열리면 증인석에

처녀, 사자, 목동, 독수리, 백조, 거문고자리들이

다투어 앉겠다는 전갈은 사실입니다.

투명한 나이테의 가장자리 수평선에서부터

거울의 뒷면 같은 개펄도 없이

수심까지 속속들이 동해 메아리

호시탐탐에 맞서는

파랑주의보의 깔깔한 악보

검푸른 댄디블루의 웅장한 발성에

8천만 개 음표를 건지는 질긴 그물

동해는 남(南)도 북(北)도 아닌

블루칼라 뱃사람을 유독 사랑한다고 들었습니다.

 

3. 붉은 우체통

사라진

조선호랑이 같은 시간이었어요.

잃었던 조선에 분단이 와

붉그락, 푸르락 불콰한 지도(地圖)

일본에 절대로 없는 호랑이를 보양식으로 즐겼던

풍신수길(豊臣秀吉)

조선을 먹고 조선호랑이를 먹어서 기뻤던

침략의 피,

1921년 경주 대덕산의 마지막 조선호랑이는 실화일까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소문이기를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기에

잊지 못할 그 현란한 무늬 동해

아침 첫 금빛햇살

백두대간의 등뼈를 감싸며 당당히 펼쳐져

사무치는 포효 들리나요?

날이 갈수록 멀어진 백두와 한라의 안부를 묻느라

여든 아홉 통의 봉함엽서가 된 독도

한글을 일어로 번역할 순 있지만 독도가 품은 글

지우개 같은 거짓말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 막,

눈에 불을 켠 조선호랑이의 단단한 등뼈가 곧추서고

꿈에서 깬 통일이 이부자리를 박차면

분단 너머, 저 붉은 우체통도 열릴 것입니다.

두고두고 읽을 화해의 봉함엽서

우표도 상표도 없이 맨발로 달려 나오는 우리글

밤 세워 쓴 나의 답장은 동쪽 창가에

국기(國旗) 대신 걸어두겠어요.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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