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진 산문] 내 안의 독도

- 제8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산문부문 입선작 이미진 주주통신원l승인2018.07.25l수정2018.07.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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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내 안의 독도

                                            이화리(본명, 이미진)

오래 쓴 톱니가 마모되듯 모든 게 헐거워집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비워지는 일입니다. 민첩했던 행동이 느슨해져서 며칠 전엔 유리병이 떨어지는 걸 번히 보면서도 얼른 집지 못해 깨트렸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눈과 귀의 신경들도 무디어져 어두워질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가벼워진 것이 입 속입니다. 20년 전부터 풍치가 때 이른 바람으로 왔습니다.

세 군데 법원에 돈 문제로 고소를 해놓고 오가는 중이었습니다. 너무 극심한 통증에 불법주차 딱지를 각오하고 낯선 도시의 치과에 들어간 이후 근년까지, 다섯 개의 어금니를 버렸습니다. 죽어도 내 것인 치아발치를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온갖 약을 먹어가며 치통을 견뎠습니다. 이미 바람 든 무가 된 잇몸은 이를 포기했지만 미련한 나는 악착스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다 잃고 나자 더 이상 욕망의 바람이었던 통풍도 없습니다.

억겁의 시간 속에서 나는 들에 지천인 한 톨 풀씨거나, 바다에 순식간 반짝이는 한 방울 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필요악이라는 돈이 늘 문제입니다. 헐렁해진 입 속만큼 마음이 비워지는 일은 스스로 대견합니다. “내 것, 내 돈”이라 여겼던 집착은 바람 같은 것이어서 오고 갈 뿐입니다. 끈질긴 증오가 깊었던 애먼 그 자리에 “애초 그 무엇도, 내 것 아님”이라는 자각이 들어찼습니다. 맘은 느긋해졌지만 음식섭취와 소화기능장애를 고려해야 합니다. 잇몸에 쇠붙이를 박고 인공치아를 심는 일, 항생제 부작용을 겪는 나는 참 오래 망설이다 결심을 했습니다. 여러 조언을 받아 선택한 치과의사는 다행히 믿음이 갔습니다.

나의 입속을 찍은 엑스선 사진이 컴퓨터에 나타난 의자에 앉았습니다. 치과의사는 늘 분주하고, 명의일수록 의자는 즐비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급함도 사라져 기다리는 시간도 휴식으로 느낍니다. 윗 어금니 두 개가 사라진 공간은 검은 밤바다 같았습니다. 달 밝은 날의 파도처럼 희끗희끗한 결도 보였습니다. 그 밤물결을 지나 저만치에 하얀 섬 하나가 보였습니다. 저기 독도처럼 있는 저건 뭔가요? 마침 자리에 앉는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함몰 사랑니라고 했습니다. 왜 저다지 멀리 떨어져 있냐고 물으니 간혹 그럴 수 있답니다. 이후 인터넷에서 함몰 사랑니에 관한 자료들을 보며 발치를 문의했으나 잇몸과 너무 멀리 떨어져 발치불가라고 했습니다. 그 섬, 육지에서 먼 독도처럼 나의 사랑니는 죽는 날까지 함께 할 내 것입니다. 보통의 치아야 인공치아로 바뀔 수 있지만 내 살 속에 든 사랑니는 교체될 수 없는 국적의 독도가 분명합니다.

옥신각신 다투어 사는 치열에서 벗어나 순결히 흰빛을 발하는 저 물체, 내 것임에도 나만 몰랐던 실체였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사랑니가 되지 못한 사랑니의 정체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사랑니는 대게 사랑을 할 나이에 출현합니다. 맞습니다. 사랑다운 사랑을 못 해본 탓에 사랑니가 오다가 걸음을 딱 멈출 수도 있습니다. 어설픈 이별에 다시는 사랑을 않겠다던 허튼 맹세의 배신 때문에 사랑니가 먼저 무릎을 접을 수 있습니다. 아득한 날들의 별의별 추억을 더듬으며 사랑니가 숨은 까닭을 유추했습니다.

거울을 볼 때, 세수를 할 때, 음식을 먹을 때도 홀로 우두커니 빛나는 사랑니가 마치 독도처럼 연상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토이건만 쌀 한 톨 생산하지 않은 독도처럼, 숨은 사랑니는 치아이건만 쌀 한 톨 씹어보지 않은 하릴없는 섬입니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강퍅해서 숱하게 뱉어낸 욕 한 점 묻지 않은 순박한 섬입니다. 악의든 선의든 거짓말의 침 한 번 바르지 않은 정직한 섬입니다. 3초마다 한 명씩 질병과 아사로 죽는 제3세계인의 죽음 앞에 식탐의 맛을 모르는 착한 섬입니다. 다른 어금니들이 돈독 오른 풍치에 흔들릴 때, 오로지 멀리서 맑고 낮게 살라는 순수의 섬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모르던 내가 온갖 욕심으로 치욕스러울 때 눈 감고 기도처럼 고요한 섬입니다.

독도 역시 우리에게 의식주 그 무엇을 주지 않는 반면, 자신을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다만 내 사랑니처럼 그냥 거기 영토의 일부로 머무를 뿐입니다. 가만있으니 누군가는 자기들 꺼라 우깁니다. 내 살 속의 사랑니를 누가 자기 꺼라 우기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한참 웃고 맙니다. 그건 어처구니의 얼토당토않은 떼쓰기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건 89개 크고 작은 화산섬 용암의 독도입니다. 이런 단순수치로 표현하기에 독도는 너무나 깊고 무겁습니다. 250만 년에서 460만 년 전 쯤 어느 날 땅이 몸을 열었고, 뜨거운 선혈을 적신 황토치맛자락 사이에서 독도는 태어났습니다. 물속에 잠긴 독도의 바닥은 25km, 정상부의 폭은 13km입니다. 해수면 아래 해저 2000미터에 살며 마치 조산소를 연상하게 하는 지명은 '독도해산'입니다.

울릉군 도동 1번지 13에는 수백만 년부터 아직 가슴 뜨거운 독도가 삽니다. 고열에 찬 독도에게 바다는 자장가처럼 스미었습니다. 이후 적정 체온으로 잘 자고 잘 깨어나는 독도는 동방에 세워진 고조선이 어미의 이름임을 알아 첫 옹알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독도가 자라는 동안, 사람이기 이전의 동물성을 다스리지 못해 사람 사는 세상은 늘 소란스러웠습니다. 어른이 되어 육지를 향한 독도의 까치발에 오래 푸른 멍이 들고, 밤바다가 갈아놓은 먹물로 아침이면 빛나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할 말이 하도 많아 온 종일 펼쳐지는 두루마리 바다였습니다. 파도와 파도는 서로 풀어주어 매듭 없는 용서의 글입니다. 심사가 고약한 이웃에 유린당한 모국의 나날 동안, 읽을 이 없는 허무한 글씨를 실은 파도도 길을 잃었습니다.

울퉁불퉁 자갈길 같은 독도의 손가락에는 멍색의 진물이 흐르고, 투명한 물방울들이 위로의 눈물을 모아 연고처럼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미의 전신을 관통하던 총소리, 어미의 살갗이 터지던 폭탄 투여에 독도는 아버지 같은 하늘을 향해 목청껏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늘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죄 없는 죄, 호명할 수 없는 별자리들이 늘어가고, 졸던 은하조차 부르르 몸을 떨며 자리를 내어주던 날들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은하에 이르지 못한 어린 별들을 위해 독도는 제 몸의 모서리를 깎기 시작했습니다. 깎인 자리마다 절명한 빛들이 동그랗게 방울방울 내려와 쉬었습니다. 말도 글도 빛도 제 자리에 앉고 싶은 모든 것에게 직선은 날카롭고 서로에게 아픔이었습니다.

갈라진 땅, 맨발의 어미 눈이 가려지고, 귀가 먹은 채, 허리가 가시철조망으로 휘감길 때 독도는 또박또박 무죄증명의 편지를 무수히 썼습니다. 남과 북, 어미의 주소는 어디일까요? 수취인 불명의 봉투를 본 힘 센 자들이 매번 우표를 떼어버렸습니다. 내일 또 내일, 쓰고 또 쓰느라 독도의 손가락 굳은 문혹과 불거진 핏대 위에 밤이면 별들이 글썽이며 내려앉았습니다. 70여 년, 허방 한 번 짚은 적 없는 독도의 오체투지 덕분일까요? 오래 전 할 말 다해 알몸이 된 파도가 길을 낸 써래질 덕분일까요?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 은하, 그 박하향기 환한 묵언을 누군가 읽은 것일까요?

올해는 녹 쓴 철조망의 가시가 부서집니다. 독도의 용천(湧泉)을 먹고 자란 어린 별들도 은하를 향해 목을 뽑습니다. 영원히 사는 은하, 빛강마을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부쩍 그리워 아름다운 비상을 꿈꿉니다.

독도는 이제 말합니다. 어두운 것들은 모두 나에게 오라. 불의 생명인 나에게 모든 어둠은 밝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중앙에 지렛대처럼 힘을 쓰는 독도는 자꾸 새 힘이 납니다. 번쩍번쩍 희망을 건져 더욱 빛날 해에게 올리는 독도는 밤이면 깊은 잠에 빠집니다. 숙면이란 맘 놓고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잠입니다.

곤히 자던 독도가 새벽녘이면 버릇처럼 머리맡을 더듬습니다. 팔을 길게 뻗쳐 휘저어도 구석구석 허공만 만져집니다. 누구 강치를 보았나요? 그 많던 강치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자리끼처럼 요긴히 놓였던 강치들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 녀석들이 모닝콜처럼 간지럼을 태우던 시절이 무척 그립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 수평선을 베고 누웠던 구름이 독도에게 속삭입니다. 나쁜 이웃을 만나 제물이 되어버린 강치들을 이제는 잊어야한다고. 아직 하품도 안했는데 독도의 눈가에 눈물이 비칩니다. 그리움은, 오래 되면 더욱 깊어집니다.

나에게도 깊은 그리움 하나 있습니다. 나의 뼈인 나의 아버지. 목마른 아버지에게 나는 자리끼처럼 요긴했을까요? 줄줄이 잡혀가던 강치의 오랏줄처럼 나의 잘못만 꿰어집니다.

내 몸 속 모든 장기들과 지구의 두 바퀴 반 길이의 혈관이 모두 제 할 일로 바쁜 가운데 순백의 기도로 침묵 중인 사랑니가 나의 행적을 훤히 꿰뚫고 있을 것입니다. 독도가 아무 일도 않고 우두커니 있는 게 아니듯, 나의 섬은 그물에 걸린 내 허물을 말리며, 지금도 속죄 중입니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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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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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한홍 2018-07-25 21:29:52

    확실이 글재주가 보이는군요? 나는 이선생님
    처럼 글의 나열과 아울러 전개하는게 약해서
    글쪽으론 재질이없나보이네요? 약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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