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자연과 들꽃들

▲ 무등산 국립공원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을 한 컷 사진기에 담고

'광주' 하면 상징과도 같이 떠오르는 산, 무등산! 광주 5.18 노래라든가 시구절에도 자주 등장하는 무등산, 지리산을 제외하면 전남 한 복판에 우뚝 솟아 수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리는 명산이다. 이런 지세로 인하여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입석대, 서석대 등의 주상절리가 유명하고, 사시사철 독특한 풍광을 지니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기 때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산이기도 하다.

할머니 기제사에 참가하려고 고향 제주에 갔다가, 6월 22일 7시 15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광주 공항에 내렸다. 다음날 영광핵발전소 앞에서 시작하는 2018년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에서 광주로 향하는 비행기가 많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요금이 저렴한 저가항공사를 잘 이용하는데, 저가항공사들은 보통 하루 두 편을 운항하고 있었다. 오후 표는 이미 다 매진이 되어 새벽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다.

그날 저녁 때 탈핵순례단장인 강원대 성원기 교수를 영광성당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낼까 궁리를 하다가 무릎을 딱 쳤다. '그래 맞다. 이번 기회에 광주 무등산 정상을 오르는 거다.'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주저함이 없이 공항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서 무등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을 향했다. 공원 관리사무실 근처의 식당가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났더니 오전 10시 반이 되었다. 그 때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일행도 없이 혼자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을 오른 것이다. 20여 년 전에 교직에 있으면서 전교조 활동가 모일 때, 광주 인근의 담양에서 1박을 한 다음날 무등산의 중턱까지 올라가 본 것이 무등산을 올랐던 유일한 나의 과거였다.

무등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어서 산의 초입에서부터 큰키나무가 우거진 숲 밑에는 조릿대들이 자라고 있었다. 상수리, 신갈, 갈참, 굴참 등 참나무 종류들이 빽빽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깊은 골짜기에서는 맑은 계곡물이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중머리재, 무등산 중턱에 있어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등산 코스를 선택하여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곳이다.

약사암을 지나니 계단으로 된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약 20분 쯤 오르니 서인봉으로 오르는 산의 능선이 나타났다. 보통은 능선이 나타나면 그 다음은 그렇게 가파르질 않는데, 서인봉을 앞에 두어서 그런지 가파른 길은 계속되었다. 서인봉에 올라 동북쪽을 바라보니 흙바닥이 드러난 고개가 보였다. 거기가 중머리재였다. 그곳을 향해서 가는데 능선길 옆에는 용가시덩굴 꽃이 하얗고 소담스럽게 피어서 가고 오는 길손들을 반기고 있었다. 꽃만 얼핏 보면 찔레와 구분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용가시는 덩굴성 식물이고 찔레는 가시가 많이 달려있는 관목이다. 

▲ 용가시덩굴, 장미과에 속하는 덩굴성 목본 식물이다. 남부 지방 야산에서 많이 분포한다. 얼핏 보아서는 찔레꽃 같은데, 찔레는 덩굴성이 아니다.
길 양옆에 널려있는 용가시덩굴에게 눈길을 주면서 사진 두어 컷을 찍고는 중머리재로 향했다. 중머리재에는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올라온 사람들, 이 능선, 저 능선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이라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나는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장불재를 향해 걸었다.
▲ 꿀풀, 꽃 속에 꿀을 많이 품고 있어서 붙여진 풀꽃 이름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야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 큰까치수영, 큰까지수염이라고도 하기도 하는데, 여름철 어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으로 이삭꽃차례를 하고 하얀 꽃이 핀다.
▲ 큰뱀무, 장미과 식물로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데, 전국의 양지바른 풀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 '광주천' 발원지, 중머리재를 넘어 장불래를 행하는 계곡을 오르다보면 만날 수 있다.
한참을 가다 장불재에 다다르니 등산로 주변으로 큰까지수염, 꽃에 꿀이 많이 들어있어서 벌들이 좋아하는 꿀풀, 꽃은 예쁘지 않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보이는 큰뱀무꽃을 만날 수 있었다. 장불재에서는 평평한 곳에 대피소 같은 건물도 들어서 있고, 사람들이 휴식을 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널찍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여러가지 통신시설들이 세워져 있었다. 광주, 전남 일대에서는 최고봉인지라 많은 통신시설들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 무등산 등산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안내판
▲ 장불재, 이곳은 해발 918로 이곳 또한 '재'라는 지명이 말해주듯이 등산객들이 모이고, 이리저리 방향을 찾아 흩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기상관측소라든가 통신 시설 등이 들어서 있고, 쉼터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는 등 들러 가는 곳이다. 입석대 바로 밑에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 장불재를 올랐다는 설명판이다.
장불재에서 주변의 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더니 주상절리 바위들이 한 무더기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무등산은 과거 중생대 백악기 때 이곳 무등산은 화산활동이 활발했다고 한다. 그때 현무암질이 급격하게 굳어지면서 금이 가고 쪼개어져 절리들이 생성되었다. 주상절리 바위군락을 '입석대'라고 부른다. 그곳을 향해 걸어 올라가면서 보니 큰뱀무와 꿀풀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전나무 군락도 나타났다. 이러저러한 나무들과 식물들을 살피며 입석대를 올려다 볼 수 있는 테크에서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는 참빗살나무, 개벚나무 등이 나타나더니, 산뽕나무가 등산로 주변에 많이 자라고 있었다. 자잘한 오디들이 바위와 땅바닥에 떨어져 가고 오는 등산객들이 밟아서  돌바닥들이 오딧물이 들어 있었다. 입석대 앞의 한 50여 평 남짓한 크기의 평평한 땅바닥에는 산 아래 동네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귀회식물인 개망초라든가 큰뱀무, 꿀풀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 입석대의 우람한 바위군상들,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금이 가게 쪼개진 바위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 있다. 이것으로 보아도 이곳은 화산지형인 것이다. 1500만 년 전에 화산활동으로 무등산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곳 입석대 수직 바위면에도 '관찰사 000'라는 등의 큰 한자 글씨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그 옛날 벼슬깨나 했던 관리들이 자신의 직함과 이름을 새겨놓아 후대에까지 알리고 싶어서 하인들을 시켜서 새겨놓은 것이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면 풍광이 좋은 바위절벽들이 있는 곳에서 저런 음각 글씨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바위에 새겨놓은 글씨들을 보면서 '바위면 바위, 자연 그대로 놔둘 일이지 저렇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는다고 그 명성이 후대에까지 잘 기억이 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입석대를 뒤로 하고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보니 입석대와 같이 거대한 바위군락은 아니지만 자잘자잘한 주상절리들이 산정상쪽에 모여 있었다. 그런 바위들 틈에는 '돌양지꽃', '산꿩의다리', '고광나무', '흰씀바귀', '엉겅퀴' 등의 여름꽃들이 반기고 있었다. 특히 바위가 갈라진 틈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노랗게 웃고 있는 돌양지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입석대에서 기념사진을 한 컷 찍은 필자

한참을 이러저러한 꽃들을 살피며 서석대를 향해서 올라가는데 사방에서 불어오는 온갖 바람이 다 스치고 지나가는 정상 가까운 곳의 나무들은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나무들도 크게 자라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무들 틈에 덩굴성으로 자리 잡고 하얀 꽃무더기를 드러내 놓고 있는 '미역줄나무' 군락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꽃의 색깔이나 꽃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더기로 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식물이다.
 
▲ 돌양지꽃, 장미과 식물로, 바위틈에 많이 피어 서식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엉겅퀴, 우리나라 전역에서 마른 풀밭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국화과 식물인데, 줄기에 가시가 많다.
▲ 흰씀바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분류된다고 보고 있다. 씀바귀 종류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국화과식물이다.
그런 주상정리 바위 위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미역줄나무 꽃도 눈에 들어오지만 나무 숲 사이사이에 하얀 꽃을 피우고 띄엄띄엄 자리 잡고 있는 꽃이 보였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꽃인가?' 궁금하였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가로수로도 많이 심고 있는 헛꽃을 달고 있는 산딸나무인 것이다. 
▲ 산딸나무, 산 정상 근처에는 비바람에 시달린 나무들이 키는 크지 못하고 나직하게 드리워 자라고 있었는데, 하얀 꽃 군락이 눈에 들어와 살펴보았더니 산딸나무였다. 헛꽃을 달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 가꾼다. 가을이 되면 열매가 빨갛게 익는데, 먹으면 그 맛이 달다.
서울 상암동의 하늘공원을 오르다 보면 길 양옆에 많이 심어 가꾸고 있는 나무이다. 산딸나무는 가을에 그 열매가 분빛을 띄는 빨간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는 맛이 있어서 많이 따 먹었다. 제주도에서는 그 나무를 '틀낭'이라고 부른다. 그 열매는 좀 많이 먹으면 혓바늘이 서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먹을 수도 없다.
 
▲ 마친 사람이 인위적으로 세워놓은 것과 같은 비석을 연상하게 하는 입석 돌 바위에 '서석대'라는 글자를 파 놓았다.
▲ 입석대에서 서석대로 오르면서 만나는 주상절리 군락. 입석대에 비하여 높이는 낮지만 널리 자리 잡고 있다.
▲ 서석대 인근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광주시내 풍경
이렇게 주상절리가 널브러져 있는 가파른 산길을 올랐더니 드디어 커다란 수직바위 한 덩이가 일부러 사람이 세워놓은 것처럼 서 있었다. 그게 바로 상서로운 기운의 돌이라는 뜻인가? '서석대'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곳이 무등산에서는 가장 명소이다.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올라갈 수는 없다. 공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대가 자리를 잡으면서 천왕봉은 원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이 되었다고 한다. 서석대 뒤와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광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무등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들도 끝도 없이 이어 달리고 있었다. 그런 산줄기 사이로는 내가 흐르고, 그 내가 흐르다가 큰 저수지를 만들어 놓은 곳들도 눈에 들어왔다.
▲ 산꿩의 다리,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로 오르는 중간에 많이 피어 있었다. 비슷한 식물이름을 갖고 있는 것들로, 꿩의 다리. 금꿩의 다리, 은꿩의 다리, 자주꿩의 다리 등 몇 종이 된다.

▲ 고광나무, 이곳 무등산은 산이 높아서 그런가? 보통 5월 중순에 많이 볼 수 있는 관목성 꽃인데, 이곳에는 6월말인데도 꽃을 볼 수 있었다

▲ 조릿대(산죽),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겨울에도 상록성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노루 등이 겨울을 날 때 이 잎을 따 먹는다. 대나무의 일종이다. 조리를 만들 때 사용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고산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 무등산 정상 부근의 봉우리들에 대한 설명 안내판
▲ 무등산 정상, 군부대라 있어 올라갈 수 없다.
▲ 돌양지꽃, 장미과 식물로, 바위틈에 많이 피어 서식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석대에서 기념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점심 요깃거리도 안 갖고 올랐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중봉쪽을 향해서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웬 피나물처럼 생긴 꽃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매미꽃이 지지 못한 꽃잎 몇 장을 달고 있었다.

▲ 매미꽃, 마치 피나물과 같이 생겼지만 뿌리근처에서 줄기가 갈라지는 차이가 있다. 산의 정상 가까운 곳에서는 이른 봄에 피는 매미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꽃이 거의 자 지고 있었다.
▲ 그늘골무꽃, 서석대에서 중머리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숲 그늘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무 그늘 밑에는 그늘골무꽃 군락을 만날 수도 있었다. 허기가 지니 허겁지겁 산을 뛰다시피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바위를 녹여 철을 만들었다는 곳도 나오고 무술을 연마했다는 바위도 나왔다. 그렇지만 카메라 배터리가 다 달아버려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곳 광주 지역의 의병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덕령 장군의 사당 '충장사'도 찾아보고, 김덕령 장군 관련 유적들도 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직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광산김씨 같은 집안 어른이기 때문에 더더욱 정이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가쁜 발걸음을 놓으며 식당가가 있는 곳에 내려왔더니 3시 경이 되어 있었다. 늦은 점심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영광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등산에 오르면서 보고, 드는 생각들을 시 한 편으로 정리해 보았다.

 

무등산에 올라/김광철

 

얼마나 많은 남도의 마음들을 품었던고

제국의 흥망성쇠의 기운도 

한 인간의 생멸의 기운도

깨이면 다가서고

저무는 석양에는 찬연한 빛을 발하기도 하면서

시절이 곤할 땐 늘 시절을 품어 안지만 미동도 않고

울부짖으며 달려 나가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던 날들

늘 찢기고, 할퀴어 만신창이가 된다 한들

한 시도 놓을 수 없는 높디높아 하늘이어라

머나 먼 이역에 떠돌다가도 그 그리움은 문득 문득

주리고 고단한 몸 부여잡고 설운 잠 꿈길에 다가와

허연 저고리 고름 풀어 보얀 젖무덤 내밀며 빙긋이 웃는 어머니

한 시도 놓을 줄 모르는 그 그리움이여

기대이는 마음은 태산이어라

몇 억년 세월을 그리 버티어 서서

더욱 달굼질하라고

더 억척으로 나가 부서지라고

머리 조아릴 줄 모르는 불굴의 눈길 섬광이었던 아버지

세월은 아무리 격랑에 떠돌더라도

서석대 높은 봉엔 절기 따라 바람 멎을 날 없고

때론 운무가 몰려와 자욱이 감싸 안으며

맑은 웃음 흘리다가도

언제 그랬냐고 비 뿌리고 진눈개비 흩날리던 날이 더 많았제

울고 웃던 사람의 기척을 품었던 시간이 그 얼마더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 그 소리 이어질지 모른다만

그렇게 한 시절, 그렇게 한 세상은 흘러갈지니

태산으로 우뚝 버티어 모두 품을지니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뭐에 그리 미련과 아쉬움이 많다더냐

다 내려놓으라는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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