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자연과 들꽃들
'광주' 하면 상징과도 같이 떠오르는 산, 무등산! 광주 5.18 노래라든가 시구절에도 자주 등장하는 무등산, 지리산을 제외하면 전남 한 복판에 우뚝 솟아 수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리는 명산이다. 이런 지세로 인하여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입석대, 서석대 등의 주상절리가 유명하고, 사시사철 독특한 풍광을 지니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기 때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되는 산이기도 하다.
할머니 기제사에 참가하려고 고향 제주에 갔다가, 6월 22일 7시 15분 비행기에 몸을 싣고 광주 공항에 내렸다. 다음날 영광핵발전소 앞에서 시작하는 2018년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에서 광주로 향하는 비행기가 많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요금이 저렴한 저가항공사를 잘 이용하는데, 저가항공사들은 보통 하루 두 편을 운항하고 있었다. 오후 표는 이미 다 매진이 되어 새벽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다.
그날 저녁 때 탈핵순례단장인 강원대 성원기 교수를 영광성당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낼까 궁리를 하다가 무릎을 딱 쳤다. '그래 맞다. 이번 기회에 광주 무등산 정상을 오르는 거다.'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주저함이 없이 공항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서 무등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을 향했다. 공원 관리사무실 근처의 식당가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났더니 오전 10시 반이 되었다. 그 때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일행도 없이 혼자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을 오른 것이다. 20여 년 전에 교직에 있으면서 전교조 활동가 모일 때, 광주 인근의 담양에서 1박을 한 다음날 무등산의 중턱까지 올라가 본 것이 무등산을 올랐던 유일한 나의 과거였다.
무등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어서 산의 초입에서부터 큰키나무가 우거진 숲 밑에는 조릿대들이 자라고 있었다. 상수리, 신갈, 갈참, 굴참 등 참나무 종류들이 빽빽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깊은 골짜기에서는 맑은 계곡물이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약사암을 지나니 계단으로 된 가파른 산길이 나타났다. 약 20분 쯤 오르니 서인봉으로 오르는 산의 능선이 나타났다. 보통은 능선이 나타나면 그 다음은 그렇게 가파르질 않는데, 서인봉을 앞에 두어서 그런지 가파른 길은 계속되었다. 서인봉에 올라 동북쪽을 바라보니 흙바닥이 드러난 고개가 보였다. 거기가 중머리재였다. 그곳을 향해서 가는데 능선길 옆에는 용가시덩굴 꽃이 하얗고 소담스럽게 피어서 가고 오는 길손들을 반기고 있었다. 꽃만 얼핏 보면 찔레와 구분이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용가시는 덩굴성 식물이고 찔레는 가시가 많이 달려있는 관목이다.
한참을 이러저러한 꽃들을 살피며 서석대를 향해서 올라가는데 사방에서 불어오는 온갖 바람이 다 스치고 지나가는 정상 가까운 곳의 나무들은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나무들도 크게 자라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무들 틈에 덩굴성으로 자리 잡고 하얀 꽃무더기를 드러내 놓고 있는 '미역줄나무' 군락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꽃의 색깔이나 꽃 모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더기로 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식물이다.
서석대에서 기념 사진 몇 장을 찍고는 점심 요깃거리도 안 갖고 올랐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중봉쪽을 향해서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웬 피나물처럼 생긴 꽃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매미꽃이 지지 못한 꽃잎 몇 장을 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무 그늘 밑에는 그늘골무꽃 군락을 만날 수도 있었다. 허기가 지니 허겁지겁 산을 뛰다시피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보니 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바위를 녹여 철을 만들었다는 곳도 나오고 무술을 연마했다는 바위도 나왔다. 그렇지만 카메라 배터리가 다 달아버려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곳 광주 지역의 의병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김덕령 장군의 사당 '충장사'도 찾아보고, 김덕령 장군 관련 유적들도 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직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광산김씨 같은 집안 어른이기 때문에 더더욱 정이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가쁜 발걸음을 놓으며 식당가가 있는 곳에 내려왔더니 3시 경이 되어 있었다. 늦은 점심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영광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등산에 오르면서 보고, 드는 생각들을 시 한 편으로 정리해 보았다.
무등산에 올라/김광철
얼마나 많은 남도의 마음들을 품었던고
제국의 흥망성쇠의 기운도
한 인간의 생멸의 기운도
깨이면 다가서고
저무는 석양에는 찬연한 빛을 발하기도 하면서
시절이 곤할 땐 늘 시절을 품어 안지만 미동도 않고
울부짖으며 달려 나가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던 날들
늘 찢기고, 할퀴어 만신창이가 된다 한들
한 시도 놓을 수 없는 높디높아 하늘이어라
머나 먼 이역에 떠돌다가도 그 그리움은 문득 문득
주리고 고단한 몸 부여잡고 설운 잠 꿈길에 다가와
허연 저고리 고름 풀어 보얀 젖무덤 내밀며 빙긋이 웃는 어머니
한 시도 놓을 줄 모르는 그 그리움이여
기대이는 마음은 태산이어라
몇 억년 세월을 그리 버티어 서서
더욱 달굼질하라고
더 억척으로 나가 부서지라고
머리 조아릴 줄 모르는 불굴의 눈길 섬광이었던 아버지
세월은 아무리 격랑에 떠돌더라도
서석대 높은 봉엔 절기 따라 바람 멎을 날 없고
때론 운무가 몰려와 자욱이 감싸 안으며
맑은 웃음 흘리다가도
언제 그랬냐고 비 뿌리고 진눈개비 흩날리던 날이 더 많았제
울고 웃던 사람의 기척을 품었던 시간이 그 얼마더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 그 소리 이어질지 모른다만
그렇게 한 시절, 그렇게 한 세상은 흘러갈지니
태산으로 우뚝 버티어 모두 품을지니
너무 서러워하지 마라
뭐에 그리 미련과 아쉬움이 많다더냐
다 내려놓으라는데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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