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같은 남편, 여우 같은 아내, 토끼 같은 자식’이라고들 하잖아요, 곰과 여우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토끼’다? 이렇게 미스테리한 곰가족의 가족사에 대한 해답은 바로 ‘사랑’입니다. 지금 내 곁의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내 친구도. 그들과의 만남과 인연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죠. 세상의 모든 미스테리한 관계들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마법처럼 스르르 이해가 되고 해답이 되는 순간들이 정말 많습니다.” 말로만 듣던 곰, 여우, 토끼 가족이 ‘문화공간 온’ 안에 있다. 서민경 캘리그라퍼는 곰 가족의 사랑을 소재로 한 ‘사랑은 미스테리한 힘이 있다’라는 제목의 작품을 먼저 소개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빠 곰, 엄마 여우, 토끼는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 <사랑은 미스테리한 힘이 있다> 18×26cm watercolor paper

서작가는 ‘사랑’이 어울리기 어려워보이는 것들을 조화한다고 보았지만 적어도 그림에서는 텍스트가 '이질적임'을 하나로 묶어주어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여기서 ‘텍스트’는 그냥 글자가 아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예쁘게 써야한다’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합니다. 글자의 모양이나 시각적인 형태에 치중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캘리그라피의 진정한 의미는 ‘진심을 담아 쓰는 글씨’여야 합니다.” 

시각적인 글씨 디자인이 담은 ‘진심’은 어떻게 전해질까. “글자의 형태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느낌이 중요해요. 진심을 담아서 쓰는 글이어야 하고 그 메시지도 같아야 합니다. 그림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인데, 요즘은 오히려 그림이 더 중요해지는 경향도 있어요. 글씨 안에 회화적인 요소나 소품을 넣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심을 전하는 보조 표현 수단이어야 합니다”

진심을 담은 그림의 예를 물었다.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엄마 잔소리도 나중에 생각하면 결국 모두 나를 위해 하시는 거잖아요.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 <엄마잔소리>예요. 저만의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글자로 만들어 넣었죠.” 작품에서 ‘엄’ 자에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숨어있다. 

▲ <엄마잔소리> 60×200cm 광목천 인쇄
▲ 60×120cm 캔버스

 

이번 신인작가전시회를 기획한 서용희 ‘문화공간 온’ 이사는 “서작가의 작품은 진한 사람 향기가 난다. 엄마 냄새도 물씬나고 때론 코끝 찡한 눈물 맛도 느껴진다. 포근한 위로와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친근한 주인공들 모습은 절로 웃음 짓게 한다. 삶을 녹여낸 그림과 글씨가 깊은 여운을 준다”고 평했다.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캘리그라피의 Calli는 ‘아름다움’을, Graphy는 ‘그리는 스타일’을 뜻한다. 글자는 특별한 서체로 표현되고 그 모양 자체가 디자인이다. 그러니 캘리그라피는 텍스트의 내용성과 디자인이 가지는 이미지를 함축 또는 융합한다.

▲ 서민경 캘리그라퍼

아이를 키우느라 내려놓았던 붓을 7년 전 다시 들었다. 산업디자이너였던 그가 어느새 중견 캘리그리퍼다. 책으로 마음이 힘든 아이들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독서치료라는 수업을 듣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마음을 열고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을 잘 해야 하는데, 좋은 질문이란 하나의 대답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풍부하게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이죠. 저는 캘리그라피에 이걸 적용했어요. 덕분에 작품을 본 분들은 대부분 ‘자꾸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의 호가 '짱돌'인 것도 그런 이유다. 잔잔한 바다에 짱돌을 던지면 많은 물결이 생기듯 이야기의 퍼져나감과 혁신, 변화를 꿈꾼다. 

▲ 서민경 작가의 작품 20여 점은 8월말일까지 문화공간 온에서 감상할 수 있다.

진심을 담아 마음을 여는 서 작가의 작품들은 8월말까지 ‘문화공간 온’ 3층 홀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각박하고 기계화된 지친 삶과 마음의 충천을 원한다면 서민경 작가를 만나보자. 일상에 대한 공감을 넘어 다채로운 그림와 소품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진심’의 세계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연락처: 02-730-3370 문화공간 온)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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