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60] 유교와 조선의 당쟁

모든 학문은 시대가 변하면 도태되거나 새로운 후계자가 등장하여 더욱 발전시키지요. 성인이나 종교를 창시한 인물도 처음에는 인간이었지만 후대로 가면서 신격화과정을 거치고, 나중엔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배교자 혹은 조사능멸이라는 해괴한 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공자는 약 200년 후 맹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제자백가의 한 사람으로 기록될 인물이었습니다. 맹자가 활약할 당시 중국 천하는 도가사상이 단단하게 뿌리내렸고, 묵자의 겸애사상이 시대조류였습니다.

맹자는 치열하게 노자와 묵자의 사상을 공격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천하에 널리 알립니다. 먼저 성인의 도를 배워 수신을 하고 남을 다스리라는 유교의 학문은 한나라 무제의 통치이념과 맞아떨어져 중국의 주류 학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 공자와 주자                            사진 : 위키피디아

발전을 거듭하던 유학은 송나라 주희(주자)에 의해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사상이나 학문의 범위를 넘어 유교라는 종교가 되지요. 주자의 이기론은 조선으로 들어와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어 당쟁의 한 쪽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퇴계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 뒤를 이어 성혼과 율곡 이이의 주리론과 주기론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주자는 성즉리(性卽理), 우주만물을 이루는 원리, 본성을 리(理)로 보고, 그 리의 작용에 의해 기(氣)가 표현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퇴계와 성혼은 주자와 같이 이와 기가 각자 따로따로 발현한다(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고 하며 주리론을 피력하여 영남학파로 이어집니다.

기대승과 율곡은 인간의 마음이 한 뿌리인데, 어떤 마음은 이가 되고 어떤 마음은 기가 될 수 있느냐며 주기론 입장을 취하여 후에 경기 호서학파로 이어지지요.

▲ 퇴계와 율곡                                    사진 : 위키피디아

이와 기가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떻습니까? 형이상학이 지배를 하면 항상 선이고, 형이하학이 지배를 하면 항상 악이던가요? 둘을 나누면 어떻고, 합치면 또 어떤가요? 한국을 침략한 일본 학자들은 이렇게 조선 선비들이 아무 쓸모없는 논쟁으로 나라가 망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사를 걸고 양보할 수 없는, 통치의 주체를 다르게 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혼이 말합니다. "인심(人心)은 기를 위주로 하고, 도심(道心)은 이를 위주로 한다"고. 성혼의 말뜻을 풀이하면, 이는 하늘이고 왕이고 스승이며 아버지입니다. 기는 민심이고 백성이며 자식입니다. 이는 머리이고 인의예지이며 기는 몸통이고 희노애락애오욕입니다. 더 나아가면 왕 위주의 국가가 맞느냐? 백성 위주의 국가가 맞느냐?하는 논쟁으로까지 내면에서 확산이 됩니다. 그러니 당쟁의 끝은 죽음만 남지요.

대를 이어 오늘날에도 그 다툼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어떤 지도자여야하고, 어떤 아버지가 좋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난세를 다스리는 지도자와 엄격한 아버지를 선호하는 집단 그리고 약자를 배려하고 다수와 공감하는 다정한 리더십과 부드러운 아버지를 선호하는 집단으로 나뉩니다.

마오쩌뚱의 강력한 리더십은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만 지나고 나서야 백성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됩니다.(물론 아직도 마오쩌뚱을 신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과 실용주의로 중국인민의 삶을 향상시켰지만 또다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하였습니다. 향후 중국이 어디로 갈지 우려 섞인 시선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중국의 유학은 길을 달리합니다. 주희의 뒤를 이어 동 시대에 육상산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강학을 하고 있던 주희는 당대의 젊은 학자로 유명해진 육상산을 불러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게 합니다. 육상산은 그곳에서 논어의 ‘군자유어의(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小人喩於利) 즉,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라는 구절을 들어 과거를 준비하며, 입신양명을 삶의 목표로 삼고 이익만 추구하는 젊은 세태를 비판하는 명 강연을 합니다.

육상산은 주자의 학설에는 동의하지 않지요. 인간은 마음(心)도 하나요, 이(理)도 하나다. 즉 심즉리(心卽理), 마음과 이를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심학의 창시자입니다. 이 육상산도 왕양명이라는 걸출한 철학자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또 시들해졌겠지만, 한국과는 달리 육상산의 뒤를 이은 왕양명이 중국 철학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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