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시내에서 지리산을 향해 20분 정도 차로 달려가면 ‘제1회 아름다운 숲 대회(2000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뽑힌 숲이 있다. 남원 운봉읍 행정마을에 있는 ‘서어나무숲’이다. 서어나무숲은 200년 전 행정마을 주민들의 허한 기운을 채우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으로 마을 논과 밭 사이에 동산같이 동그마하게 솟아 있다.

▲ 멀리 지리산과 함께

자작나무과에 속한, 회색빛 반들거리는 껍질을 가진 서어나무는 해발 500~1000미터 우리나라 산지 어디서나 잘 자라는 강인한 나무다. 서어나무 껍질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울퉁불퉁 거칠다. 어느 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더 많은 양분을 주어 양분을 많이 받은 부위 나이테는 넓어지고 적게 받은 부위는 좁아져서 울퉁불퉁해진다고 한다.

▲ 행정마을 서어나무
▲  임권택 감독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이와 이도령이 그네 뛰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10~15미터 되는 서어나무 90여 그루가 1600㎡의 면적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숲의 가장 큰 장점은 늘 섭씨 15℃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설마 그렇게 시원할까 생각했는데 들어 가보니 정말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되지 않는 선선한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준다. 보면서 걷는 숲이 아니라 쉬기 좋은 숲이다. 군데군데 평상이 있어 한여름 마을 주민들이 일하다 고단한 땀을 식히러 들어오는 숲이다.  

▲ 평상에 누워 바라본 하늘

숲 가운데 평상에 누워 보았다. 무성한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동굴 같다. 나뭇잎 뒤로 하늘이 살곰살곰 보인다. 사이사이 빤짝거리는 햇살이 마치 숲의 정령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을 감는다. 햇살이 나뭇잎 위로 톡톡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숲속을 유영하는 바람소리도 들린다. 누군가 사각사각 나뭇잎 밟은 소리도 들린다. 작지만 낭랑한 산새소리는 이 모든 소리를 지휘하는 것 같다. 시간이 이대로 멈춘다면 나의 숨소리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행정마을 옆에는 세 개의 봉우리를 가졌다는 삼산마을이 있다.

▲ 행정마을과 삼산마을

행정마을 서어나무숲만 보고 가기 아쉽다면, 람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삼산마을의 300년(?) 된 소나무숲을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멀리 지리산 하늘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자라는 소나무 약 백 그루는 지리산 바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떤 간섭 없이 마음껏 자란 듯 보인다. 휘고 싶으면 휘고, 눕고 싶으면 눕고, 날고 싶으면 날고, 용트림하듯 뻗고 싶으면 뻗으면서 이리구불 저리구불 자유롭다. 이렇게 마음껏 자란 탓에 우수한 유전자를 지녔는지 유전자 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삼산마을 소나무숲은 ‘제7회 아름다운 숲 대회’ 마을 숲 부문에서 어우림상(장려상)을 받았다.

▲ 제멋대로 맘껏 자란 삼산마을의 소나무
▲ 삼산 마을 소나무

삼산마을에는 두 개의 당산나무가 있다. 윗당산는 남쪽에 아랫당산은 북쪽에 있다. 윗당산을 할아버지 당산이라 불렀고 아랫당산을 할머니 단상이라 불렀다 한다. 아래 나무는 할아버지 당산나무다. 이 나무 아래서 수많은 당산제를 지냈을 것이다. 그들의 염원을 할아버지 당산은 기억하고 있을까?  

행정마을과 삼산마을은 지리산둘레길 1코스(주천~운봉)에 있다. 1코스 돌 때 지친 몸을 잠시 쉬어감도 좋을 듯 싶다. 

▲ 지리산둘레길 1코스 파란 표시가 서어나무 숲과 소나무 공원 위치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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