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실천시민행동의 '평화 동일' 아카데미 제5강, 임형진교수 강의

▲ 70여 명의 수강생들이 모여 남한의 천도교와 북한 청우당 등의 교류, 협력 방안 등에 대하여 열심히 경청하고 있다.

8월 22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서울시청 제2별관 대강당에서 천도교 종학대학원장인 임형진 교수가 '동학과 민족 통일 - 화해와 상생의 교류 협력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은 남북 화해, 협력 통일의 시대를 맞아 천도교와 문광부가 후원하고 인내천운동연합이 주최했다. 주관은 '동학실천시민행동'이 맡았다. '평화, 통일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강좌이다. 이번 제 5강에는 70여 명이 참석했다.

▲ 천도교 종학대학원장인 임형진 교수가 '동학과 민족 통일'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은 남북한의 동학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수강자들은 과거 북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던 내용들을 접하게 되어 더욱 호기심을 갖고 들었다. 아래는 임 교수가 강연을 통해서 밝힌 남한의 천도교와 북한의 청우당을 중심으로 역사, 현실, 미래 전망 등을 강연한 내용이다.

손병희 선생은 동학혁명 때 북접(동학 교단 조직의 하나)을 이끌고 우금치 전투에 참가했으나 동학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사망한다. 손병희 선생은 동학을 이끌기 위하여 해월 최시형의 특별한 지시로 살아남고 일본으로 망명을 한다. 그 후 동학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 명인 이용구가 배신을 하여 일진회를 만드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자 손병희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라 개명하였다. 그러다 일본 망명에서 돌아온 손병희는 개신교와 불교 지도자들과 접촉을 하여 이들을 아우르고 천도교들을 중심으로 하여 3.1운동을 주도하였다.

▲ 최동오 선생이 세웠던 화성의숙, 김일성은 이곳에서 6개월 정도 학교를 다니면서 민족 의식을 키운다.

이때 최동오도 천도교도로서 3.1운동을 주도하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법무부부장 등을 역임한다. 임시정부 내에는 최동오 등이 중심이 된 무장투쟁 노선의 창조파와 안창호 등 외교노선의 개조파가 있었는데 노선투쟁에서 개조파가 주도하게 된다. 창조파인 최동오는 압록강 연안의 화전현으로 옮겨가 '화성의숙'을 세우고 독립군 양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북한의 김일성과 천도교의 관계

당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운영하는 한약방이 독립운동의 아지트라는 것을 안 일제가 탄압을 하자 김일성은 화성의숙으로 피난을 가 6개월가량 공부를 했다. 그런 과정에서 김일성은 민족의식이 크게 성장한다. 최동오는 당시 16세인 김일성을 정규학교인 길림의 육문중학교로 보내어 공부를 하게 한다. 김일성은 3학년 때 중퇴한다. 그러고 나서 19세부터 빨치산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김일성 부대는 압록강을 건너와 경찰지서 등을 습격한 '보천보 전투'에서 일본 경찰을 죽이고 그 지역을 '해방구'로 선언을 한다. 당시 천도교 대접주였던 박인진은 김일성의 연락을 받고 면담한 다음 군자금과 식량을 모아 김일성을 지원하고 천도교의 자제들을 모아 빨치산으로 보내기도 한다. 박인진은 혜산지서에서 고문을 받다가 숨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김일성과 북한은 민족적 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 왼쪽이 최동오 선생, 오른쪽이 유동렬 선생이다. 두 분은 열열한 천도교 신자였고 사돈지간이다.

이런 인연으로 김일성이 북한 정권을 수립한 이후 박인진의 후손, 청우당 강제하의 후손 등을 찾아 북한 청우당을 지원했고 그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북한 청우당을 이끌고 있다. 천도교인 유동렬은 구한말 대한제국 교관 출신으로 일본 육사를 거쳐 신민회 결성에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최동오와 유동렬은 같은 천도교인으로서 상해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가깝게 지냈다. 최동오의 큰 아들이 최덕신과 유동렬의 딸 유미영이 혼인을 하여 둘은 사돈지간이 된다. 이들은 일제가 패망하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귀국할 때 함께 귀국하였다. 최동오는 1948년 김구 등의 남북협상 때 북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 6.25 때 북한은 저명인사들 모시기 작전을 폈는데(남한 정부는 '납북'이라고 주장하는데, 남북의 입장 차이가 크다), 유동렬은 그 때 북으로 가게 된다. 남에서 육사교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여 천도교 교령을 지내기도 하고, 박정희 정권 때 외무장관 등을 지낸 최동오의 큰아들 최덕신은 미국을 거쳐 북으로 망명하여 북에서 청우당 중앙위 위원장으로 청우당을 이끌다가 사망하자, 그의 부인 유미영이 그 직을 이었다.

▲ 북한에서 제일 많은 신도수를 거느리고 있는 북한 천도교인 청우당과 유미영 위원장의 모습


북한 천도교 청우당은 북한 최대 종교로서 공식적인 신도수는 1만 5천 명이지만 청우당 당원은 1만 6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미영 천도교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북한 권력서열 21위에 올랐다가 95세에 사망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의원 대의원 23명으로 북한 낸 민족관련 사업을 총괄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다. 북한은 최고 권력도 그렇지만 혈동을 중요시하여 청우당이나 사회단체 등 주요 기관의 책임을 맡은 인물들은 그 자손으로 이어가는 전통을 갖고 있다.

남북 천도교가 활발한 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앞장서야

천도교가 손병희 이후 교(敎)와 정(政)을 구분하여 정(政)의 역할을 담당하는 조직이 '동학민족통일회'가 있다. 해방과 분단 이후 침체되어 있는 민족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근래에는 북한 청우당의 파트너로서 통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2005년 이후 남북회담, 개성회담, 금강산회담, 평양방문 등 총 30여 차례 회담이 이루어졌다. 남북 공동 의식 회복, 3.1운동 공동 기념식, 독도 수호 공동 성명서 발표 등 공동 사업을 진행해 오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교류가 중단되었다.

▲ 남쪽의 천도교 입장에서 살펴본 향후의 통일 운동과 남북 간의 주요 논의 사항들에 대한 내용

향후 통일운동의 남북 간 주요 논의 사항으로 △ 남북 천도교 교류 및 공동 행사 △ 주변국 역사 왜곡 공동 대처 △ 개천절 행사 공동 주최 △ 세계 NGO 포럼 등의 학술 대회 △ 남북 단군 유적지 순례단 협의 등을 논의하여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강연을 마치면서 임형진 교수는 코넬대학의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의  "민족은 만나보거나 들어본 적도 없어도 상상의 공동체로서 정신적 산물이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민족을 버리는 순간 통일은 없어진다"고 하면서 "남과 북은 서로 윈윈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필요에 의하여 통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시기는 아니고 평화와 공존이 우선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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