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니 어제 '식민지역사박물관' 행사 사진과 그에 대한 글로 한주회방이 차고 넘친다. 이런 저런 것들을 살펴보다 보니 어제의 일들이 물위에 던져진 차돌에 번져 일어나는 물결처럼 되살아나 뇌리를 채운다.

가만 생각해보니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나는, 내 생애 가장 슬프고 무거운 떡 한쪽을 먹은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한은행 앞 기자회견 순서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박물관을 돌아보고 오려고 갔었다.

1층 내실 로비에서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이 행사에 침을 뱉으려고 왔냐고 따지는 이ㅇㅇ 부운영위원장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기를 바래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관계자로부터 오후 4시가 넘어야 개관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은행 시위현장으로 되돌아 왔다.

식민지, 뼈아픈 민족의 아픔을 벗어던지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독립운동가, 그 숱한 의병의 피와 소원을 일제의 칼날에 영원히 다시 바치고 싶다는 망령을 담은 듯 '식민지' 라는 용어를 그대로 담아 '식민지역사박물관' 이라 칭하고 개관한 오늘, 하늘도 슬피 우는 듯 철철 빗물이 쏟아졌다.

한없이 슬픈 빗물 속에 성토의 시간을 보내고 오후 5시 넘어 다시 개관한 박물관을 보려고 녹색의 "민족문제연구소 바로세우기 시민행동" 이란 글자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채 위로 올라갔다.

1층 내실 로비에는 수녀회대강당에서 개관식을 마치고 이곳 로비로 올라온 행사참여자들로 가득 차고 넘쳤다. 내실 한쪽 긴 책상 위로 방문객들을 위한 떡들이 여러 쟁반위에 담겨 놓여 있었다. 이미 방문객들이 둘러서서 떡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늘처럼 각종 엄청난 비리로 썩어있지 않고 그 정신이 오롯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은 날이 되었을까 가슴이 쓰려왔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이라는 우리민족에게 아픔이 되고 죄스러움이 되지 않는 '항일역사박물관' 이나 '대일항쟁역사박물관'이라 명명했으면 오직 좋았을까 싶었다. 그리됐으면 오늘의 이 아픈 갈등은 없었을 것 아닌가?

서로 북받치는 감동을 내뿜으며 기쁜 마음으로 떡을 함께 먹을 것을... 이런 쓰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고 말았구나 하는 여운이 덧없이 밀려왔다.

그래 지금은 비록 슬픈 마음으로 이 광경을 보고 서 있지만 머지않은 날에 반드시 '식민지' 란 민족의 자존을 더럽히는 용어를 걷어치우고 '항일역사박물관' 이란 민족의 자존을 살리는 영광의 이름으로 돌려놓은 뒤 진정 기쁜 마음으로 떡을 다시 먹으리라 다짐했다.

‘네놈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지금 왜 나라고 못 먹겠느냐’ 나는 다가가 떡을 하나 집어 들고 한입 깨물며 앞의 중년신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니 민족문제연구소 반대 조끼를 입고 무슨 낯으로 떡을 먹느냐"고 비아냥댔다.

"당신이나 나나 이 떡을 먹는 것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를 사랑하는 맘에서 먹는 것이다. 박물관 개관을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식민지라는 그 몹쓸 이름을 반대하고 나쁜 부정부패를 반대할 뿐이다. 그리고 선생이 나에게 떡을 먹어라 마라 내 권리에 참견하고 간섭할 권리가 없다. 괜한 참견마시라" 고 말했다.

박물관을 돌아보기 위해 이층 계단 위로 오르려할 때 한 관계자가 다가와 "반대조끼를 입고 올라가면 업무방해로 고발할 터이니 올라가려면 조끼를 벗고 올라가라"했다. "이 조끼를 입고 있는 것이 그리도 부담이 되느냐? 그렇다면 벗고 올라가겠다." 하고 조끼를 벗어 들고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박물관은 내부가 그 비용 55억의 씀씀이에 비하면 참으로 비좁고 단순했다. 공간이 없다 보니 일제의 악랄한 고문재현소나 중국 러시아 등 넓은 독립운동지 지도하나 걸 자리가 없었다. 이런 이미 마련됐던 건물에 55억을 어디에다 다 썼단 말인가? 고개가 갸웃 거려졌다.

전시장 한쪽에 제법 큰 방명록이 있었는데 방문객들이 글을 적어 남기고 있었다. 나도 서슴없이 붓을 들어 " '식민지' 란 용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이름이다. 이전오 " 라고 썼다. 후일 이 글이 찢겨나가지 않고 그대로 방명록에 남겨질 수 있을까? 궁금했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1충 로비로 내려오니 사람들은 여전히 책상을 둘러싸고 떡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며 오늘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무거운 떡을 미래의 영광을 기리며 먹고 가는구나 생각하며 박물관을 나왔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이전오 주주통신원  ljo6675@hanmail.net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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