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의 바다에서 인양된 배들을 보면 하나같이 고려 시대의 배들이다. 이러한 배들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배의 밑은 몇 판이고, 삼은 몇 판으로 되어있더라고 말을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옳지만, 마치 수학공식처럼 우리의 배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고 하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배란 크기나 용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나무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조 때의 기록에 배를 건조할 때에 본판(本板)의 경우는 나무 하나를 더 붙여서 그 넓이를 약간 증가시키고, 삼판(杉板)의 경우는 소나무의 대소(大小)에 따라 7립(立)을 쓰기도 하고 혹은 8립을 쓰기도 한다고 했다. 이처럼 나무의 크기에 따라서 쪽수가 달라지는데 모두가 똑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배들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기록이 또 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를 보면 우리나라(조선)의 배 제도는 만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했다. 즉 좁으면서 긴 것이 있고, 넓으면서 짧은 것이 있으며, 크면서 얕은 것이 있고, 적으면서 깊은 것이 있다고 했다.

배란 지금도 용도에 따라 높고 낮음, 길고 짧음이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모든 배가 틀에 박힌 치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대의 선박도 어선이냐 화물선이냐에 따라 장폭비가 다르고 높고 낮음을 달리한다.

또한 우리의 배를 두고 모두가 평저선이라고 하는데, 평저선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평저선이라고 해서 배의 밑이 앞에서부터 뒤까지가 수평인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늘과 같이 이상한 배가 되어 움직일 수도 없는 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바다를 알고 항해를 알았다면 이러한 일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역(완도)에서 배를 만들었던 기록들을 살펴보면, 1460년에 조전선(漕戰船) 100척을 만드는데 여러 고을에서 선장(船匠) 100명, 목장(木匠) 200명을 뽑아서 변산과 완도에 보내라는 기록이 있다. 1476년에는 배 만드는 변산의 소나무가 이미 다 없어져서 완도로 자리를(배 만드는 장소) 옮겼다니 완도가 다 떨어지면(배 만드는 소나무가 다 없어지면) 장차 어디로 갈 것이냐고 임금이 걱정했던 기록을 보면 완도에서 배를 만든 일들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완도에는 그만큼 소나무와 배를 만드는 목수들이 많았었음을 알 수가 있다. 1505년에는 전라도에서 보낸 잉박선(芿朴船, 너벅선, 廣舟) 19척, 토선(吐船) 12척, 착어선(捉漁船) 2척을 내수사에 소속시키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나룻배나 어선까지도 완도에서 만들어 내수사로 보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완도에는 대규묘의 조선소가 있었을 것이고, 선장(船匠)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소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죽청리(竹靑里)와 대야리(大也里)에 부추언(艀堰)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곳은 장도의 좌우에 있어 배를 만들었거나 수리 등을 하였던 장소가 확실하다 하겠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이 후대에 그대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선술을 일본에서 배워 온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200여 년 전 장보고가 전 세계를 누비며 다국적 무역을 하였던 시기에 일본의 구법승 엔닌은 당나라를 오갈 때 우리의 배와 우리의 선장이 아니었으면 다닐 수가 없었음을 당시의 기록에 남겼다.

어디 그뿐인가. 응신천황 31년 8월조에는 신라가 선장(船匠)을 일본으로 보내어 저명부의 시조가 된 일, 안예국에 명하여 백제선 2척을 만들게 했던 일들을 보면 분명 저명부의 시조는 신라인이 아닌 백제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라인에게 신라선을 만들게 해야 옳은데 신라선이 아닌 백제선을 만들게 하였던 것은 이 사람들이 백제인이였기 때문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또한 백제선이 다른 배에 비하여 성능이 우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 때 우리의 기술이 일본에 전해졌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온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 든 그들의 문화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배에 관한 것들을 모두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배에는 모든 것이 원칙이 있다. 그런데도 모형 배 몇 개 만들었다고 배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자기 마음대로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잘못된 것을 후대에 그대로 전해지게 하는 것은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제 학자나 기능인 모두는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우리 것이 꾸밈없이 본래의 것대로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들은 우리 것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것을 천시하고 외면하는 이러한 풍토는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전통기능인들이 마음 놓고 자기분야에서 일하고 그 기능을 글로 쓰게 해야 한다. 서툴러도 좋다. 아니 당연히 서투를 수밖에 없다. 많이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기능인과 학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을 글로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나서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를 보전하고 세계만방에 널리 선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건국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삼았던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광남 주주통신원  wd3415@naver.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