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의 추억

김미경 편집위원l승인2018.09.04l수정2018.09.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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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취미는 예나 지금이나 등산이다. 지금은 좀 가볍게 산을 다니는 편이지만 젊어서는 30kg 이상도 짊어지고 산에 가곤 했다. 결혼 후 남편의 유일한 소비는 등산장비를 사 모으는 것이었다. 87년 2월이었을 거다. 2인용 겨울 텐트를 마련하고는 눈 덮인 지리산에서 야영을 해보자고 했다. 나는 정말 싫었다. 추위를 몹시 타는 나는 대피소에서 자면 가겠다고 애원했지만, 남편은 최신용 텐트라며 춥지 않을 것을 장담하면서 나를 조근조근 설득했다.

순한 남편의 고집을 어찌 꺾으랴. 할 수 없이 텐트 바닥에 깔 스티로폼을 잘라 배낭 옆에 매달고는 지리산을 향해 출발했다. 용산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구례역에 내렸다. 그 당시 거금을 주기로 하고 성삼재까지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어느 정도 올라가더니 더 이상은 미끄러워 올라갈 수 없다며, 요기 돌면 바로 성삼재가 나오니 조금만 걸어 올라가라 했다. 천은사에서 성삼재까지는 길이 매우 꼬불꼬불해서 낮이어도 조심해서 운전해야하는 길이다. 꼬불꼬불 길에 내린 눈이 녹아 얼어 온통 빙판길이 되어 위험하긴 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어서 기사 말을 믿고 약속한 돈도 다 주고 내렸는데... 가도 가도 성삼재는 멀기만 했다.

깜깜한 밤에 미끄러운 도로를 두 시간 걸었을까? 성삼재에 도착했을 때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바보같이 기사 말 믿고 요금도 깎지 못했다며 억울해하며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을 때 산장에서 푹 자고 일어난 사람들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따뜻한 곳에서 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가기를 원했지만... 순한 고집 남편을 따라 코펠을 꺼내 아침을 해먹고는 눈 덮인 노고단에 올랐다가 반야봉을 향해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 밤, 대피소를 옆에 두고 야영했다. 남편은 몸이 따뜻한 편이라 잘 잘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찬 나는 이틀 동안 벌벌 떨며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젊을 때니 할 수 있었던 용감한 산행이었지 싶다. 지금은 지리산 전역에 야영이 금지되어 해보려야 해볼 수도 없는 귀한 추억이 되었다.

그 이후에 갔던 노고단은 처참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노고단을 밟고 갔다. 할 수 없이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노고단에 휴식년제를 두었다가 복원과정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이렇게 주어진 길로만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동시 방문을 막기 위해 인터넷 예약제(https://reservation.knps.or.kr/main.action-탐방예약 클릭)를 실시하고 있다.

▲ 노고단으로 오르락, 노고단에서 내리락

노고단 고개를 기점으로 능선 종주가 시작되기 때문에 노고단은 늘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이번에 간 노고단은 참 조용했다. 휴가철이 지나기도 했지만 태풍이 온다고 노고단 고개 이후부터 입산통제를 해서, 노고단만 잠깐 보러 올라오는 사람들만 띄엄띄엄 있었다. 덕분에 한적한 하늘정원 노고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 조용한 하늘정원에 핀 원추리. 7월 초순에 덕유산 중봉에 가면 원추리 꽃밭이 펼쳐지는데....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다. 탁 트인 전망과 ‘지리산’하면 ‘운해’라는 말에 걸맞게 구름과 능선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모습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아래 구상나무는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무등산, 가야산 등 남부 고산 해발 1000~1,500미터 사이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다. 바람이 많이 부는 노고단에서 자라서인지 수령이 80세임에도 그리 크지 못했다. 혼자라 외로워 보인다.

▲ 노고단 구상나무

노고단은 7월 중순에서 8월 초순까지 온갖 야생화가 절정을 이루어, 구름바다를 배경으로 꽃바다가 펼쳐진다고 한다. 노고단 탐방안내소에서 내년에는 꼭 그 시점에 맞춰 방문하라고 한다. 우리는 8월 20일 지나 방문해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야생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를 붙들어 놓는 야생화는 여기저기 많았다. 몇 야생화를 소개한다.

▲ 산오이풀

오이풀은 잎을 뜯어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또는 수박냄새가 난다하여 수박풀이라고도 한다. 산오이풀은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산 중턱에 피는 오이풀이라 앞에 ‘산’이 붙었지 싶다. 노고단은 꽃을 볼 수는 있어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잎을 뜯어 비벼보진 못해 진짜 오이냄새나 수박냄새가 나는지 확인하진 못했다. 오이냄새, 수박냄새 둘 다 좋아해서 맡고 싶었는데... 

▲ 구절초와 조밥나물꽃

구절초(九節草)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하여 구절초라 부른다 한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저절로 자라 흔한 구절초는 가을에 뿌리째 캐서 말려서 약으로 쓴다고 한다.

조밥나물꽃은 민들레와 비슷한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이다. 어린 순을 데쳐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쳐 먹을 수 있어 이름에 ‘밥’이 들어갔나 생각할 수도 있다. 영어로 ‘Narrow-leaved Hawkweed’라는 것을 보면 '매의 풀'이다. 아주 오래 전에 매의 시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에게 먹인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 산비장이

봄에 피는 엉겅퀴와 비슷한 산비장이는 가을 산에 핀다. 산비장 이름은 조선시대 원님을 호위하던 ‘비장’에서 나왔다 한다. 줄기가 나무처럼 단단해서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꼭 비장처럼 산에 곧게 서있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수리취

우리나라 높은 산지에서 주로 자라는 수리취는 생긴 모습처럼 강인해서, 양지는 물론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어린잎은 떡에 넣어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다. 단옷날에 수리취 넣어 떡을 만들어 이를 수리떡이라 부르기도 한다.

▲ 둥근이질풀과 동자꽃

여름에 고운 연분홍색 꽃을 피우는 둥근이질풀은 전국 각지 고산지역에서 잘 자라는 풀이다. 잎 모양이 둥글어서 이질풀 앞에 둥근이란 말이 붙었는데 이질풀은 이질에 걸렸을 때 이 풀을 달여 먹으면 효능이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여름에 주홍색으로 피어나는 동자꽃은 슬픈 전설이 있는 꽃이다. 깊은 산속 암자에 기거하는 스님이 겨울 식량 준비를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바로 암자로 돌아가지 못하고 며칠 후 돌아가 보니, 동자가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 죽었다. 그 무덤에서 피어난 꽃이 동자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님을 기다리는 마음만큼 주홍이 진하고 동자의 기다리는 모습처럼 낮고 얌전하다. 꽃말은 ‘나의 진정을 받아 주세요’ 라니...

▲ 지리산 꿩의 비름

전국 각지 산과 들에서 8~10월에 피는 꿩의 비름은 아직 꽃망울만 있고 활짝 피지 못했다. 꿩의 비름이라는 말이 특이하다. 꿩이 많은 산 속에서 잘 자라며 꽃을 살짝 훑어주면 비듬처럼 꽃잎이 후드득 떨어진다 하여 이름 지었다 한다. 미인초라 불릴 정도로 예쁜 꽃인데 그 고운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워 백과사전에서 활짝 핀 꿩의 비름을 가져왔다.

▲ 사진출처 : 익생양술대전,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정보,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지리산은 벌써 살짝 가을 냄새가 난다. 서울도 비 한방에 그렇게 꺾일 줄 모르던 무더위도 물러가고 가을이 왔다. 베란다에 키우는 식물이 독한 무더위에 계절을 잃었는지 봄에나 보던 새잎을 내고 있다. 가뭄에, 무더위에 시달렸던 올 가을 산은 어떤 모습일까?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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