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심창식 편집위원l승인2018.09.12l수정2018.09.1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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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숫자가 펼쳐져있다. 숫자는 644. 이게 무얼까? 순간 시간을 알리는 숫자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6시 44분?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은 아침이고 내가 일어난 시간이 7시였는데 어떻게 시간이 거꾸로 갈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숫자를 들여다본다. 여전히 숫자는 644이다.

갑자기 미궁에 빠진 느낌이다. 숫자만 따져서는 답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처한 상황을 살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지? 나는 거실에 서 있고, 무언가의 위에 올라서 있다. 내가 올라서서 있는 게 무엇인지 내려다본다.

아! 지금 나는 체중계 위에 서있다. 눈금 체중계가 아닌 디지털 체중계다. 아뿔싸! 이 숫자는 나의 몸무게를 알리는 숫자가 아닌가? 나의 체중, 64.4킬로그램.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시계와 체중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면 내가 치매란 말인가? 하지만 내가 치매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시계와 체중계를 구별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눈앞에 펼쳐진 숫자에 몰입하다 보니 잠시 시간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왠지 모를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체중계를 보다 말고 왜 웃고 있어? 몸무게가 마음에 드나보네"

달리 할 말이 없는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친다.

"그러게. 몸무게가 딱 내 맘에 드네. 아주 적당하고 좋아"

▲ '물에 잠긴 여인'의 눈

아내에게는 웃어 넘겼지만, 나로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체중계 위에 올라선 사실을 잠시 잊고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몸무게의 숫자를 시간으로 착각하다니! 이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예전에는 결코 없었던 일이다. 이건 분명 무의식의 장난이다. 그렇게 말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나의 무의식이 나의 의식에게 경고장을 보내기라도 한 걸까? 그 경고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나의 무의식이 여지껏 내 인생에 어떻게 개입해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리학 이론에 근거하여 막연히 그러려니 느끼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이다. 나의 무의식이 앞으로 나의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무의식은 의식 아래에서 알게 모르게 활개를 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무의식에 정신과 마음을 의탁할 만큼 삶의 의지가 박약해진 건 아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무의식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나의 의식에게 말을 걸 기회를 말이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떤 말을 걸어올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또 다음에는 어떤 경고장(?)을 날릴지도 궁금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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