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실천시민행동의 평화 통일아카데미 DMZ 탐방 연수에서

9월 15일~16일 문광부와 천도교가 후원하고, 동학실천시민행동이 주관하는 DMZ 탐방 연수가 임진각과 임진각 안 민통선 안에 있는 분단의 상징인 여러 역사의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 전날까지도 연수 신청은 해 놓았지만 갑자기 누가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연수를 다녀오면 시간에 쫓길 것 같아 망설이면서 이요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수에 빠지면 안 되겠냐?'라는 애매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주최측에서야 계획된 행사이니 한 명이라도 다 챙겨가고 싶지 않겠는가? 뻔한 대답은, 마을회관이 추울지 모르니 좀 두툼한 겉옷도 한 벌 챙겨오라는 것이다.

이곳 임진강 건너쪽에 있는 DMZ는 학교에 근무할 때 아이들을 인솔하여 다녀오기도 하고, 환경운동연합과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이 공동 주관으로 열었던 DMZ 생태기행, 초록교육연대 민통선 안 겨울 철새 탐조, 이러 저러한 모임에서 여러 차례 다녀왔기에 그 내부 지역 구조에 대하여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하나도 생소한 것은 없다. 다만 이번은 '평화통일 아카데미' 차원에서 전국에서 모인 통일에 나름대로 큰 관심들이 있는 일반인들과 동행한다는 점이 생경한 것이다.

▲ 임진각에서 내려다 보는 임진강 철교와 자유의 다리

느즈막이 출발할 버스는 자유로를 달려 금세 임진각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보니 정영훈 선생을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들이 별로 안 보여 썰렁한 분위기였다. 잘 모르는 분들과 안면을 트기 위해서는 약간의 불편함도 없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느슨하게 만나는 모임이라 사람들 간에 꽉 조이는 연대감도 덜 했다. 그렇지만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마음을 다 잡고 이날 길잡이로 나선 유영호씨를 따라 임진강 철교와 자유의 다리가 내려다 보이는 임진각 옥상 위 전망대로 갔다. 거기에서 유선생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한 열강을 하기 시작했다.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이승만 정부와 국군 포로들과 인민군 포로들을 맞교환해서 넘어올 때 임시로 만들어진 다리가 '자유의 다리'이다. 이승만 정권이 정전협정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 다리에서 미군들한테 국군포로들을 인수 받았다." 등의 이야기, 대성동마을이라든가 민통선 안 지역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 있는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석자들끼리 첫 만남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우리은행원인 '배광환'씨를 만났다. 나는 배선생을 알지 못하는데, 이 친구가 나를 알아보면서 '김광철 기자님!"하고 인사를 걸어온다. 나는 잘 몰라서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지난 8.15때 김삼웅 전독립기념관장 강연과 이어진 참석자들의 분임별 토론, 발표 등의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기사화한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기사가 좋다고 한참 내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촛불혁명' 책자가 나왔는데, 돌아오는 9월 20일 출판기념회 때는 꼭 와서 취재를 해 달라는 것이다. 나도 거기 글이 실렸지만 전혀 그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추석 때 고향을 가기 위하여 그날 아침 비행기표를 구입하면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며 되물었다. 그날 나는 고향 제주로 추석명절 쇠러 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그날 저녁 꼭 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선생과는 안면을 트면서 자연스럽게 버스에서 옆 자리에 같이 앉아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DMZ 안에서의 탐방길에 새로운 길동무가 생긴 것이다. 겉모습을 보아서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나이도 들만큼 들었다. 여행길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여행길은 술술 넘어가서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편한 사람을 만나 여행길을 함께 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맞는 조그만 행복이다.  

그렇지만 이런 잠깐의 행복은 통일대교를 넘으면서 짜증으로 바뀌었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하여 선발대가 벌써 육로로 휴전을 넘었다는데, 우리 일행은 1박을 해야 해했다. 사전 탐방신청은 물론이고, 신분증과 우리 일행 한 명, 한 명을 다 대조하고 확인하더니 신분증을 맡겨야 들어간다는 것이다. 속으로는 '아니, 남북 통일시대에, 그것도 평화 통일 연수를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차를 세워놓고 까다롭게 해야 하는 거야?'했지만 금세 또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래,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해결이 되겠어. 이것 또한 분단 70년이 남긴 커다란 얼룩이지. 이런 절차가 없어지는 날 그 날이 진정으로 통일이 그날이 아니겠나?'라고 자위를 하였다. 오히려 이런 검문의 절차가 바로 평화와 통일의 시대로 가야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번 연수 참가자들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이었다.

 

▲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해마루 휴게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연수 참가자들

아침 9시 반 경에 출발했는데, 이러한 절차들을 거치다 보니 점심식사를 하기도 한 해마루촌 식당에 도착을 하니 12시가 가까웠다.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진 점심을 잘 먹고 맨 먼저 찾은 곳은 도라산역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 만들어진 역이다. 미국의 아들 부시가 이곳을 찾기도 한 곳이다. 관광을 온 외국인 등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잠깐 들러보고 도라산 전망대로 향했다.

도라산 전망대에는 전망대 안쪽은 과거와 달리 폐쇄되어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남북 평화, 통일의 시대를 맞아서 특별히 달라진 모습 중의 하나인가? 우리 일행은 망원경들이 놓여있는 공간에서 눈앞에 펼쳐지는 DMZ와 북녘의 개성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데 유영호씨는 열심히 안내를 한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성공단이다. 박근혜 시절, 한반도 비핵화를 외치면서 벼랑 끝까지 가는 대치 중에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몇 시간만에 문이 닫힌 개성공단인 것이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최순실의 조언이라하니 더욱 기가 막혔다.

▲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개성공단의 모습

개성공단 폐쇄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후유증들이 있었는가? 북의 남에 대한 불신은 넘지 말아야 할 루비콘 강을 건넌 꼴이 되어 남과 북의 관계는 최악을 향해서 치달았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있던 북의 노동자들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하루 아침에 파산선고를 당한 것이다. 그렇게 닫힌 공장들을 지금에 와서 돌리려고 해도 미국과 유엔의 북한 경제봉쇄로 열 수도 없다.

저 공장들이 가동되는 날 한반도에는 진정으로 따뜻한 봄 바람이 불 것이다. 그렇지만 바로 며칠 전 그 곳에 남북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과 북의 직원들이 그 건물에 근무를 하면서 남북문제에 대하여 상호 대사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니, 냉전 해체의 물꼬가 트인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겠는가?

어머니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송악산, 그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미륵산 줄기가 개성시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철책선 너머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길이 남북으로 뻗어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유영호씨는 "저 길이 노무현 대통령이 넘었고, 지난 평창올림픽 때 김여정과 김영철이 넘어왔던 길이다." 길은 왕복 2차선 정도로 좁아 보였다. 저 길이 왕복 8차선의 서울, 평양을 잇는 '경평고속도로' 와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의부고속도로'로 열리는 상상을 해 본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쳐진 철책들이 그 꿈을 딱 막아서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그렇지만 머지 않아 저 철책들도 걷워지지 않겠는가? 우리의 발걸음이 여기서 멈춰설 것이 아니라, 한 걸음에 달려가 개성 만월대도 둘러보고 선죽교도 둘러 보면서, 송악산을 올라 미륵산 줄기를 타면서 개성시내를 내려다 볼 날이 내 살아 생전에 오기나 할는지? 하지만 속된 말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니 기다려 보자. 그리고 그 꿈을 남북이 함께 꾸면 이 또한 성큼 다가올 것이다. 바로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는 길이 막혀있는 도라산 전망대에서 희미하게 펼쳐진 북녘땅을 하염없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개성의 여러 지역의 지명 등을 안내하고 있는 도라산 전망대의 그림판

이렇게 우리 '평화 통일 연수단'이 민통선 안 지역 탐방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후에 벌어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우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거대한 사건이었다. 문대통령이 의장대 사열에서부터 카퍼레이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의 평양시민들을 향한 연설 등은 물론이고, 최고의 압권은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 부부 및 수행원들이 백두산 천지를 오른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적대 청산, 상호 협력을 위하여 많은 합의를 이루어냈다.

우리 '평화, 통일 연수팀'이 냉전의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미 남북 실무자들은 이런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물밑 교섭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많은 합의들 중에서 눈길을 끈 것 중의 하나가 군사적 적대와 충돌 완화를 위하여 현재의 DMZ에서 남북이 각각 5km씩 비무장 지대를 넓히자는 합의다. 그날 버스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면서 배선생과 나눈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앞으로 군사대결을 종식시키고 평화의 시대가 오면 남북이 합의하여 현재 이곳 DMZ를 잘 보전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DMZ 내의 생태보전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서 냉전의 산물인 남북, 유엔이 군사 대치를 했던 군 시설 등도 그대로 보전하여 20세기 동서 냉전의 산물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을 하여 보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개인 소유의 땅을 사들여서라도 현재의 민통선 안 지역을 다 생태보전지역으로 묶어 보호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전부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개발을 제한하여 생태와 문화재 보전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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