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하루

왕유의 송원이사안서 送元二使安西를 다시 읽었습니다. 김해인 주주통신원l승인2018.09.28l수정2018.09.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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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립니다.

시인(詩人)은 아침 일찍 객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곳 위성(渭)은 서역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전송하는 곳입니다. 몸 성히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정을 나누는 곳입니다. 시인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으니 원씨네 둘째 아들입니다.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시인이 밤새워 뒤척였음은 알고 있습니다. 일찍 일어난 시인이 물끄러미 길을 내려다보고 있군요.

사람이 호흡하듯 길들도 아침이 오면 숨쉬기 시작합니다. 발걸음과 바퀴 소리를 호흡하고 먼지를 날숨 쉬듯 내뱉습니다. 길의 날숨이 안개처럼 일어나기 시작하면 비로소 성읍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하루가 시작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입니다. 시인은 안도하며 크게 숨을 내쉽니다.

위성(渭城)의 아침비, 먼지를 적시니 渭城朝雨浥輕塵

비가 그치자마자 시인은 숙소를 나섰습니다.

객사를 감싸고 자라난 나무들은 비를 실컷 마시고 난 뒤라 더욱 푸르고 싱싱해졌습니다. 버드나무는 그 속에서도 유난히 싱그러워 보입니다. 시인의 눈에도 한창 자라기 시작한 어린 버드나무의 잎들이 선명합니다.

버들가지를 꺾어 꽂아두면 혼자서도 잘 자랍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별의 징표로 버드나무를 꺾었습니다. 누군가 고향에서 가져온 버들가지를 이곳에 꽂았겠지요. 이런저런 이별들이 오래지 않았고 적지도 않았다고 곳곳에 보이는 버드나무가 말합니다. 시경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나 지난날 떠날 때 버드나무 무성했지요. 昔我往矣楊柳依依”

객사 푸르고, 버드나무 더욱 푸르구나 客舍靑靑柳色新

▲ 버드나무는 종종 이별의 표식으로 쓰였습니다.

사내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오직 술잔을 권하기를 즐겨합니다. 취기가 오르면 세상이 달라지고. 달라진 세상 속에는 두 사람만이 온전히 존재하기에 그러합니다.

술이 깨고 나면 한 사람은 홀로 먼 길을 나서야 합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오기 전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그런 까닭이겠지요. 이 시간은 분명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 다시 술 한잔을 권하네 勸君更進一杯酒

북으로 옥문관, 남으로 양관이 서 있습니다. 이 관문을 나서면 오랜 모랫길과 만납니다. 길은 멀리 서역으로 향하고, 우리는 그 길을 비단길이라 불렀습니다. 비단에 욕망을 싣고 나섰던 길에는 모래바람이 일고, 피바람이 일었습니다. 시인의 전송을 받은 그가 이 바람을 이겨내고 무사히 재회의 꿈을 꾸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전해진 것은 시인의 노래뿐이며, 그 노래는 수천 년 뒤 오늘, 안개로 흐릿해진 출근길의 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오늘 아침의 길 또한 아직 잠 깨지 않았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타향에서 일하는 고됨을 접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사람에 취하고 싶습니다. 친우를 전송한 시인이 취해서 객사로 돌아가듯, 나 역시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취해 숙소로 돌아갑니다.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오랜 친구 아무도 없다네 西出陽關無故人

- 늘 다니던 이 길 밖에는 정녕 아무도 없을까요? -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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