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처럼 반짝이는 눈물과 역사적 승리를 향한 여정

촛불혁명 시민들의 책 『촛불혁명, 시민의 함성』출판 일을 같이 하고, 거기에 명 사진을 제공한 정호천씨가 영화 허스토리 관람에 초대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일본군강제위안부들에 대한 다큐영화인 줄 알았다. 다큐라도 중대한 역사적 문제에 대한 것이니 기꺼이 보고자 신청했다.  

그런데 다큐가 아니었다. 진짜 영화였다. 내내 눈물이 났다. 하필 손수건이 없어져 안경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는데 촉촉이 젖었다. 어느 순간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큐라도 울었겠지만, 당사자들을 대신한 배우들의, 사실보다 사실스러운, 극적 사건보다 더 극적인 연기력에 완전히 감동했다. 

이 영화는 1992년부터~1998년까지 무려 6년, 파렴치한 일본 주류권을 들쑤시고 흔들어놓은 관부재판[시모노세키(下関)와 부산 간 재판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23회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대신하는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이야기; 나라가 망한 탓에 일본군들의 성노예 취급을 당한 우리 할머니들, 그 할머니들의 명예와 정당한 보상을 위한 문사장(실명 김문숙)과 변호사, 그리고 실무적인 일 하고, 지원하며 함께 싸웠던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에 눈물을 그치기 어려웠다.

당시 정부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1심에 그치기는 했지만,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군 강제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 처절한 허스토리가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잊혀 왔다는 게 또한 통탄스럽다. 당시 동남아 11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재판 소송 중이었으나 유일하게 관부 재판만이 일부 승소를 거두고 국가적 배상을 최초로 인정받았던 귀중한 재판이었다.
 
중견 배우 김희애가 관부 재판을 이끄는 원고단의 단장 ‘문정숙’ 역을 맡아 원숙한 연기를 펼쳤다. 어쩌면 그렇게 부산 말씨와 일본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서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시 잡혀가는 친구를 부르지 못한 어쩔 수 없었던 죄스러운 과거를 숨긴 채 아들과 힘들게 살아 온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은 연기파 배우 김해숙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주변의 시선을 피해 살아오다가 재판 과정을 통해 용기를 쏟아내는 대목에서도 어김없이 눈물이 샘솟았다.
 
그 외에도, 처절했던 삶만큼 거칠고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박순녀 역, 소극적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서귀순 역, 과거의 상처로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이옥주 역, 문정숙의 삶을 뒤흔드는 친구 ‘신사장’역, 문정숙이 운영하는 여행사 직원이자, 관부 재판을 돕는 류선영 역 모두 크게 느껴졌다.
극중 문정숙의 딸 역을 맡은 배우(이설)는 영화 속 수요집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실제 수요집회 자유 발언자로 등록해 발언을 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위안부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히고 진심을 담은 연기를 보여준다.

문사장이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사고를 치고 해고당하는 직원은 문정숙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재판 준비 과정에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당시 위안소 관리인 역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원고단 변호사 재일 교포 이상일변호사의 명 변론은 영화 ‘변호인’에서의 변호사를 연상 시킨다. 원고단이 재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인을 찾기 위해 일본 신문에 광고를 낸 결과, 재판에 참여한 박소득 할머니의 4학년 담임선생님 ‘수가야미 도미’가 법정에서 증언을 하게 되었다. 당시 진행됐던 전후 보상 재판 사상, 실제 사건과 관계된 일본인의 첫 증언이었다고 한다. 제자 박소득 할머니와 49년만의 재회와 법정에서의 진심어린 사죄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었고, 서러운 울음 울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의 종군강제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 분위기 때문에 문사장 등이 결혼 예단 이불을 일본까지 직접 들고 간 것도 인상에 남는다. 할머니들이 재판장과 숙소를 오가는 차 안에서 일본 군가를 부르곤 했는데, 치가 떨릴만한 일본 군가를 즐겨 부르는 걸 보며, 수년간의 생활과 간접 교육 영향력의 무서움을 떠올렸다.  귀한 영화를 만든 민규동 감독은, 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고발을 보고 가슴 속에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달게 되었다고 한다. 부제이자 슬로건이기도 한 ‘not history, but HERSTORY’는 남성 중심의 역사를 벗어난 역사 지향성을 드러낸다.

재판 당시 원고단을 지원했던 양심 있는 일본인 모임이라 할 수 있는 후쿠오카 후원회는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 후원 단체로 매 재판마다 숙식, 항공료 등 일체의 체류 비용을 지원하고, 6년에 걸친 재판 과정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했으며, 일본 내에 배포하여 재판의 정당성과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또한 김문숙 단장은 재판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를 기록한 ‘관부 재판의 기록’을 발간하여 역사적 진실을 묻히지 않도록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으로 모든 바람직한 일들이 가능해졌다. 박근혜정부가 아버지 박정희정권의 한일협정처럼, 불가역적으로 일본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이 아닌 굴욕적 합의를 했지만, 촛불정부에 의해 취소된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일본의 변화도 민주 정의 평화에 부합하는 정부로의 교체로부터 가능할 것이다. 남북이 단결하고 북미관계가 좋아져 함께 노력하면 일본을 변화 시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영화 HERSTORY는 이런 시대적 과제에 대한 인식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촛불혁명, 시민의 함성』 출판과, 그것을 기반으로 촛불혁명의 완성을 위한 <촛불혁명함성실천연대(가칭)> 일을 함께 하고자 하는 분들과 이 영화를 같이 본 것은 더욱 큰 의미가 있었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정영훈 주주통신원  jyhkjm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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