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민통선 안에서의 문화재 탐방

덕진산성, 허준 묘 등에서 김광철 주주통신원l승인2018.10.10l수정2018.10.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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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신은초 3학년 어린이들과 함께 찾아간 민통선 견학 때 자유의 다리, 온갖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리본들이 달려있고, 태극기가 걸려 있는 앞에서 통일을 염원하며 아이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

9월 16~17일 1박 2일 동안의 파주 민통선 안에서의 '평화 통일 연수' 첫째 날 오후 덕진산성을 찾았다. 전에 이곳 파주 민통선 안 지역을 몇 차례 찾았지만 '덕진산성'이 있다는 것도 알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성터가 최근에야 발굴이 이루어지고 사적으로 등록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 것이다.

덕진산성은 2007년, 10월 22일 경기도 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월 19일 대한민국 사적 제537호로 승격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논밭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를 1km 정도 걸어 올라가니 산성터가 나왔다. 산성이래야 해발 65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올라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산성이라고 하여 거대한 성터가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한창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일부 남아있는 성터에는 여느 성들보다 크지 않은 돌들이 다진 흙과 함께 성벽을 쌓은 것들이었다.

▲ 덕진산성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
▲ 발굴과 보수공사 한창인 덕진산성

덕진산성은 고구려 때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신라를 거쳐 내려오다 조선 광해군 때는 외성을 쌓아 임진강 일대를 방어하는 산성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산성 위에 올라서 사방을 조망하면 성의 앞으로는 임진강 푸른 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남쪽으로는 천연의 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서북쪽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파르기 때문에 적의 진입이 용이하지 않은 지형이어서 충분히 산성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만했다. 지형이 행주산성이 연상되게 하였다.

산성에 올라서 임진강이 초평도를 돌아 서해로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풍광이 참 아름답게 다가왔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파주의 넓은 들판도 시야에 들어와 풍광을 엮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이렇게 덕진산성을 둘러본 다음 우리 평화통일 연수단이 찾은 곳은 동의보감의 저자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 선생이 묘소였다.

▲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의 묘소 안내판

1991년 9월 30일 허준 묘소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교수의 10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이 교수는 한 통의 간찰(편지)과 양천 허씨 족보상에 나타난 기록‘御醫扈聖功臣 崇祿陽平君 贈輔國撰東醫寶鑑 婦人安東金氏 墓長湍下浦廣巖洞 巽坐雙墳’(어의호성공신 숭록양평군 증보국찬동의보감 부인안동김씨 묘장단하포광암동손좌쌍분)-‘어의를 지냈고, 호성공신에 올랐으며, 숭록양평군에 봉해졌다. 동의보감을 지어 국가에 도움을 줬다. 부인은 안동 김씨며, 장단군 하포리 광암동에 부인 김씨와 함께 손방향에 쌍분으로 있다.’-

<손좌(일부 서적, 인터넷, 안내판 등은 아직도 선좌로 오역되어있다)란 묏자리를 쓸 때 보는 12지와 4괘(간·손·곤·건)로 구성된 16방위 중 건향으로 북서방향이며 이는 동남 방향에 누워 북서쪽을 바라봄을 일컫는다. 쌍분이란 부부가 나란히 모셔져 있음이다. 여기에 ‘남좌 여우’ 즉 앞에서 마주했을 때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이다. 따라서 전 열의 두 봉분의 좌측이 허준, 우측이 부인 그리고 상단의 봉분은 생모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준의 생부는? 아마도 휴전선 너머 양천 허씨 선산에 모셔져 있으리라 추측된다.>을 토대로 험한 민통선을 찾아 4백년 만에 허준의 실체를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끔 했다. 발견 당시 봉분은 이미 도굴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음에도 높이 113㎝, 너비 41㎝, 두께 12㎝의 상단 1/4쪽이 떨어져나간 묘비(묘표) 1기와 문인석 2개, 상석 1개, 향로석 1개가 각각 출토, 발견됐다. 이 중 묘비에서 허준묘소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6글자가 판독이 가능했다. 이는 陽平(君), (扈)聖功臣, (許)浚 등이다.

이로써 허준묘소임이 입증되고 주변정비를 마친 2007년에 이르러 일반에 공개가 되었으며 동의보감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출처] <'파주 DMZ의 생태' 블로그>  * 오늘날의 DMZ-⓶구암 허준묘소 *|작성자 구름

▲ 2012년 신은초 3학년 어린이들과 찾았던 허준 선생 묘소

 

▲ 2012년 서울신은초 3학년 어린이들과 찾은 허준 선생 묘소 앞에서의 기념 촬영
▲ 2012년 신은초 3학년 어린이들과 찾은 묘소 견학

허준 선생 묘소는 2012년 서울신은초등학교에 근무를 하면서 3학년 담임을 맡아 'DMZ 견학'을 왔을 때 이미 한 번 왔던 곳이라 새롭진 않았다. 그 때와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묘소를 둘러보는데 이번 연수에 참가한 사람들이 '쌍분 중 어디가 허준 선생 묘소냐?", "왜 그 동안 허준 선생 묘가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을까?" 등의 의문점을 갖으며, "허준 선생이 서출이라는 한계 때문에 높은 지워에 올랐지만 선산에 묻히지도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이렇게 따로 묻혔다가 후대에 누군가 이를 시기하여 묘소를 훼손하지 않았을까?" 등 각자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이야기를 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 호평도의 통일 사과밭에서 임진강을 등지고 한 컷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통일 연수 참가단

다음 날은 호평도에 자리잡고 있는 통일 사과 밭 견학을 갔다. 논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빨간 사과들이 먹음직스럽게 잘 익어가고 있었다. '문화공간 온'의 지배인 일을 하면서 이번 연수를 기획, 주관하고 있는 '동학실천시민행동'의 이요상 대표가 올해 이 농장을 임대하여 사과 재배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는 초평도의 통일 사과밭
▲ 통일 사과밭 길에서 길가에서 우릴 반갑게 맞고 있는 귀화식물인 미국나팔꽃

떨어져 있는 사과를 주워서 한 개씩 먹어보기도 하고, 출하를 위하여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이 건네주는 사과를 한 개씩 받아 먹으며 이번 연수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김광철 주주통신원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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