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깜깜한 밤중도 아니었고, 으슥한 골목이나 인적이 드문 오래된 산성의 외진 곳도 아니었다. 엄연히 아침 해가 밝은 아침이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나의 거처였다. 드라큘라가 나타나기에는 물질문명이 너무 발전했고, 설사 문명의 그늘진 곳을 틈타 한밤중에 등장했다 하더라도 벌써 사라졌을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내가 드라큘라를 보았다고 한다면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자기 주제도 모르고 엉뚱한 시간에 출현한 드라큘라가 잠깐 정신이 나간 걸까?

그렇다고 꿈을 꾼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드라큘라가 나를 유인한 것도 아니다. 영화 속의 드라큘라는 숲 속 깊은 고성(古城)으로 미녀를 유인하여 와인을 곁들인 진수성찬으로 극진히 대접한다. 그 때까지 미녀의 피는 36.5도의 정상 체온에 머물러 있다. 드라큘라의 흡혈본능을 자극하기에는 아직 피가 차다. 

창백한 달빛이 비치는 테이블 주위로 은은하게 촛불이 번득이는 가운데 드라큘라의 격정적인 애무와 뜨거운 키스에 황홀해진 미녀는 온 몸이 달아오르고 피가 끓어오른다. 미녀의 목을 관통하는 피의 유속이 빨라지고 목선의 파란 혈관이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회가 동한 드라큘라가 뾰족한 송곳니로 미녀의 목을 냅다 물고, 미녀는 자지러지며 혼절한다. 영화에서 보는 전형적인 드라큘라의 모습이다.

드라큘라는 만족한 듯 입가에 피를 주르륵 흘리며 치아 위 열의 두 송곳니를 드러낸다. 바로 그 모습이었다. 드라큘라가 화창한 이른 아침에 나에게 나타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놀랄 내가 아니다. 예기치 않은 시간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나는 드라큘라의 모습은 나름 신선하기까지 하다.

2. 겨

때는 아침이고 장소는 내가 사는 아파트다. 내가 불리할 게 전혀 없지 않은가? 나의 홈그라운드에 제 발로 찾아온 드라큘라를 내가 무서워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결정적인 것은 그가 거울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거울 속에 갇힌 자가 나에게 해를 끼칠 일은 손톱만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거울 속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가에는 정체모를 액체를 흘리면서 말이다.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명색이 드라큘라인데 망또 하나 안 걸치고 겉옷조차 입지 않았다. 방금 자다가 일어났는지 러닝속옷에 팬티차림이다. 거울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이라도 잔 걸까. 머리도 부스스하고 세수도 안 한 것 같다.

자신의 본분을 잊은 생존형 간첩이 있다고 하더니 흡혈본능을 상실한 생활형 드라큘라가 있는 걸까. 문명에 밀려 도시 언저리를 배회하다가 인간의 피가 그리운 나머지 저런 모습으로라도 인간의 살 냄새를 맡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화장실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희미한 전등불이 비칠 뿐이다. 음습한 환경이 드라큘라가 스며들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혹시 그 적응 과정에서 흡혈본능을 상실한 건 아닐까. 드라큘라의 눈빛을 보니 피에 굶주려 있는 것같지는 않다. 적어도 나를 탐욕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오싹한 느낌도 없고 소름끼치는 모습도 아니다. 거울을 뜷고나와 나의 목을 물을 확률은 현재로선 제로이다. 새로운 존재의 출현은 서로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드라큘라와 나의 눈싸움이 시작된다. 나만큼이나 눈빛이 강렬하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다.

3. 레

자세히 보니 드라큘라의 입가에 흐르는 액체는 붉디붉은 피가 아니다. 고농도의 하얀 액체다.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드라큘라의 식성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인간의 피를 대체하는 드라큘라용 신물질 액체가 개발되어 이것에 길들여진 신형변종 드라큘라가 탄생하기라도 한 걸까?

거울 속의 드라큘라가 작대기로 자신의 입 속을 여기 저기 쑤셔대고 있다. 입 속 양 옆으로 길게 집어넣기도 하다가 수직으로 넣다 빼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손을 움직인다. 웃음 콘테스트에 출현하기라도 한 것처럼 웃는 표정을 짓는다. 입을 헤 벌리기도 하고 허탈웃음을 짓기도 하며 개그맨처럼 입을 크게 벌려 영구 연기를 흉내내기도 한다. 웃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소리 없이 웃는 드라큘라. 하얀 액체는 여전히 그의 입가에 흐르고 있다. 그가 거울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는지 혹은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사는 동안 인고의 세월을 살았는지 아니면 영광의 생애를 살았는지 도무지 알 길은 없지만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인다.

표정 또한 낯설지 않다.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보기도 하고,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기라도 하다는 듯이 지그시 쳐다보기도 한다.

▲ 거울 속의 드라큘라

그가 하얀 액체를 손으로 닦는다. 마치 그냥 두면 액체가 흘러내려 자신의 심장을 녹이기라도 하는 듯이 성급히 닦아낸다. 그리곤 다시 작대기를 입 안에 넣고 열심히 좌우로 움직인다. 작대기에 달린 솔이 그의 치아를 얼마나 청결하게 해줄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신념에 차서 그 일을 한다. 

거울 속 드라큘라가 입 속으로 이리 저리 넣었던 작대기를 끄집어내더니 수돗물로 작대기에 달린 솔을 씻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헹군다. 드라큘라가 인간이 하는 짓은 다하고 있다. 의식을 치르듯이 볼 일을 마친 드라큘라가 개운한 모습으로 입가에 연한 미소를 짓고 있다. 

 

4. 온

이유와 기원은 모르겠으나 화장실에는 늘 거울이 있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습관적으로 거울을 본다. 양치질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무심히 보다가 그 모습에서 드라큘라의 형상을 본 것은 어느 초여름 날의 아침이었다.

그 날 이후 드라큘라는 매일 아침 양치질할 때마다 거울 속에서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눈빛으로 보기도 한다. 어렸을 적에 가뜩이나 두 송곳니가 뾰족하여 '드라큘라 이빨'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무의식이 거울 속의 드라큘라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저녁에 양치질하는 내 모습에서는 드라큘라의 형상이 연상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얼까? 아마도 하루 일과를 마친 안도감에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의무감을 내려놓다보니 나의 모습조차 안중에 없어서가 아닐까. 혹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게 될지 설레는 마음이나 기대감이 사라지고 자아의식이 희박해져서일 수도 있다.

아침에 거울 속에 있는 그를 대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밤새 편안하게 잠을 잘 잤을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낼까? 궁금한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물어볼 수 없다. 그를 어두침침한 화장실 거울 속에 홀로 남겨 두고 떠날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의 또 다른 자아와 헤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매일 아침 그는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마치 하루를 무사히 잘 지내고 내일 또 보자는 격려의 인사 같기도 하고, 자신을 만나고 싶거든 언제든 오라는 정중한 초대의 미소 같기도 하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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