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온 창간축하 기고]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편집자 주] 이재정 / 한겨레 창간 주주이고 지난해 제16대 경기도 교육청 교육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딴 그는 성공회대학교 총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낸 책으로 <한국교회 운동과 신학적 실천>(2000)과 산문집 <사이와 사이에서>, 함께 지은 책으로 <한반도 평화의 길>(2003)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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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1

우리나라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고 상상해 보자. 동네사람 모두가 다 가족 같은 이웃이 아닐까.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고 함께 살아가는 따듯한 마을. 서로 싸우기도 하겠지만 매일 마주 바라보며 살아가려면 이내 화해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 어느 집에서 귀한 딸이 시집이라도 간다면 온 동네가 대들어 준비하는 그야말로 동네잔치가 되겠지. 어디 그뿐인가. 뉘 집에선가 별식이라도 만들면 그 구수한 냄새가 온 마을을 감싸 돌 것이며 여기저기에서 몰려들어 결국은 큰 상 차리고 마당에 둘러 앉아 그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이런 상상을 '우리나라가 만일 백 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제목으로 전호성교수(강남대)가 책을 만들었다. 필자는 도넬라 메도스의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 인구를 그대로 축소시켜 하나의 작은 마을이라고 할 때 어떤 현상일까 하는 것을 글로 나타냈다.

우리나라의 인구를 비례로 환산한다면 100명이 사는 이 마을의 구성원은 어른이 73명이고 어린이가 16명이며 노인은 11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혼을 해서 아내와 남편이 있는 사람이 모두 48명이나 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26명이나 된다. 이혼을 하였거나 배우자를 잃고 혼자 사는 이들도 10명이나 된다. 집집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자기 집을 재산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54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마을에도 살 곳이 아예 없어서 노숙을 하는 사람도 3명이나 되지만 반면에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53명, 그 가운데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37명이나 된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마을에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5명이나 되고,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2명이나 되며, 마을의 도움이 없으면 전혀 살아갈 수 없는 어려운 사람도 3명이나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어른은 단 한명 밖에 없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0명 가운데 단 한 명. 그 한 명이 바로 이 마을을 그래도 살맛나는 마을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한 명 마저도 없다면 아무리 가족같이 옹기종기 함께 산다 해도 이 마을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아닐까.

한겨레신문 그리고 한겨레:온을 볼 때마다 100명이 사는 마을에 그 한 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있어서, 그런 신문이 있어서 그래도 그 마을의 생명력이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이재정 /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ha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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