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폭격기 이야포 해변을 낮게 날아

 

       권말선

 

이야포 해변의

멍든 조약돌들은

총 맞고 바다로 픽 픽 쓰러지던

그 사람들 응그러 쥔 주먹 같소

바다를 낮게 날며

기관총 마구 쏘아대던

미군 폭격기 향해

말아 쥔 주먹 말이오

 

이야포 해변을

출렁이는 파도는

내 귀엔 어째

그 사람들 울음소리 같소

뭍으로 도망쳐오지 못하고

맥없이 바다로 떨어지던 사람들

심장에서 왈칵왈칵 쏟아지던

검붉은 눈물 말이오

 

이야포 해변에

노을이 드는 것을

차마 고개 들고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이틀 밤 사흘 낮 동안

바다에서 화장된 목선

내 부모님과 학살당한 사람들의

주검이 떠올라서요

 

그 때가 1950년 8월 3일

정부가 시켜서 서울 사람들

몇백 명이 난민선을 탔더랬소

부산으로 충무로 떠돌다 여기

여수 안도리 이야포까지 왔는데

짐을 풀 새도 없이 그만

미군 폭격기에 무참히 당했소

근처 횡간도 앞 두룩여의

조기잡이 배에서도 20여 명…

인민군 배인 줄 알았다지만

그렇게 낮게 날면서야

어찌 민간인을 몰라보겠소

 

미군들은 전쟁을 빙자해

민간인에게도 마구 총알을 쏴댔고

68년 동안이나 그 놈의 총알이

내 심장에도 무시로 꽂히는데

학살자 미군도 정부도

무릎 꿇지 않고 외면하니

억울한 주검들만 저 바다에서

68년 동안을 불타고 있지 않소

 

열 여섯 살 그 때 이후 해마다

180명의 무덤인 이 바닷가에 서서

폭격기에서 쏟아지던 총알

난민선의 절규를 들으며

팔십을 훌쩍 넘겨 온 이 늙은이

마지막 남은 소원 하나 빌어보오

한 맺힌 넋 다 달랠 수 있도록

추모공원 하나 만들어 줬으면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이름 불러 보며

붙잡고 통곡할 비석이라도 세워줬으면…

 

▲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으로 180여명이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에게 제사상이 차려진 모습(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편집 : 양성숙 편집위원

권말선 시민통신원  kwonblues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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