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학회 개혁을 촉구하며

2018년 6월 30일 한글학회 총회에서 회칙을 개정하였다. 2018년 3월 정기 총회에서 한글학회 개혁을 촉구하는 박용규 박사의 제안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박용규 박사(고려대 한국사연구소 교수)는 현재 한글학회 국민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이다. 개정된 회칙 가운데 한글학회 발전을 위해서 특기할 만한 조항은 '정회원 자격의 범위를 넓힌 점'이다. 그리고 한글학회 정회원이 평의원을 직선제로 선출할 수 있도록 개정한 점이다. 그 전까지 30년 동안 평의원은 이사회의 추천으로 평의원회에서 인준하였다. 다시 말해 한글학회 이사회에서 찍힌 사람은 평의원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평의원회에서 다시 이사를 선출하는 회칙이었다. 이사가 평의원을, 평의원이 다시 이사를 돌아가면서 선출하는 비민주적인 회칙이었다. 11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학회로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학회에 걸맞지 않은 한글학회의 민낯이기도 했다.

한글학회는 30년 동안 회장, 부회장, 이사 등 임원과 평의원을 총회 직선으로 선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한글학회 정회원은 회장, 이사 등 임원과 평의원을 직접 선출할 권한이 없었다. 그것은 1988년 직선제 회칙이 허웅 이사장 체제에서 간선제로 바뀐 탓이다. 그전까지 한글학회 임원 선출은 정회원 직선제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어학회가 1949년 한글학회로 명칭이 바뀐다. 임원 선출 직선제의 전통은 초대 한글학회 이사장인 최현배 선생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지속하였다. 그러나 1988년 회칙개악은 한글학회의 훌륭한 전통을 부정했다. 그것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실인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민주주의 시대정신에도 역행한 처사였다. 더구나 1988년 회칙개악에선 평의원제를 신설하여 정회원의 권한을 축소시켰다.

나아가 2006년 회칙개정에선 정회원 자격을 더욱 제한하였다. '국어학 ․ 언어학이나 국어 교육학, 또는 이와 관련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이로서 공인된 논문을 발표한 실적이 있는 이'로 제한한 것이다. 우리말글인 한글연구 뿐만 아니라 우리말글을 지키고 아름답게 가꾸며 널리 보급시킨 한글운동 관련자를 제외시켰다. 이는 한글학회의 뿌리인 주시경 선생의 '국어연구학회'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주시경 선생은 밤낮으로 한글을 연구하여 한글을 널리 보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널리 대중화한 선구적 역할을 감당했다.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은 구한말 선교 차 우리나라에 들어 온 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일찍이 성경 번역에 착수했던 선교사 게일은 우리 한글을 보고 신이 내려준 축복의 문자라며 극찬했다. 헐버트 역시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극찬한 헐버트.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 사건 당시 한국의 자주 독립을 도왔던 미국인이다. 그는 외국인 가운데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인물이다.

(종로구 당주동 주시경 마당 소재. 출처 : 하성환)

한자세계를 한글세계로 바꾼 1세대 인물은 주시경 선생이다. 그는 상동감리교회 내 조선어강습원에서 김두봉, 최현배, 김윤경, 권덕규 등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냈다. 상동교회를 주 무대로 주일 오후 2시 국어문법 강연과 평일 저녁 국어 야학반을 개설해 노동청년들을 대상으로 한글 대중화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리고 한글강습을 위해 틈만 나면 국어책을 보따리에 담아 지방 출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힌샘 주시경을 '주보따리'라고 부른 이유이다. 제자들 또한 여름방학을 이용해 스승 주시경의 정신을 이어 전국 각지를 다니며 한글보급에 전념하였다.

▲ 1900년대 신민회 창립, 헤이그 특사 사건 등 민족운동의 요람이었던 상동감리교회 전경.

주시경의 한글보급은 상동교회를 주 무대로 전개되었다.(남대문로 회현 역 근처. 출처 : 하성환)

따라서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 60년 넘게 한글연구자 뿐만 아니라 한글운동가들도 한글학회 회원이 될 수 있었다. 한글학회가 민족학회로서 크게 융성했던 것은 바로 다양한 인물들을 한글학회로 포용하여 우리말글 살리기에 노력한 결과이다. 한글타자기를 발명한 공병우,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 일제강점기 3대 항일변호사 애산 이인, 시인 신석정, 윤동주의 후배이자 국문학자 정병욱, 그리고 아동문학가이자 영문학자 정인섭 등이 모두 한글학회 회원이었다. 한글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을 망라하였고 포용하였다. 그 결과 한글운동은 풍성했고 우리말글 생활이 빛났다. 따라서 2006년 개악된 회칙을 12년 만에 다시 재개정함으로써 한글학회에는 한글연구 뿐만 아니라 한글을 사랑하고 한글을 널리 펼치려는 한글운동가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회칙 개정으로 한글학회는 정회원들도 회칙개정을 발의할 수 있게 되었다. 매우 고무적인 변화이다. 과거 이사회에서 독점했던 회칙개정 발의 권한을 정회원들에게도 부여한 것이다. 정회원이 회칙개정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한글학회의 주인인 정회원의 권한을 회복시킨 조치로서 진일보한 변화이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한글학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도부는 바로 회장, 부회장, 이사 등 한글학회 임원들이다.

따라서 임원 선출을 평의원이 아니라 한글학회의 주체인 정회원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인 한글학회의 본모습이자 민족학회로서 생동감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그러할 때 한글학회 개혁은 완성된다. 그 개혁의 힘을 바탕으로 10년 남짓 혼탁해진 우리말글살이를 말갛게 씻어 내야 한다. 그 위에 우리 토박이말을 다시 되살리고 한자 섞어 쓰기를 강조하는 한자병기의 준동을 물리쳐야 한다. 회장, 부회장, 이사 등 임원 선출은 한글학회가 마지막으로 수행해야 할 남은 개혁 과제이다. 한글학회가 거듭나는 것은 우리말글살이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말글살이의 빛남은 오롯이 민족의식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격변하는 세계화의 혼돈 속에서 우리 정체성을 지켜내는 제1의 과제는 우리말글을 아름답게 가꾸고 되살리는 것이다. 한글학회는 하루빨리 정회원 직선으로 회장 등 임원을 선출하도록 회칙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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