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면서 몬트리올 날씨가 선선해졌다. 맑았던 여름과 달리 몬트리올 가을은 비도 많이 왔고 나에겐 무척 바쁘고 힘겨운 계절이었다.

9월 초부터 나는 연구비 신청을 위한 계획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9월 말 어느 바쁜 날 오후, 실험실에서 정신없이 막바지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온 박사과정 학생이 지나가며 물었다.

“지산, 지난 주말에 힘든 일 있었다며... 이젠 좀 괜찮아?”.

나는 그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응?? 나한테 힘든 일이 있었다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오히려 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나한테 되물었다.

“응... 주말에 안 좋은 일 있었다고 들었어. 그래서 괜찮은가 해서...”

나는 한 10초간 열심히 생각했다. 어떤 안 좋은 일이 있었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물어보았다.

“음... 안 좋은 일 있었다는 거. 나 맞아?”

“응, 너… 집에 도둑 들었다면서”

나는 순간 아차 했다. 맞다! 지난 주말에 도둑이 들었었다.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어먹을 수 있지? 나 스스로도 놀라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하하... 맞아. 도둑 들었어. 계획서 쓰느라 정신없어서 완전 잊고 있었네.”

“그래... 도둑 들었다고 전해 들어서 걱정했는데... 벌써 잊은 거 같아서 다행이다.”

“으응... 처음 며칠은 넘 충격적이어서 생각이 났는데. 이제는 괜찮아. ㅎㅎㅎ 나는 보다시피 다치지 않고 멀쩡하거든”

“ㅎㅎㅎ 지산 너처럼 사람들이 단순하면 좋을 텐데. 암튼 계획서 덕분에 잊게 되어 다행이네. 계획서 잘 마무리 해”

지난 9월 20일 도둑이 들었다. 일 끝나고 친구들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고 늦게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모든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옷과 물품들이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순간 ‘도둑이 들었구나’ 생각하면서도 이게 꿈이기를... 제발 꿈이기를 바랐다. 내 방에 들어가서 서랍을 보니 모든 액세서리와 지갑이 없어졌다.

나는 다급하게 경비원에게 연락을 했고, 경비원이 경찰을 불렀다. 경비원이 우리 집에 와서 괜찮으냐고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몬트리올에서 산 지 불과 5개월도 안 되었고, 혼자 살고 있었기에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곧 경찰이 오고 기초 조사가 시작되었다. 집안을 다 살핀 후, 몇 시 쯤 집에 도착했는지, 집에 왔을 때 상황이 어땠는지, 어떤 물건이 없어졌는지.. 등등 물었다. 도둑은 뒷문을 따고 들어왔다고 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CCTV가 있으니 뒷쪽으로 들어온 거다. 그리고선 혹시나 추가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하고 조사번호만 달랑 주고 가려 했다.

내가 도둑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애처로이 묻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하며 보통 한 번 이상은 도둑이 들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리고 몬트리올 도둑 대부분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고 단순마약쟁이들이 돈이 급해 들어오는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가버렸다.

경찰은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 했다. 너무도 형식적이고 미미한 대응에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어 추가 잠금장치만 경비원에게 부탁하고 그날 밤은 친구 집에 가서 잠을 청했다.

그 다음날 부모님께 일어난 상황을 다급하게 알려드렸더니 내 예상과 달리 엄마가 굉장히 황당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도 지산아, 네가 다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니. 집주인이 뒷문에 잠금장치도 추가로 달고 앞문 잠금장치도 더 강화해주고, 아파트 뒤쪽에 CCTV도 달아준다고 하니 얼마나 잘 되었니. 이번 일로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되었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하렴.”

난 이런 엄마 말씀이 서운했다. 도둑이 든 거에 감사해라? 얼마나 역설적 생각인가. 왜 우리 집이고... 왜 나인가... 하고 모든 걸 원망스러워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너무 냉정해보여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어. 난 지금 너무나 속상하단 말야. 감사하라니!! 감사 못해!!”

그렇게 전화통화를 마치고, 엄마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엄마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없었다. 나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며, 없어진 건 다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인 액세서리와 지갑뿐이었다. 그 중 하나는 대만에서 산 정말 아끼는 소중한 지갑이었지만....

그렇게 차츰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아무런 해가 없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도둑이 들었던 사건이 별 거 아닌 것으로 여겨졌고, 다시 연구계획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선 석·박사과정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연구비를 주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선 다양한 문서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연구계획서다. 연구계획서는 어떤 연구를 할 건지,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수행할 건지, 이 연구가 어떻게 과학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나의 어떤 면이 이 연구를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는 문서다.

연구비는 보통 일 년에 2000~5000만 원 정도이며 3~4년 동안 지원해준다. 연구비를 받게 되면 매년 어떤 연구를 수행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보고해야 한다. 연구비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석·박사과정부터 연구비를 신청하고, 관리하고,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연구계획서에는 보통 다른 연구원들과 협업연구가 들어가는데, 이런 협업연구를 통해 다른 영역 연구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회도 갖게 한다. 이는 학생들이 박사 졸업 후에 바로 주도적으로 독립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기획능력을 길러주는 아주 유용한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석·박사과정 학생이 연구비를 직접 신청할 기회가 매우 적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나 같은 경우도 2년 석사과정을 하고, 석사 후 3년 실험실에서 일하면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다. 논문은 수차례 써보았지만, 계획서는 논문하고 달라 어려움이 많았다. 내 연구를 뽑아주면 생명연구에 어떠한 도움이 될 지를 설득하는 글은 써본 적이 없었기에,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한 달 내내 주말 없이 계획서 작성에 몰두했다.

다행히 호랑이선생님로 소문난 ‘스테판’ 지도교수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세심하고 칼 같은 지적으로 계획서 작성에 필요한 중요 포인트를 익히게 되어, 무사히 계획서를 제출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너무나 필요한 훈련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는? 1년 뒤에 나온다. ㅎㅎㅎ

▲ 친구가 내 세포 사진에 나를 그려 넣었다. '세포들아 지산이 말 잘 들어라'는 의미로 obey를 넣었다고 한다. 9,10월을 꿋꿋이 이겨낸 내 모습 같아 마음에 든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몬트리올의 선선한 날씨가 나뭇잎에 색깔을 물들여 놓았다. 요새는 쌀쌀하다 못해 조금은 추운 듯한 날씨에 나뭇잎은 색깔을 바꾸고 겨울을 준비한다. 나도 터프한 9월과 10월을 보내며 조금 더 단단하고 강인해진 것 같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은 것을 바꾼 한 달이었다.

▲ 비버 레이크에서 본 단풍
▲ 비버 레이크에서 본 단풍
▲ 비버 레이크에서 본 단풍
▲ 비버 레이크에서 본 단풍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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