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의 기원

은행이 노랗게 물들었다.

석탄기의 나무들은 수명을 다하고 쓰러졌다. 산소농도 3배, 최장 2m에 달하는 절지류가 돌아다니던 시기, 그때의 거대했던 나무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마지막 몸체 그대로 땅에 묻혔다. 딱딱했던 껍질, 셀룰로스를 분해할 효소를 가지고 있는 생물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땅에 묻힌 나무들은 그대로 까맣게 묻혀 산업혁명 때까지 잠들었다. 석탄기 이후의 나무들은 비로소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갔다. 은행나무의 선조들 또한 이 시기에 출현했다. 그것은 마치 올림푸스 산의 신들이 티탄을 이기고 길이길이 구전되는 제국을 세운 것을 연상시킨다.

건물이 흔들렸다.

'쿵'하는 굉음과 함께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알고 있다. 저곳에서는 흑백 브라운관이 만들어졌고 곧 컬러 브라운관으로 바뀌었다가 LCD 패널을 양산했었다. 한때 2천여 명에 달하는 직원들, 어리거나 젊은 아가씨들은 정문을 나서며 깔깔거렸다. 포화된 소비는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돌렸다. 부서져 버린 낡은 건물이었던 것의 잔해는 굴착기에 올려져 트럭에 실린다. 수명을 다한 철근들, 시멘트벽, 아스팔트의 부스러기들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안다. 몇 천 년 전의 도자기 조각들이 형태를 유지하고 살아남은 것처럼, 잔해들 또한 숨 쉬는 것 사이에 묻혀 다시 드러날 때를 기다릴 것이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이 건설되었다.

그때쯤이면 나 역시 이곳을 떠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나무를 근거 삼아 문명을 세웠다. 사체에서 기름을 뽑고, 살아있는 것들의 편리를 위해 다시 '멸종'이라 부르는 죽음을 만들었다. 수명을 다한 브라운관, LCD 패널, 바뀌는 유행과 발전해가는 편리를 따라잡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쏟아붓지만, 그 결과물은 시간이 지나며 곧 수명을 다한다.

오로지 닭의 개체 수만이 인간의 개체 수를 능가한다. 멀고 먼 훗날, 어떤 무엇인가가 인간의 폐허를 이용해 다시 무엇인가를 세우게 될 것인가.

▲ 현존하는 은행나무는 신생대 에오세의 유산이다.

은행이 노랗게 물들었다.

물감도, 픽셀도 아닌, 랜덤으로 뿌려진 무수한 엽록소들이 시차를 두고 사라지며 뿜어내는 빛깔은 경이롭다. 그 빛깔은 대략 오천만 년 전부터 빛났었다. 인류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이던 시기, 우리는 이 은행잎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할 수 있을까?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해인 주주통신원  logca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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