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아가씨야, 박꽃아가씨야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축행사 이미진 주주통신원l승인2018.11.01l수정2018.11.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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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아가씨야, 박꽃아가씨야

---2018년 10월 28일 17시, 장소: 목월생가 //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축행사(주최: 국제PEN한국본부, 경주시 // 주관: 한국문인협회 경주지부)

흰 옷자락 아슴아슴 / 사라지는 저녁답 / 썩은 초가지붕에 / 하얗게 일어서 / 가난한 살림살이 / 자근자근 속삭이며 / 박꽃아가씨야 / 박꽃아가씨야 / 짧은 저녁답을 / 말없이 울자

박목월의 시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박꽃> 전문이다. 목월선생의 정치성을 두고 왈가왈부 말들이 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읽고 나면 시대정신의 평가는 저만치 미루고 싶어진다.

시를 읽는 순간, 들에서 돌아온 무명의 흰옷자락들이 골목 어름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저녁답의 소소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하얀 모시적삼처럼 결이 올올한 박꽃은 저녁답에 핀다. 여름의 긴긴 저녁답을 유독 짧다고 쓴 건, 허기가 그만큼 급히 밀려온 탓이리라 짐작된다. 끼니때가 무서웠던 가난의 체념을 선생은 그냥 ‘말없이 울자’고 한다. ‘말없이 울어라’도 아닌, ‘말없이 울었다’도 아닌, ‘말없이 울자’는 선생이 박꽃과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을 그대로 반영시켜서 감동이 더 깊다.

몇 번이고 읽으면 읽을수록 순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시심처럼 목월생가 담벼락 위에는 박들이 영글어 덩실덩실 손님을 맞고 있었다.

닭의 벼슬을 닮은 맨드라미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행사가 막 시작되자 저녁답 하늘에 구름들이 슬슬 구경꾼처럼 모여들었다. 행사 도중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다가, 구름에 달이 반쯤 가려 나그네처럼 쓸쓸히 산 능선에 걸터앉았다.

목월 선생님의 제자로 당시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하신 정파 정민호 원로 시인께서 “나의 스승 박목월”, 교단에서 오래 국어를 가르치신 김종섭 시인께서 “동리 선생님의 경주 사랑”에 대한 특강을 해주셨다.

▲ 목월선생님 제자 정파 정민호 시인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주낙영 경주시장이 목월의 애송시 “나그네”를 낭송하자 모두들 무척 반기며 즐거워했다.

필자는 이날 행사의 시극(詩劇) “기계장날”에 주모로 출연하는 관계로 일일이 사진촬영을 하지 못했다.

공연을 다 마친 뒤 시극을 준비한 회원들이 커피숍에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지게를 지고 무대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좀 더 리얼하게 ‘소깝’이나 ‘까디’를 졌으면 좋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필자도 모르는 경주말이었다. 경주시청 앞에서 자라며, 사업체를 운영하던 환경이어서 내게는 마치 외래어처럼 생소하고 신기했다.

‘소깝’은 솔가지를 쳐서 땔감으로 말린 것이고, ‘까디’는 잘게 깨어놓은 장작개비를 뜻한다고 했다. ‘둥거리’는 통장작을 말했다. ‘깔비’는 소나무 이파리가 떨어진 걸 갈쿠리로 긁어모은 것으로 내가 아는 낱말이었다. ‘소까지’는 소나무 자른 가지의 남은 부위에 송진이 엉겨 굳은 상태로 화력이 세고, 불길이 오래가며 흔하지 않기에 고가에 팔린다고 했다. 내가 찾아낸 고장말은 ‘괭다리’로 나무의 결 사이에 박힌 옹이를 말한다.

어느 새 우리의 대화는 아주 먼 어린 날들로 돌아갔다.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던 남자들은 ‘부엉이방구’라는 재미난 표현을 연상해냈다. 소나무 가지를 기형적으로 감싸며 풍선처럼 동그랗게 자라는 모양을 부엉이가 앉아서 방귀를 뀐 것이라는 해학적인 풀이를 했다. 그런데 그 둥근 나무를 칭하던 단어가 있다는데 끝내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은 뒤, 우리는 우리의 말을 까마득 잊고 있었다.

자리를 함께 한 우리들은 조상대대로 서라벌 사람으로 경주의 말은 이두문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두(吏讀)는 신라 때부터 한자의 뜻과 소리를 우리말로 적었던 차차 표기법으로 이두표기의 정해진 체제에 따라 쓰던 글자다. 이 기사를 쓰면서 혹시 모를 기억을 더듬어보라고 연락을 했지만 끝내 ‘부엉이방구’에 대한 명칭을 아무도 모른다. 혹시라도 경상도 분 중에 이글을 읽고 기억나시는 분은 아래 댓글에 올려주시면 고맙겠다.

세계한글작가대회 경축행사의 뒤풀이답게 우리는 경주의 말에 대해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었다. 우리 세대마저 떠나면 지방의 변방에서나 쓰는 사투리가 되어버린 경주말은 벽화처럼 낡아지고 말 것 같아 서글프다. 내년의 이 행사에서는 이두와 현재까지 내려온 경주말에 관한 심층적 연구와 강의가 있기를 바래본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이미진 주주통신원  lmijin0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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