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근린공원에서도 까마귀베개를 볼 수 있었으면

이호균 주주통신원l승인2018.11.06l수정2018.11.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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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열매가 깜직한 까마귀베개

왜 까마귀베개일까?
까마귀베개, 이런 이름의 나무가 있다. 까마귀도 베개를 베고 잠을 자나? 이름이 참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이름이 지어졌을까? 처음엔 참 희한한 이름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꽃이 지고 나면 보리알만 한 열매가 생긴다. 처음엔 초록색, 점차 커지면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여름철이 되면 노란색 열매는 차츰 붉어졌다가 가을철이 되어 다 익으면 검은색이 된다. 검게 익은 열매에서 우리는 쉽게 까마귀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런데 까마귀가 베개를 베고 잔다? 그럴 리는 없는데 왜 그럴까? 검게 익은 열매의 과육 속에 들어 있는 씨를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우리 옛 조상들은 여름철에 나무로 만든 베개, 곧 목침을 베고 시원하게 잤다. 대추보다 좀 작은 이 나무 열매의 과육을 벗겨 낸 씨를 눈여겨봐야 답이 나온다. 원통형의 씨는 양끝이 둥글고 가운데가 약간 잘록하게 들어가 있다. 영락없이 그 옛날 목침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머리가 작은 까마귀나 베고 자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아하! 이래서 까마귀베개란 이름이 지어졌구나.

▲ 까마귀가 베고 자기에 안성맞춤인 까마귀베개의 씨와 열매

까마귀베개란 국명의 유래
국립수목원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1980)>에 의해 ‘까마귀베개’란 국명을 추천명으로 하고 있다. 제주도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까마귀베개’란 국명은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1937)>과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1996)>에 등재된 ‘가마귀베개’가 변한 이름이다. 주지하다시피 ‘까마귀’는 통시적으로 볼 때 ‘가마괴>가마귀>까마귀’처럼 이화(異化)와 경음화 과정을 거쳐서 변한 것이다.

다른 국명 푸대추나무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가마귀베개’라는 국명과 함께 ‘푸대추나무’라는 다른 국명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까마귀베개를 푸대추나무라고도 부른다. 내고향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나는 까마귀베개라는 나무가 바로 푸대추나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2009년 9월 전국자연환경조사 전문요원양성과정을 연수할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전라남도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 자연관찰로를 탐방할 때였다. 축축 늘어진 가지에 좌우로 벌리고 있는 길쭉한 짙푸른 잎 위로 노랗고, 빨갛고, 검붉은 열매가 함께 다닥다닥 달린 나무를 만났다. 지도교수는 바로 이게 갈매나무과의 까마귀베개라는 나무란다. 아니, 이건 푸대추나문데?

▲ 까마귀베개의 다른 이름 푸대추나무

나의 푸대추나무 추억
푸대추나무 하면 나는 고향 마을과 함께 옛날 어린 시절이 먼저 떠오른다.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땐 푸대추나무 열매는 훌륭한 먹을거리였다. 마을 어귀에 있는 첫 번째 초가집 헐어 무너져 내린 토담가에 서 있는 제법 실하게 큰 푸대추나무 하나가 있었다. 빨갛게 된 열매가 검붉게 다 익었나 여러 번 찾아가 살펴봐야 한다. 게을리 잊고 있다간 다른 동무들이 몰려가서 먼저 다 따먹어 버린다. 초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검붉은 열매 푸대추는 입에 넣으면 달콤한 맛이 그만이다. 대추보다는 크기도 작고 맛도 다르지만 한 움큼 따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여 과육만 벗겨 먹고 씨는 뱉어 내야 한다. 이 씨가 바로 까마귀가 베고 자기에 안성맞춤인 베개다. 그래서 푸대추나무가 까마귀베개가 되었단다.

▲ 까마귀베개의 가을철 다 익은 검은색 열매

푸대추나무란 국명의 유래
대추는 예로부터 제사상에 오르는 과실 중 첫 번째로 꼽힌다. 까마귀베개의 열매는 그 생김새가 대추와 비슷하지만 더 작고 색깔도 다르다. 외양도 다르고 질적인 면에서도 대추만은 못하다. 그래서 푸대추나무라는 이름이 유래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대접을 소홀히 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푸대접’이라고 한다. 아직은 어려서 깊이를 모르는 어설픈 사랑을 ‘풋사랑’이라 한다. 이때의 접두사 ‘푸-’나 ‘풋-’은 어원적으로 ‘미숙한’ ‘깊지 않은’ 등의 뜻을 덧붙이는 같은 접두사 ‘풀-’에서 온 것이다. 지금도 제주방언에서는 접사 ‘풋-’을 ‘풀-’이라고도 한다. ‘푸-’는 ‘풀+ㅅ’에서 ‘ㄹ’과 ‘ㅅ’이 둘 다 탈락한 경우이고, ‘풋-’은 ‘풀+ㅅ’에서 사이시옷 앞에서 ‘ㄹ’만 탈락하고 축약된 형태이다. 푸대추나무는 대추와 비슷한데 그만 못한 미숙한 대추, 그래서 푸대추가 열리는 나무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푸대추나무가 기존의 대추나무 열매의 질적인 면에서 기원한다면 까마귀베개는 열매의 색깔과 씨의 모양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무튼 푸대추나무는 대추나무와 속은 다를지라도 둘 다 같은 갈매나무과에 속한다. 이로 보아 우리 선인들은 식물의 분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을지라도 이 나무의 이름을 푸대추나무라고도 부른 것으로 보아 나름의 식물분류에 대한 안목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 볼품없는 까마귀베개의 꽃

까마귀베개의 다른 국명과 외국명
까마귀베개나 푸대추나무 이외에 정태현은 <조선삼림도설(1942)>에서 ‘가마귀마개’, ‘망개나무’라고도 하였다. 검은색 열매 모양을 까마귀의 귀마개쯤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역에 따라서는 ‘헛갈매나무’, ‘장실산황(長實山黃)’이라고도 부른다. 망개나무나 산황나무는 까마귀베개와는 다른 나무지만 갈매나무과에 속한 것이니 까마귀베개와 전혀 무관한 이름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를 묘유(猫乳)라고 하며, 지역에 따라 서시조(鼠矢棗), 장엽녹시(長葉綠柴), 산황(山黄) 등으로 부른다. 이중 묘유(猫乳)는 열매의 생김새가 고양이의 젖꼭지 모양과 비슷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저장성(貯藏性) 지역에서 부르는 서시조(鼠矢棗)란 이름은 열매가 산수유 열매인 서시(鼠矢)와 대추 ‘조(棗)’의 합성어이다. 곧 ‘산수유 열매 비슷하게 생긴 대추’란 뜻이리라. 실제 붉은색 까마귀베개 열매는 중국에서 서시(鼠矢)라고 하는 산수유 열매와 흡사하다. 일본에서는 ‘ネコノチチ (네코노치치, 猫の乳)’라고 부르는데 이 또한 그 의미는 중국명과 똑같다.

까마귀베개의 학명
까마귀베개의 학명은 ‘Rhamnella franguloides (Maxim.) Weberb.’이다. 속명 ‘Rhamnella’는 ‘가시가 달려 있는 떨기나무, 갈매나무의 옛 이름’을 뜻하는 속명 ‘Rhamnus’의 약칭이다. 종소명 ‘franguloides’는 그리스 고어로 ‘목재가 연약한 나무류’를 뜻하는 ‘Frangula’ 속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목재의 질을 나타낸 것이다. 이 학명의 최초 명명자는 러시아의 식물분류학자 Carl Johann Maximowicz(1827-1891)인데 독일의 August Weberbauer(1871-1948)가 이를 이명 처리하여 새로 정당 공표한 것이다.

▲ 까마귀베개의 초록색 잎과 맺힌 꽃

까마귀베개의 분류
까마귀베개는 식물분류학상 장미목의 갈매나무과(Rhamnaceae) 갈매나무족(Rhamneae) 까마귀베개속(Rhamnella)에 해당한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갈매나무과는 세계에 널리 분포하며, 50~60속에 870~900종가량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먹넌출, 묏대추나무, 대추나무, 갈매나무, 헛개나무 등 7속 14종이 분포한다. 대체로 가시가 나 있으며, 종에 따라서는 덩굴손이나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있어 다른 식물을 감는 것도 있다. 잎은 보통 어긋나지만 종에 따라서는 마주나는 것도 있다. 잎 모양은 단순하고 겹잎이나 갈라진 잎은 없다. 꽃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볼품없는데, 원추꽃차례 또는 취산꽃차례를 이루어 달린다. 각각의 꽃은 4~5개의 꽃받침조각과 꽃잎, 수술이 있으며, 씨방은 상위인 것과 하위인 것이 있다. 열매는 대부분 핵과(核果)가 되지만, 종에 따라서는 시과(翅果)나 삭과(蒴果)가 되는 것도 있다.

▲ 까마귀베개의 여름철 붉은색 열매

 

세계 분포와 우리나라 자생지
갈매나무과의 까마귀베개는 세계적으로 중국 중남부, 일본 혼슈 이남, 한국 등 그 분포역이 제한적이며 따뜻한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 태안반도의 안면도 이남에 분포하는데 주로 전라남북도와 제주도 등지의 표고 1,100m 이하 산 중턱이나 산기슭 숲 가장자리 축축한 땅에서 자란다. 서울 근교에서는 자생하는 것을 만나볼 수 없다. 홍릉수목원이나 광릉수목원에 가야 식재된 것을 만나볼 수 있다.

형태적 특징
까마귀베개는 높이 5~8m 정도로 자라는 낙엽 소교목이다. 나무거죽은 흑갈색 내지 회갈색으로 평평하고 매끈하지만 오래되면 세로로 불규칙하게 갈라지고 회색 반점 같은 껍질눈이 발달한다. 햇가지는 초록색이고, 2년생 잔가지는 갈색인데 겉에 둥근 모양의 껍질눈이 성기게 돋아 있다. 잎은 좌우로 어긋나게 달리며 길이 5~13cm, 너비 2~5cm의 도란상 장타원형 내지 장타원형이다. 잎끝은 꼬리처럼 길게 뾰족하고 밑부분은 둥글거나 쐐기형이며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촘촘하게 있다. 잎 앞면은 짙은 초록색으로 윤택이 있으며, 뒷면은 연한 황색으로 맥 위에는 부드러운 잔털이 나 있다. 잎자루는 길이 2~6mm이고 짧은 비단털이 밀생한다. 턱잎은 길이 3~4mm의 피침형으로 오래 남아 있다. 꽃은 6~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2~4mm의 꽃자루에 황록색의 양성화가 1.5~4mm의 작은꽃자루에 6~18개씩 취산꽃차례로 모여 달린다. 꽃은 지름 3.5mm 정도이며 꽃잎은 넓은 도란형이고 꽃받침조각보다 짧다. 꽃잎, 꽃받침조각, 수술은 각각 5개씩이다. 꽃받침조각은 삼각상 난형이며 가장자리에 잔털이 약간 있다. 자방에는 털이 없으며 암술대는 길이 1-2mm로 매우 짧다. 열매는 길이 7~10mm, 타원형의 핵과인데 처음엔 초록색이었다가 여름이 되면 노랗게 되고, 9월쯤이면 점차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검은색으로 변한다. 핵은 지름 3~4mm, 가운데가 약간 잘록하고 끝에 홈이 있으며 겉이 평평한 난형 내지 원통형으로 연한 갈색을 띤다.

▲ 까마귀베개의 초록색 열매

효용 가치
까마귀베개는 효용가치가 높은 수종이다. 남부지방의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지만 서울 지역에서도 월동이 가능하며 음지나 양지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공원수나 조경수로 이용할 수 있다. 긴 타원형의 잎은 질감이 곱고 진하며 윤택이 있다. 가을 단풍은 깔끔한 노랑색, 황금색으로 아름답다. 특히 줄기 좌우로 쭉쭉 펼쳐진 짙푸른 잎 위쪽로 다닥다닥 열린 열매는 꽁무니를 위로 쳐들고 색깔이 다양하게 변해간다. 시차를 두고 변해가는 초록색, 노란색, 붉은색, 검은색 열매가 한데 어울려 햇빛에 반짝이는 광경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까마귀베개를 난엽묘유(卵葉猫乳)라 하는데 줄기는 기력 감퇴 증상을 개선시키고, 뿌리는 옴과 악창을 다스리는 데 쓰인다고 한다. 약용뿐 아니라 나무껍질은 녹색 염료로 쓰인다. 짙은 녹색을 갈맷빛이라고 하는데 갈매나무 껍질에서 얻는다. 까마귀베개 역시 같은 갈매나무과에 속하기 때문에 녹색의 염료로 쓰인다. 목재는 재질이 연하여 장식재나 가구재, 신탄재로도 쓰인다.

▲ 까마귀베개의 주황색 열매

도심 근린공원에서도 까마귀베개를 볼 수 있었으면
얼마 전 수원시 공원과 공공녹지 식생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도로가에는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중국단풍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주로 키큰 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공해에 강하고 도시경관을 위해서 키큰 나무들이 선택되었겠다 싶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자연생태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어린이공원이나 근린공원에는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초본류와 목본류가 식재되어 있다. 지피식물로는 잔디와 맥문동이 주류를 이룬다. 목본류는 주로 회양목, 옥향나무, 사철나무, 측백나무, 향나무, 주목, 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 사계절 푸른 상록수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백목련 등 키가 큰 낙엽수가 있는가 하면 꽃이 화려한 산철쭉, 산당화, 죽단화, 앵두나무, 조팝나무, 매화나무 등 키가 작은 떨기나무 등 다양하다. 그러나 내가 조사한 어느 공공녹지에서도 까마귀베개는 단 한 그루도 못 만났다. 까마귀베개는 내한성이 있어 서울지역에서도 월동이 가능하고 양지나 음지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고 한다. 가을에 종자를 채취하여 노천에 묻어 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면 많은 묘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꽃은 별 볼품없지만 철따라 색색으로 변해가는 깜직한 열매, 도심 근린공원이나 아파트 정원에서도 까마귀베개나무를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 여름철 무성한 까마귀베개의 잎과 열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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