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문화연필 공장이 불타버리자 고사리 손길이 돕고 나서기도...

일제탄압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우리나라엔 공장도 거의 없는 형편에서 6.25전쟁이 일어나자 몇 개 안 되는 공장들도 모두 폭격을 맞아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얼마나 가난하였던지 교과서를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원조로 책을 찍어 간신히 공부하게 해주었다. 내가 3학년에 올라간 1953년에는 교과서를 미처 찍지 못해 한 반 70여 명 중에서 국어 교과서를 가진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고, 담임 선생님이 한 권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날마다 그 시간 공부할 책을 연필로 공책에 써서 보고 읽으며 공부를 하였다.

이때 쓴 연필과 공책이라는 것은 요즘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조악한 것들이었다. 연필은 엄청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서 잘 깎여지지도 않았다. 힘을 주어 깎다 보면 간신히 연필심이 나왔는데, 그만 똑 부러지고 만다. 그러면 다시 깎고, 또 깎아야 하였다. 물론 연필심이 형편없어서 글씨를 써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필심에다가 침을 묻혀서 꼭꼭 눌러써야만 하였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쓰는지 연필심이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기 일쑤였다.

연필만 나쁜 것도 아니었다. 종이가 없어서 하얀 종이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책이라는 것도 요즘 포장지에도 안 쓰이는 시커먼 재생지였다. 이런 것을 책상 넓이만큼 큰 전지를 사다가 부엌칼로 잘라서 가운데를 실로 꿰매어서 공책이라고 쓰는 것이니까 어지간히 잘 쓰지 않으면 글씨가 보이지도 않는다.

이 무렵 국산 연필도 형편없어서 외제를 써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연필은 나무가 아니라 종이로 연필심을 싸서 만든 연필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연필도 있었지만, 어찌나 재료가 나쁜 것이었는지 잘 들지도 않는 칼로 연필을 깎다 보면 계속 연필심이 부러져 나오고 만다. 깎고 또 깎고 하다 보면 연필은 어느새 다 닳아 없어지고 몽당연필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나라 연필 중에서 문화연필만은 조금 나아서 적어도 2/3 정도는 부러지지 않고 쓸 수가 있었다. 농촌 어린이들은 이 연필을 사서 쓰는 것이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었고, 가난한 아이들은 값싼 연필을 사서 쓰다 보면 날마다 새 연필을 사야 하지만 그래도 싼 연필을 사곤 하였다.

▲ 연필      요즘은 초등생들도 별로 쓰지 않는 연필도 제대로 쓸 수 없던 시절

돈이 많은 아이는 도회지 문방구점에서 일제나 미제 연필을 사다 썼는데, 이런 연필을 쓰는 아이들은 문화연필을 쓰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야! 네 연필 또 부러졌지? 내 연필 좀 볼래?”

하면서 연필을 주먹으로 움켜쥐고 남의 책을 콱 찔러 버리면 책장을 몇 장씩이나 뚫고 들어가지만, 연필심은 부러지지 않고 말짱하였다. 가난한 농촌 아이들은 연필 하나에 주눅이 들었다. 깎다가 다 부러지는 연필이 너무 희미하여 침을 묻혀 가면서 글씨를 써야 하였다. 조금만 힘을 주면 똑 소리가 나고 마는 연필 때문에 공부 시간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콱 찔러도 안 부러지는 연필을 자랑하는 부잣집 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지 않을 아이들은 없었다.

그래도 문화연필을 사서 쓰는 아이들은 겨우겨우 글씨를 쓸 수는 있었다. 1954년 여름? 아마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너희들 문화연필을 사서 쓰는 사람 손들어 보아라."

선생님은 갑자기 무슨 연필을 쓰는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절반가량의 어린이들이 손을 들었다.

“그래 너희들이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쓰고 있는 문화연필 공장이 어제 불이 나서 몽땅 다 타버렸단다. 이제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연필 공장까지 불에 타고 우리들이 연필을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어쩌면 좋으냐?” 선생님은 이제 연필을 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셨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은 우리에게

“선생님께 문화연필 공장이 불타서 없어졌다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래서 우리나라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이 몇 푼이라도 거두어서 연필공장을 다시 짓게 돕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우리도 이제 조금씩 돈을 내어서 연필공장을 짓게 돕기로 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시고 나서 교실에 들어가서 선생님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 고장은 가난한 농군들이 사는 고장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연필 한 자루 값만 가지고 오라고 하여서 그 돈을 모아서 공장을 빨리 짓게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래야 너희들이 연필을 쓸 수가 있으니까 조금씩 돕기로 한 것 잊지 말고 돕기로 하자. 알았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연필공장을 다시 짓지 않으면 당장 연필을 사서 쓸 수가 없을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며칠 동안이나 돈을 모아서 내었고, 그 돈으로 공장을 다시 지어 우리가 연필을 쓰게 되기까지 몇 달이나 걸렸다.

다행히 온 나라 어린이들이 돈을 모아준 은혜를 갚겠다고 더 좋은 연필을 만들어 주어서 새 공장에서 나온 연필은 훨씬 더 좋았고 덜 부러지는 연필이 되었다.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김선태 주주통신원  ksunta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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