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바람이 불고 있다. 1995년 학계에서 '민주시민교육학회'가 창립되고 오늘날까지 '민주시민교육지원법'법안 발의가 모두 6번 있었다. 15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발의된 법안은 국회임기 만료로 5번 모두 폐기되었다. 2016년 국회의원 남인순 외 12인이 발의한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 아직 계류 중이다. 그렇지만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일 뿐 논의조차 되질 않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국정과제로 '민주시민교육' 확대를 제시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민주시민교육 TF'를 구성한 상태이다. 또한 올해 1월엔 교육부 기구로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추진의지가 선명하다. 그만큼 국가 사회적으로 기대가 크고 교육계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 2018년 10월 27일 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유은혜 교육부장관(사진 출처 : 하성환)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선정되었음에도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현장에까지 바람이 불진 않고 있다. 실제로 학교현장에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인식이 미흡하고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주목할 만한 '민주시민교육' 활동이 없다. 더구나 내년 교육부 예산에서'학교민주시민교육' 신규 예산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대단히 모순적이고 배반된 모습이다. 촛불 정부로 출범한 권력 상층에선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8년 교육부 행정기구로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된 것은 그것을 반증한다. 반면에 학교현장은 '민주시민교육'과 거리가 멀다. 왜 이런 괴리가 발생했을까?

오늘날 학교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학교가 민주적인 공간인가를 묻는다면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현실은 마찬가지이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학교는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가 엄존한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그것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교사는 아이들 위에, 학교장은 교사 위에, 교육청은 학교 위에, 그리고 교육부는 교육청 위에 군림해 왔다. 수없는 공문을 남발하며 지시와 통제 중심으로 교육을 주도하고 학교를 통제해 왔다.

수십 년 동안 교육 관료들은 그러한 기능에 익숙해 온 것이다져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따라 교육행정은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고 요구하는 형태로 관철돼 온 것이다. 따라서 현행 교육행정은 민주적인 교육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하물며 교육 관료들의 행태가 민주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아마도 교육 관료들은 '민주시민교육'조차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려 할 것이다. 나아가 전통적인 상명하달 방식으로 '민주시민교육'을 행정적으로 매번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진보교육감이 대거 등장하면서 경기, 충북, 전북, 서울 교육청에 '민주시민교육과'가 새롭게 설치돼 있다. 2014년 1월 지자체로서는 서울시가 최초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민주시민교육 진흥에 관한 조례'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진행 중에 있다.

문제는 학교현장의 변화이다.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지시와 공문을 교육 관료들로부터 하달 받기 전에 교사 스스로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듯이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들 스스로 민주시민교육의 열정으로 학교를 변화시키고 수동적인 교육 관료들의 태도를 견인해 내는 게 필요하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이 성공적으로 학교현장에 안착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도적・ 환경적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학교 스스로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공적 기구로서 학교생활 전체에 민주주의가 스며들 수 있도록 교육과정과 학교운영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먼저 수직적인 위계질서를 수평적인 조직으로 학교문화를 평등하게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학교장의 지위를 지시와 명령 위주의 권위주의적인 존재에서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을 지원하고 조력하는 협력적 지위로 재배치해야 한다. 학교장의 권한을 분산 이동시키고 계선조직의 맨 꼭대기에서 지원참모조직으로 학교장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교무회의와 학생회를 의결기구로 법적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학교장, 교사, 학생, 학부모, 행정실 직원, 실험실 조교, 교육행정사. 교무실무사, 급식조리원, 경비 등 학교사회 구성원 간 동등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전제 조건으로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현장에 안착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령으로 되어 있는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연간수업일수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고등학교 연간수업시수는 1200시간이 넘는다. 프랑스보다 1/3이 많다. 아이들을 학교에 오래 붙잡아 둔다고 해서 민주시민으로 길러지는 게 아닌데도 현실은 견고하다 못해 갑갑할 지경이다.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민주시민교육과'가 2019년에 신설되었고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는 2018년에 신설되었다. 그렇다면 학교현장에 '민주시민교육'을 핵심적으로 실천할 부서인 <민주시민교육전담 부서>를 범 사회교과 중심으로 조직해야 한다. 물론 <민주시민교육 전담 부서>에 학교 교육과정 편성권 및 예산 배정 등 권한을 부여함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서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혁명적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영수 중심으로 편성해 학교를 입시교육과정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다. 이젠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국어, 사회, 역사, 민주시민>교과를 핵심 공통교과로 하고 예술과 체육을 필수교과로 한다. 그리고 영어와 수학은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제공되도록 한다. 이는 대단히 혁명적 변화이지만 교육개혁을 위해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전제조건이다.

어린 시절부터 전국의 모든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며 아이들로 하여금 학습에 흥미를 잃게 만들어 왔다. 전국의 교실마다 수학포기자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영어사교육비가 사교육 으뜸으로 등장한 지 오래된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L과 R 발음을 구분시킨다고 강남 사는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에게 혀 절개 수술을 시킨 것이 사건화 된 적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 영화 『6개의 시선』은 그걸 매우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6개의 시선> 포스터(사진출처 : 국가인권위원회)

어린 시절부터 영어와 수학을 강제로 선행 학습시키는 풍조는 성장기 아이들에 대한 교육폭력이자 학대이다.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영어교육 열풍에 잠식될 정도로 한국사회는 제정신이 아니다. 최근 유치원 방과후 영어학습 허용 방침은 비정상적인 교육열에 교육부가 굴복한 슬픈 단면일 것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영어와 수학은 기능적인 지식이다. 그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생들에게 선택적으로 이수하게 하면 될 일이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영어와 수학을 강제하는 것은 공교육의 정신이 실종된 것이자 시장의 논리에 포획된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학교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건립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의 사례처럼 「독일연방정치교육원」이나 「주정치교육원」의 역할처럼 '민주시민교육'을 총괄하는 '민주시민교육원'을 세우는 것이다. '민주시민교육'의 센터이자 허브 역할을 담당할 총괄기구인 셈이다.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실 산하기구로 해도 되지만 교육부 정책을 총괄 기획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소속으로 두어도 좋다. 학교와 일반 시민의 평생교육체제를 총괄하는 중심 기구로서 앞으로 그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국회에서 '민주시민교육지원법' 제정을 서둘러 법적・제도적으로 든든한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미 전국적으로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출범하여 과거 중앙단위 소수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서 지역적으로 '민주시민교육' 기반을 구축하고 있고 관련 '민주시민교육진흥법' 역시 지자체 차원에서 제정되는 추세에 있다.

전국적인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법적・제도적 지원 환경이 정비되는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2019년에 가서야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2021년까지이다. 2019년에 <학교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가 건립되고 2020년에 학교현장에 <민주시민교육 교과서>가 개발돼 보급될 전망이다. 그 전에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민주시민교육' 가용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

'민주시민교육' 가용자원으로는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인권연대, 앰네스티 한국지부, 정대협(정의기억재단) 등 여러 영역의 시민단체(NGO)를 교육네트워크로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나아가 방송사 및 신문사 언론노조, 전교조 등 노동조합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을 자기 영역에서 실천하고 있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및 정당을 훌륭한 교육자원으로 활용해 볼 수도 있다.

▲ <정대협> 사무실이 있는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평화나비 캠페인을 벌인 동아리 학생들 모습(사진출처 : 하성환)

정당의 경우 스웨덴처럼 각 정당의 교육정책, 학교정책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아이들 스스로 토론하고 생각하게 하는 수업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선거에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안에서 정책선거를 치르도록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스웨덴의 총선투표율이 87%에 이르고 있는 것은 일상의 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으로서 정치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OECD 평균 투표율이 70%이고 우리나라 투표율이 50% 안팎에서 형성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 민주주의는 결코 건강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46%였음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1976년 독일에서 합의된 「보이텔스바흐」 협약처럼 한국사회도 좌우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모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현안들에 대해 쟁점이 되는 현안 그대로 학교 수업 현장에 끌어들여 아이들에게 토론을 하게하고 비판적 사고를 길러주는 것이다. 물론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거나 가치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텔스바흐」의 한국형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더욱 풍성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모든 교육 환경적 변화와 더불어 <민주시민교육>을 정규 교과로 채택해야 한다. 과거 <환경>교과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교과를 <한국사>처럼 수능시험 과목으로 평가하되 논술형 절대평가 방식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 형식을 모델로 삼으면 좋다. 지극히 평범한 문제에 대해 아이들이 평소 읽고 토론했던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독서교육을 장려할 수 있다. 나아가 모델이 된 프랑스의 토론수업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선다형에서 논술형으로 평가방식의 변화는 학교현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교육부, 교육청의 장학감사제도를 전격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학교민주시민교육' 지원조직으로 거듭나게 재구성하고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이유이자 학교교육을 경쟁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성공시키는 길은 복잡하지 않다. 교육기득권을 내려놓거나 강제로 기득권을 해체시켜 모든 학교구성원들을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학교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아이들의 자존감은 살아날 것이고 자율성과 자주성을 고양시킬 수 있다. 그러면 민주시민교육은 저절로 성공하게 될 것이다. '학교민주시민교육'은 결코 새로운 교육이 아니다.

교육법 제2조에 명시돼 있듯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주성을 기르고 민주시민성을 획득하여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 나아가 민주국가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에 이바지하게 하는 데 교육의 목표가 있다. 다시 말해 '학교민주시민교육'은 학교가 학교답게 학교의 본령을 회복하는 교육이다. 따라서 오늘의 시대 '학교민주시민교육'에 우리 교사들이 신명을 바쳐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주주통신원  hsh7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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