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역사

마광남 주주통신원l승인2018.11.23l수정2018.11.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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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장철이다. 우리는 김장을 매년 큰 행사로 하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사는 김치는 언제부터 먹게 되었을까? 김치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약 3천 년 전의 중국문헌 '시경(詩經)'이며, 오이를 이용한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라는 글자가 나온다.

김치에 관한 첫 기록도 2600 ~ 3000년 전에 쓰여진 중국 최초의 시집 시경(詩經)에 "밭두둑에 외가 열렸다. 외를 깎아서 저(菹)를 담자"는 구절이 있는데 <저>가 염채, 즉 김치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가면서 <저>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말(韓末)경의 사전인 석명(釋名)에도 <저>의 설명이 나온다.

▲ 출처 : 한겨레, 김치의 원조랄 수 있는 오이김치, 오이소박이는 신선하지요.

석명에는 김치에 대해 "채소를 소금에 발효시키면 젖산이 생성되고 이 젖산이 소금과 더불어 채소의 짓무름과 부패를 막는다."라고 하였다.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채소를 즐겨 먹었고 소금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사실과 역사적으로 젓갈, 장 등의 발효식품이 만들어진 시기 등을 고려할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 류가 제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高句麗條)에 '고구려인은 채소를 먹고, 소금을 멀리서 날라다 이용하였으며, 초목이 중국과 비슷하여 장양(藏釀, 술 빚기, 장, 젓갈 담기)에 능하다'고 하여 이 시기에 이미 저장 발효식품이 생활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 本紀) 시조(始祖) 동명성왕조(東明聖王條)에도 고구려인들이 채소를 먹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고, 당서(唐書)의 기록을 보면 '삼국의 식품류는 중국과 같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중국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열거된 오이, 박, 토란, 아욱, 무, 마늘, 파, 부추, 갓, 배추, 생강, 가지 등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유적 중에서도 김치의 역사를 알려주는 것들이 있는데, AD 600년경 창건된 전북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높이 1m 이상의 대형 토기들이 그것이다. 승려들의 거처에서 발견된 이들 토기들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어서 의도적으로 땅속에 묻어두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겨우살이에 대비한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한겨레, 밥상의 감초 배추김치, 네가 있으니 밥상이 풍성하구나.

이는 삼국시대 김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다. 또 AD 720년 신라 성덕왕 19년에 세워진 법주사 경내의 큰 돌로 만든 독은 김칫독으로 사용됐다는 설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장의 기원으로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치를 뜻하는 <저(菹)>라는 글자는 '고려사'(高麗史)에 처음 등장하는데, 고려사 제60권 예지(禮志) 제14권 새벽관제 제사를 올릴 때의 진설표에 저(菹) 4종(부추저, 순무저, 미나리저, 죽순저)이 나온다.

고려 말 이달충(李達衷)의 '산촌잡영'(山村雜詠)이란 시에는 '여귀풀에 마름을 넣어 소금 절임을 하였다'는 구절이 있어 야생초를 이용하여 제철 김치의 맛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 '목은집'(牧隱潗)에도 '침채'(沈菜), '산개염채'(山芥鹽菜), '장과'(藏瓜, 된장에 담근 오이장아찌) 등의 표현이 나온다. 한편 고려사 예지에는 `근저(芹菹, 미나리 김치)', 구저(韭葅 부추김치), 약구(瀹韭 삶은 부추)ㆍ생구(生韭 생 부추)로만 반찬을 하므로 란 구절이 있으며, 청저(靑菹,나박김치)', `순저(筍菹, 죽순김치)' 등의 김치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향음식(祭享飮食)과 관련된 김치류 외에도 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다.

▲ 출처 : 한겨레, 무무김치, 아삭아삭한 너가 있으니 밥상이 외롭지 않구나.

조선 중종 때의 '벽온방'에 "딤채국을 집안사람이 다 먹어라." 하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저'를 우리말로 '딤채'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국어학자 박갑수는 김치의 어원에 대해, '딤채'가 '팀채'로 변하고 다시 '침채'가 되었다가 구개음화하여 '김채', 다시 '김치'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에 이르러 통이 크고 알찬 통배추가 이 땅에서 육종 재배되기 시작(是議全書 19C말)하여 무와 오이, 가지에 앞서서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시기 김치의 변화는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임원십육지'(林를園十六志)에 잘 기록돼 있다.'증보산림경제'에 소개된 김치류에는 고추가 양념으로 쓰이고, '임원십육지'에 소개된 김치류에는 젓국지가 등장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이미 김치에 젓갈을 사용한 기록이 나오지만, '임원십육지'의 젓국지가 더 구체적이다. 김치 담그는 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소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김치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였고, 제조방법도 소금기를 뺀 뒤 김치를 담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였다.

1766년 발간된 '증보산림경제'는 무려 41종의 김치류가 다양한 형태로 수록되어 있어 매우 귀중한 문헌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오늘날 김치의 대명사인 통배추김치가 `숭침채'(菘沈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이 김치는 생선과 고기가 곁들여진 것이 특이하다. 김치의 국물 색을 낼 때는 맨드라미나 연지 등으로 붉은 색을 내기도 하였다. 또 양념 사용이 많아져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文集) 제14권 고율시(古律詩) 평편에는 '남제(南齊) 때 유고지(庾杲之)가 매우 청빈하여 밥 먹을 때면 매양 구저(韭葅 부추로 담근 김치)ㆍ약구(瀹韭 삶은 부추)ㆍ생구(生韭 생 부추)로만 반찬을 함으로'란 구절이 있으며, 동치미[冬沈葅] 장과저(醬瓜葅 장아찌) 송저(菘葅 배추김치), 규저(葵葅 해바라기)가 등장한다.

지역별 김치의 종류를 보면 전라도 -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동치미, 경상도 - 콩잎김치, 부추김치, 깻잎김치, 제주도 – 동지김치, 충청도 - 굴 석박지, 총각김치, 무짠지, 강원도 - 서거리 김치, 갓 김치, 창란젓 깍두기, 더덕 김치, 가지김치, 서울, 경기도 - 보쌈김치, 배추김치, 장김치, 나박김치, 열무김치, 오이김치, 감동젓김치 등이 대표적인 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가족 제도가 되면서 많은 량의 김치를 담그는 집은 줄었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아픈 허리 움켜쥐고 올해도 꼭 같은 맛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중국산 김치가 수입이 되고 또 시장에는 나름대로 담근 김치가 있어 젊은이들은 쉽게 사먹을 수가 있어서 선호한다고 한다.

어찌했건 우리의 식생활에서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인 만큼 그 맛을 잘 전승하여, 후대들도 맛있고 영양 많은 우리의 김치를 손수 담가 먹게 하는 것도 세상을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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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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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익배 2018-11-29 20:28:49

    김치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값진 글 잘 읽었습니다.
    '김치'라는 말의 어원의 다른 학설은, '침채'(沈菜:물독에 가라앉힌 채소라는 뜻) > 팀채> 딤채(약음화 현상) > 짐채(구개음화) > 짐치(방언화) > '김치'(이화현상) 로 변해갔다는 이설도 있습니다. ~^^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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