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 하는 위력은 없다

▲ <서초 변호사회관 정의실>

오늘 서울 지방변호사회 5층 정의실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피해자가 2018년 3월5일 방송 인터뷰를 통하여 어렵게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력 범죄 사실을 폭로한 직후부터 공대위는 152개 단체와 연대하며 피해자 지원 및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정혜선 변호사는 사건초기부터 곧 열리게 되는 항소심 공판에 이르기까지 함께하고 있으며, 현재 변호인단에서는 총 9명이 선임되어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가해자 처벌에 대한 합당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정혜선 변호사는 재판부가 범죄가 실제 일어났다는 사실에 집중하지 않고, 위력의 범위를 간과했음을 지적한다. 피고인의 막강한 권력, 피해자와의 지위 차이, 폐쇄적인 조직 분위기, 그 어디에도 피해자는 호소할 수 없었던 이 모든 위력 상황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위력은 존재하지만 행사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비논리와 비상식적인 결과를 내놓았다고 1심 결과를 비판하였다. 피해자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주, 야간을 불문하고 세 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유지하며 시종일관된 진술로 조사에 성실히 임했음을 밝혔다. 정혜선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최근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며, 피해자를 지지하고 진실이 드러나기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응원을 가슴에 새기면서 향후 재판에도 최선을 다해 반드시 승리할 뜻을 전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대표는 2018년 현재 대한민국 20대 국회의 83%, 광역단체장 100%, 기초단체장 96.5%, 광역의회 80.6%, 기초의회 69.2%가 남성임을 언급하며, 남성 카르텔이 낳은 이번 결과는 견제받지 않는 부패한 남성 권력을 상징하며, 이 부패한 결과는 대한민국의 사법 정의가 죽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하였다. 이대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성적 위력은 조용하게 작동하는 최상급의 권력이자 정치의 남성 지배가 여성에 대한 성적 위력을 낳고 더불어 침묵시킨다."

배진경(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지은의 생존권은 사업주 안희정이 쥐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용불안이 일상화된 성차별적 노동시장에서 그것도 절대적인 남초 공간이 정치 영역에서 안희정의 말 한마디면 언제나 해고 위기에 놓여 있는 매우 불안한 별정직 공무원, 비정규직 노동자임을 환기시킨다. 직장내 성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할 책임이 있는 사업주로서 안희정, 1300명 충남 공무원의 인사권자이자, 5조6천억원 이상의 예산집행자인 위치에 놓인 자치단체장이 행할 수 있었던 막강한 위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는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위력관계에서 안희정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을 파괴한 범죄자 임을 분명히 하였다.

김혜정(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언론의 선정적이고 조각난 보도들을 비판하며, 재판부가 이러한 상황들은 실제적으로 승인하고, 2차피해의 공적 환경을 조성한 책임을 물었다. 비공개 요청을 검찰에 여러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1심 재판부는 공개재판을 원칙으로 하며, 시일이 지난 시점에서 언론 자제 요청을 형식적으로 했음을 비판하였다.

▲ <사법부와 안희정의 유죄를 외치는 시민들>

이소희(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는 피해자다움에 갇혀 있는 재판부를 향해 "도지사라는 매우 위중한 자리에서 비서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달리 진술을 번복한 안희정을 향해 질문해야 한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통념, 즉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이 성립되었다면 일상에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해온 여성들의 존재는 지워졌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여, 다시 한번 항소심 재판부에 '피해자다움', '그런' 피해자는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김언경(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안희정 첫 공판이후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산부인과 의료기록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언론에 노출된 것이라 말하며, 선정적이고 천박한 기사감의 경쟁에 논인 언론보도들을 우려하며, 성숙한 보도태도를 당부하였다.

▲ <성차별적 편파 수사와 편파 판정을 규탄하는 시위 현장>

2018년 29일 서초고등법원에서 2차 공판이 있다. 시민과 함께하기 위하여 사단법인 '한국 여성의 전화'에서는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드는 보통의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2018년 세계여성폭력추방기간을 맞이하여, 가정-학교-마을-직장 등 일상에 놓인 각종 젠더 폭력 속에서도 피해자의 활동이 움츠러들지 않고, 일상의 재정비를 통해 다시 한번 삶의 열정과 가치를 꽃 피울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

편집 : 안지애 편집위원

심연우 시민통신원  vvvv77vvv@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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